류승완 감독 "'베테랑' 지금 가장 잘 할수 있는 이야기"(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7.24 11:05 / 조회 : 1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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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류승완 감독은 체크의 달인이다. 영화를 내놓은 뒤 모든 반응을 일일이 체크한다. 그리고 다음 작품에 그 반응들을 참고해 반영한다. 비디오로, 길바닥에서, 촬영현장에서 영화를 배운 류승완 감독이 꾸준히 전진해온 이유기도 하다.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처참한 실패 뒤 그가 '부당거래'를 내놨을 때 호사가들은 수근 거렸다. "류승완 감독은 남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야 잘 만든다"는 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부당거래'를 자기 식으로 새롭게 만들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에는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쪽팔렸다".

절치부심한 류승완 감독은 머리를 쥐어짜 '베를린'을 내놨다. 이번엔 "재밌지만 어렵다"는 소리들이 들렸다. 우울증과 설사까지 시달렸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는 "그래. 단순하게 가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어릴 적 그를 액션영화로 이끌었던 성룡영화, 그리고 '리셀웨폰' 등을 떠올렸다.

8월5일 개봉하는 '베테랑'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베테랑'은 거칠 것 없는 광역수사대 서도철 형사가 악행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재벌3세 조태오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다. 기자시사회 이후 "류승완에게 바라던 모든 게 들어있다" "통쾌하고 유쾌한 액션 오락영화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맨 날 똑같은 액션이나 한다고 뭐라 하다가, 그래서 감정이 깊은 영화를 만들면, 왜 잘하는 걸 안 하냐고 하고, 감정과 액션을 같이 버무리면 어렵다고 한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더니 "거 봐 잘하던 걸 해야지"라는 반응들이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을 단순하지만 결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예전엔 액션을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하는 고리로 활용했다면 '베테랑'에선 액션 안에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는 늘 체크하며, 늘 앞으로 나가고 있다.

-'베테랑'은 단순하지만 결이 느껴진다. 액션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한편 정확히 비교되는 지점, 예컨대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잠복 도중에 짜장면을 같이 먹는 장면과 재벌가 사람들이 장어덮밥을 같이 먹는 장면들을 은근하게 넣어 결을 더했다. 서도철 형사가 조태오를 만나기 위해 재벌 그룹 빌딩에 들어가는 장면도 앙각과 부감을 교차해 강조하는 등 장면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연출의 방법론을 여전히 배워가는 과정인 것 같다. 이전에는 메이킹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초이스에 집중하게 되더라. 사실 '베를린' 이후 '베테랑'을 한다고 했더니 투자배급사인 CJ E&M도 당황하더라. 큰 기획을 할 줄 알았는데 단순한 이야기를 들고 왔으니깐.

'베를린'을 하면서 규모에 대한 압박을 느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어느 순간부터 숫자로 치환하게 되더라. 몇 명이 들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몇 명이 들면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관객이 어떤 지점에서 영화를 보고 즐길까를 생각을 못하게 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가볍게 가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항상 앞의 영화들의 반응과 과정, 결과에 대한 고민이 다음 영화 선택으로 이어졌는데.

▶그렇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하고 난 뒤 경쾌하게 가자란 생각에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했다. 그리고 너무 가벼웠나란 생각에 '주먹이 운다'를 했고. 이번에는 '베를린'이 하도 어렵다고들 하고, 나도 즐겁고 단순하게 가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베테랑'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베를린' 후반작업을 하면서 당시 취재했던 사건 중에서 중고차 절도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기억에 남더라. 원래는 중고차 절도범 잡는 형사 이야기를 '분노의 질주'처럼 해볼까란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동차까지 달리는 영화를 찍어봤자 신호 걸리면 서야하지 않나. 그래서 중고차 절도범 사건 이야기가 들어있는 형사물로 바꿔보자고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마침 황정민과 다시 하기로 이야기도 했고. 그렇게 황정민을 형사로 놓고 쓰다 보니 그럼 이 사람이 누구랑 싸워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다. 마침 재벌들의 문제들이 이슈가 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태오의 원형이 시나리오로 들어왔다.

난 시나리오를 쓰면서 액션도 다 짠다. '베테랑'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 내가 성룡영화를 좋아해서 액션영화를 시작했는데 그동안 성룡식 액션을 한 번도 안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영웅본색'을 보고 우정을 배우고, '리셀웨폰'으로 정의에 대한 가치를, '폴리스스토리'를 보고 법이 못하는 걸 해결하는 걸 보고 쾌감을 느꼈는데 왜 그걸 안 다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베테랑'에는 이런 걸 담아보자고 했다.

-꼴통 형사가 나쁜 재벌 자제를 잡는 이야기다보니 '공공의 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전혀 다른 영화란 걸 느끼게 되지만.

▶처음에 CJ E&M에서 진지하게 '베테랑'을 '공공의 적4'로 가자고도 했었다.(웃음)

-형사와 재벌3세의 대결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충돌로 그린 것도 '공공의 적'과 차별점인데.

▶어떤 악당인가가 중요했다. 이 재벌3세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시스템을 부수려면 뭐가 됐든 형사들과 재벌 하수인들의 충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복싱 경기가 아니라 축구 경기로 보이도록 했다.

-원래 재벌3세 역할로 황정민과 비슷한 연배의 중견 배우 A를 염두에 두기도 했었는데. 결과적으론 유아인이 맡은 게 신의 한수가 됐는데.

▶젊은 배우, 한류스타들은 광고도 찍어야 하는데 이런 악당을 하려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A가 고사하고 난 뒤 유아인이 하겠다고 해서 반갑기는 했는데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불안하더라. 한 번도 유아인의 악역을 본 적이 없으니깐. 그동안 내 영화들은 악당이 강력해서 영화를 살리기도 했었으니깐.

