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유아인 "눈 딱 감고 연기..이젠 날 쓰담쓰담해줘"(인터뷰)

영화 '베테랑'의 유아인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5.07.23 13:18 / 조회 : 2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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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의 유아인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베테랑'(감독 류승완)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이야기다. '사람이 이래선 안된다'고 믿는 형사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망나니 재벌3세를 잡으러 가는 오락 액션물이다. 그 악당은 때려잡는 게 누구나 통쾌할 만큼 나쁜 놈이어야 했고, 황정민이 이끄는 베테랑들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걸 다름 아닌 유아인(29)이 한다고 한 순간, 류승완 사단의 팀플레이는 한 단계 도약했다.


'갑질'의 끝을 보여주는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로 분한 유아인은 처음으로 슈트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멜로드라마 '밀회'를 찍는 와중이었다. 심지어 처음 만난 대선배들을 내내 찍어 누르며 거들먹거려야 했다. "눈을 딱 감고", "'덜컹덜컹'하는 순간을 숨기며" 정말 열심히 했다고 유아인은 당시를 되새겼다. 그 결과가 어땠냐고? 영화를 보고 처음 유아인을 만난 순간, 여전히 앳된 얼굴로 웃는 그에 괜히 몸서리가 쳐 져서 '조금 멀리 앉아 달라'고 해야 했다. 쏟아진 호평에 유아인은 "황홀했다"며 '우헤헤' 웃었다. 그리고 그제야 힘들었다고, 더 애써 노력해야 했다고 조금씩 털어놨다.

-진짜 나쁜 놈을 연기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표현되는 악역이다. 그게 우리 영화의 톤 앤 무드이기도 할 것이다. 악역을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가 어쩌구 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설명이 다 됐다. 나쁜 짓을 해도 아이가 지나가는 개미를 꾹 눌러 죽이는 것처럼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천진함, 혹은 무신경함일 수도 있지만 이건 그냥 생각이 없는 거다. 저 사람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배려나 생각 자체가 전혀 없다. 강자인 아버지, 경쟁상대인 형 누나만 의식하는 셈이다. 자식이 잘못해도 책임을 묻지 않으니 반성도 하지 않고 그렇게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청춘스타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내가 그냥 청춘스타는 아닌 것 같다. 말 잘 듣는 여리여리한 이미지는 아니니까 그래도 선택하기가 쉬웠던 것일 테다. 이렇게 청춘스타로서 끝나려나. 다행히 어제 경희대 시사회를 갔는데 여성 팬들이 그렇게 싫어하시지는 않더라. 요새는 배우와 역할을 그렇게 혼동하시지 않으니까. 같이 일하는 스태프가 '무서워, 너 저리 가' 좀 이러긴 했다. (웃음)

-드라마 '밀회'와 '베테랑'을 같이 찍었다. 전혀 다른 작품이고 캐릭터다.

▶착한 역은 편했고 악역은 재미있었다. 사실 착한 역, 악역 정도가 아니다. 천사와 악마 정도의 극과 극이었다. 둘 다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둘 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밀회'의 선재는 되게 편했다. 해오던 연기 스타일이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기, 드라마였다. 계속 해왔던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고 그리 됐던 것 같다. '베테랑'은 사실 너무 어려웠다. 처음으로 하는 연기였고, 기웃거려보는 상태라 훨씬 어려웠다. 훨씬 더 치밀하고 세밀하게 해야 했다.

같은 머리를 올리면 조태오가, 내리면 선재가 됐다. '밀회' 땐 샤워하고 그대로 툭 나가 찍었다면 '베테랑'은 젤을 머리에 착 발라 칼날 같은 빗으로 빗어 얼굴에도 광을 내고 슈트를 입혔다. 그 극을 오가는 게 짜릿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선재가 돼 본격적으로 살아가는 와중에 '베테랑'으로 넘어가느라 처음엔 덜컹덜컹하는 부분이 있었다. 숨기려고 애썼다. 감독님에게 가능하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베테랑'에 먼저 캐스팅되고 '밀회'가 나중에 결정된 거라 누가 될 수도 있어서 더 열심히 했다. 평소 그렇게 열심히 안하는 데 더 열심히 애썼다. 집중 못 해 어설프다는 이야기를 안 들으려고.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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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의 유아인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액션신도 힘들었을 텐데, 맞아도 아프겠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

▶촬영기간도 길고 덥고 밤에 모기도 진짜 많았다. 몸도 많이 써야 해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뻥 뚫린 장소를 크게 움직이며 하니 시원시원하더라. 감정 부분은 제가 봐도 황정민 선배에게 쏠려 있어서 선배가 택시에 끼고 하며 관객이 '크아' 하는데 저는 아무리 맞아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실제로는 헛발 차서 피멍도 들고 했다. 하지만 정민 선배한테만 마음이 간다고 서운할 역할은 아니다. 빌어먹을 놈 소리를 들을 수록 좋으니까. (웃음)

-류승완 감독이 재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약간 눈치보면서 말씀하셨던 것 같다. 저야 계속 영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류승완 감독님이 같이 하고 싶다는데 뭔들.(웃음) 나이 들어가고 여러 생각을 하던 차에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 작업하면서는 너무너무 감탄했다. 언제든지 또 하고 싶다. 선배님들도 마찬가지인데, 현장이 정말 유쾌하고 밝다. 노는 건가 촬영하는 건가 하는데 그 유쾌함 속에 다들 칼날 같은 촉을 놓지 않고 있더라. 이렇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일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들 프로고 베테랑이어야 한다. 정말 프로의 세계라는 걸 느꼈다.