그런데 유아인은 지르는 연기를 하지 않고 해맑게 웃으면서 연기를 하니깐 이게 맞나 싶더라. 그러다가 화물트럭 운전사 폭행 장면을 찍을 때 유아인이 해맑게 웃으면서 하는 걸 보니, 이야 너무 얄밉게 잘하더라. 정두홍 무술감독도 때려 죽여버리고 싶다고 하더라.(웃음) 정말 머리가 좋은 배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액션의 설계를 성룡 액션처럼 주위 사물을 이용하는 한편 이종격투기를 섞어서 담아냈는데. 마치 재벌이랑 형사가 계급장을 떼고 땅바닥에 같이 구르는 듯한 느낌을 주던데.

▶액션 플랜을 다 짜고 영화에 들어가는데 '베테랑'은 엔딩 액션 설계를 못하고 들어갔다. 안 그려져지더라. 정두홍 무술감독이 머리가 터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따귀를 때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왜 살다보면 '저 놈 따귀 한대만 때려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 때가 있지 않나. 여러 액션들이 계속 이어지지만 후련하게 느껴지려면 형사가 이 재벌3세에 '싸대기'를 갈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일사천리로 풀렸다. 육체적인 고통을 끝까지 주면서 따귀를 그냥..뭐 이런 식이었다.

-'베테랑'에선 액션으로 이야기를 끌고 왔다. 액션 안에 웃음을 주면서 이완을 주고, 다시 긴장하게 만들고. 과거 영화들과 가장 다른 지점인데.

▶그동안 액션은 감정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액션이 계속 이어지니 나중에는 지치는 관객들의 반응을 봤다. 그래서 내 영화는 클라이막스가 앞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 십수년 동안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베테랑'은 그런 과정에 있는 현재의 결과물이다.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은 식구라는 걸, 영화 속에 강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넣었는데. 결국 같은 밥을 먹는 진짜 식구가 필요에 따라 같은 밥을 먹는 가짜 식구를 잡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하게 풀어내려 했는데.

▶좋은 선생님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주는 선생님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의 목표는 마스터피스가 아니라 즐거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잘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했다.

또 내가 이번 영화로 스스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제야 비로소 내 뒷세대들에게 뭔가 전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 동세대나 윗세대들에게 내지르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내 뒷세대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영웅본색'으로 우정을, '리셀웨폰'으로 정의의 가치를 배웠던 것처럼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쪽팔리게 살지 말자"는 이야기를 전한 게 잘한 것 같다.

-그 대사로 영화 주제를 대사로 직접 전했는데, 배우들이 워낙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해서 정확히 관객에게 전달되기도 하는데.

▶원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은 강수연 선배가 술자리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어깨 피고 술 먹으라"는 소리를 자주 하셨다. 말한 것처럼 배우들이 워낙 잘해서 전달이 좋았다. 이번 영화는 배우들이 누구 하나 지르지 않고, 그러면서도 배우들이 장면의 의도를 워낙 잘 전달해줘서 정말 좋았다. 즐거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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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황정민이야 믿고 보는 배우고, 유아인은 이야기를 했으니, 유해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아들 보좌 제대로 못한다고 재벌 오너에게 '빳다'를 맞는 장면과 장어덮밥을 같이 먹을 때, 그리고 구치소에서 황정민과 이야기할 때, 이렇게 세 장면의 눈빛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던데.

▶유해진에게 감정을 계속 누르라고 했었다. 그래서 불만스러운 것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 구치소 장면을 엄청 기대했다. 유해진과 황정민이 '부당거래' 이후 다시 맞붙는 거니깐. 사실 '베테랑' 기자시사회에서 유해진 반응을 가장 신경 썼었다. 유해진이 '부당거래' 때는 내가 감독을 도왔다면 '베테랑'은 감독이 나를 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더라.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광역수사대의 홍일점 '미쓰봉' 역할의 장윤주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역할로 여러 여배우들을 오디션을 했었다. 그런데 그 배우들이 미쓰봉이 아니라 그 배우로 보일 것 같더라. 원래 '무한도전'이나 라디오를 진행하는 장윤주를 보면서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오디션을 봤더니 자기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데 감독 얼굴 한 번 보러 왔다고 하더라. 황정민과 같이 오디션을 봤는데 그런 장윤주의 자세가 미쓰봉에 딱이란 생각이 서로 들었다. 병원에서 하는 긴 대사가 있는데 장윤주가 그 장면을 찍기 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신진물산에서"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연습을 했다. 그 장면을 잘 찍고 난 뒤 모든 스태프가 장윤주가 대종상을 받은 분위기로 축하해줬었다.

-이 영화가 통쾌한 거 배우들의 합이 워낙 좋았고, 최영환 촬영감독의 리듬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탓에 아귀가 안 맞는 것도 의식할 틈도 없이 지나기도 하고. 예컨대 황정민이 이 사건에 몰입하는 명확한 동기가 강조되지 않았는데 그걸 느낄 틈도 없는데.

▶촬영을 하면서 배우들이 그 장면의 의도를 알아서 해주니깐 정말 좋았다. 최영환 촬영감독은 드라마를 흘러가게 하면서 힘줘야 할 때를 명확히 안다. 결국 관객들은 배우를 통해 이야기를 따라 가니깐 그렇게 배우들을 잘 쫓아가준다. 그러면서도 힘을 줄 땐 정확히 준다.

황정민이 이 사건에 몰입하게 되는 건 투신한 화물트럭 운전사의 전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와 황정민만이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여러 결의 이야기가 있으니 어떻게 보든지, 보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차기작인 '군함도'를 준비 중인데.

▶일제 시대 막바지, 일본 군함도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이 탈출하는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가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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