-이미 수차례 호흡을 맞춰온 팀에 홀로 들어간 셈인데 적응은 잘 되던가.

▶저는 사실 적응을 잘 못한다. 애기 때부터 선배님들이랑 계속 해왔으니까 조금 능글능글해졌고 장난도 치고 하지만 막 편하진 않다. 어쨌든 선배님이니까. 현장이 일하는 놀이터라면 아저씨랑 놀아야 하니까.(웃음) 후배가 까불어도 기분 안 나빠 하시고 편해지려고 애쓰는구나 하고 잘 받아주셨다.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술자리 자주 안 온다고 서운해 하시는데,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갔다.

-수족같은 상무로 등장한 유해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사실 주고받는 호흡이 별로 없다.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호흡이다. 조금 뻔뻔해져야 하고 용기가 필요했다. 유해진 선배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진짜 뻔뻔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첫 촬영 때 살짝 부르셔서 '잘 해보자, 마음껏 해봐' 해주신 게 엄청난 힘이 됐다. 사실 눈치 볼 만한 상황이지 않나. 아무리 연기고 무대에선 동등하다 해도 엄청난 선배신데. 눈 질끈 감고 했던 것 같다. 엄청 엄청 엄청(!) 섬세하시고 저랑 비슷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얼굴에 일어나는 파장이 굉장히 섬세하게 세공돼 있다는 느낌이다. 세밀하게 리액션이 변화하니까 주고받는 게 재미있다.

-흥행 욕심도 나는지. 여름 성수기 시장 첫 진출이기도 하다.

▶욕심 난다. 엄청 난다.(웃음) '몇 백만 가는 거야' 흥행이 막 기대된다기보다는 하다보니 내가 여름시장에 경쟁도 하는구나, 깊숙이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봉 시기가 밀리다 엉겁결에 작품의 운명이 이렇게 결정됐지만, 격동기에 들어와서 나도 영화배우 된 거야 하는 생각도 든다. 잘 모르겠다. 욕심도 나고 잘 됐으면 좋겠고 인정도 받고 싶다. 반항심이었을까. 예전의 내가 동네 돌아다니는 개처럼 어슬렁어슬렁 하며 '나를 어루만져주든 밥을 주든 마음대로 해, 흥'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엔 '쓰담쓰담 해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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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의 유아인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나이 들어간다는 걸 의식하는 것 같다. 얼굴은 여전히 앳되다.

▶나이로 딱 끊어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내가 지금 데뷔한 신인이라면 이 나이 이 얼굴이 자연스럽겠지만, 이미 이 얼굴로 많은 걸 해 왔다. 많이 사랑받았고 소진됐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니 다음 걸음을 고민할 밖에. 예전엔 연기 활동을 하는 게 마음껏 펼쳐진 운동장에서 하는 것 같았다면 이제는 조금씩 계단을 밟아야 하는 것 같다. 성공을 향해가는 게 아니라, 연기에도 이미지에도 계단을 밟아야 할 것 같다. 관객에게도 제가 새로움을 던져드려야 하지 않을까.

-철이 들어가는 건가.

▶철든다고 하니 갑자기 슬퍼진다.(웃음) 전 항상 똑같다. 그냥 그 시기에 튀고 싶어하는 애들 중 하나다. 연예인을 해먹고 사니, 어렸을 적엔 뭘로 튀고 사랑받을까로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은 또 무엇이 희소성 있는 일이고 차별화된 것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다보니 괜히 반항도 하고 지금은 또 이럴 때고. 더 이상 '흥흥' 거리지 않을 것이다.

-소년의 얼굴, 청춘의 이미지가 언제까지 갈까 고민한 적 있나.

▶얼굴이 맛탱이가 갈 때까지 부여잡고 싶다(웃음) 20대 초반 이때야 나도 나이 빨리 들어서 '베테랑' 같은 작품에도 나오고 싶다 생각도 했겠지만 지금은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게 안타깝다.(웃음) 나이는 어차피 드는데 언제까지 청춘의 얼굴이겠나. 가능한 한 지속적이었으면 좋겠고 교복도 입고 싶다. 20대 초반엔 다른 분들 보며 못난 마음에 '얼굴이 아저씨인데 교복을 입고 있어' 그랬다. 제가 이 나이가 되니 입고 싶다. 배우의 특권 아닌가. '스물' 같은 작품을 보며 너무 부러웠다. 짐짓 무거운 역할들을 많이 해왔었는데 밝게 경쾌하게 진짜 애들처럼 애들 이야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이렇게 세대차 느끼면서 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웃음) 저는 제가 '베테랑'을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셀 수 있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했다. CF찍는 청춘스타가 그렇게 욕하고 야한 얘기 하고 코믹한 연기하는 걸 보며 '용감하다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반올림', '성균관 스캔들' 찍을 때 생각도 났다. 그 땐 별 생각도 없고 행복했다. 놀면서 너무너무 친하게들 지냈다. 얼마 전 송중기 형이 제대하고 만나 술을 먹었다. 옛날 이야기 하니 좋더라. 대단한 옛날도 아니지만(웃음)

-송중기가 군대에 대해서 도움 되는 이야기도 해 주던가.

▶뭐 어쩌겠냐고, '나는 갔다왔지롱' 하고 놀리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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