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이 말하는 '암살'..이 인터뷰는 영화 보고 보세요(스포多)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7.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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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1300만 관객을 모은 감독의 다음 영화는 어때야 할까. 아마도 감독 자신이 가장 고민이 클 테다. 더 물량을 쏟아 붓고, 더 웃고 울리고, 더 화려한 출연진을 써야 할까? 아니면 반대로 깊이 있게 이야기를 파고들어 가야 할까?

최동훈 감독도 '도둑들' 이후 그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암살'을 그 고민의 결과물로 내놨다. '암살'은 1933년,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해 독립군이 중국 상하이에서 조선의 경성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암살'은 제작비 110억원 가량이 들었던 '도둑들'보다 70억원 가량 더 든 180억원을 썼다. 전지현과 이정재, 하정우 등 출연진도 화려하다. 얼핏 전자의 길을 간 것 같지만, 최동훈 감독은 이야기와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분명 더 힘든 길을 택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는 왜 더 힘든 길을 택했을까, 꽤 긴 이야기를 들었다.

-'도둑들' 이후 차기작으로 '암살'을 택한 이유는. '도둑들'보다 더 큰 영화는 피할 줄 알았는데.

▶그런 부담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시대를 꼭 하고 싶었다. 역사의 공백기처럼 느껴지는 1930년대. 그 시대는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모던의 물결이 일어났으며, 일제 치하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고, 독립운동이 치열했다. 그 시대의 무장투쟁을 꼭 해보고 싶었다.


문제는 제작비였다. 그 시대를 재현해야 하니 제작비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예산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면 한편으론 30년대는 안된다는 충무로의 통념이 있었다. 그 시대를 다룬 영화가 다 흥행이 안 됐다. 그래서 1930년대 이야기가 한국영화계에선 검증이 안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걸 안하면 어딘가로 갈 수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같이 작업해왔던 최영환 촬영감독 대신 이번에는 김우형 촬영감독과 같이 했다. 그랬다는 건 '암살'은 빠른 흐름 대신 감정을 더 깊게 들어가겠다는 의도였을 텐데. 그게 그동안 최동훈 감독의 영화와 '암살'의 가장 큰 차이기도 하고.

▶맞다. 최영환 촬영감독은 빠르고 날렵하다. 표범 같다. 반면 김우형 촬영감독은 먹이를 기다리는 사자 같다. 가만히 있다가 움직일 때 폭발적인 힘이 있다.

'암살'은 '도둑들'보다 쇼트(숏)가 적다. (쇼트는 영화 문법의 기본 단위. 카메라가 찍기 시작하면 멈출 때까지 연속된 영상) 김우형 감독은 트래킹(움직이는 인물 또는 사물과 카메라가 같이 움직이는 것)을 하면 끝에 가야 힘이 실린다. 그러니 쇼트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나도 그걸 원했다.

언제나 인물에 더 들어가서 여운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범죄영화 장르를 하다 보니 더 깊이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암살'을 하면서 인물에 더 깊이 들어가서 절실이 강하면 나오는 쓸쓸함을 담아내고 싶었다.

-'전우치'나 '도둑들' 같은 전작에선 액션 설계를 상하로 많이 했는데 '암살'에선 좌우와 상하를 교차시키면서 공간까지 고려해서 액션을 설계했는데. 그동안 했던 영화 액션들과 다르게 보여주고 싶은 느낌이 들던데.

▶그렇다. 액션도 다르게 하고 싶었다. 암살을 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갖는 긴장, 사선에 설 때까지 기다리면서 갖는 그 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에서 총격신을 많이 보고 자라지 않았나. 사실 총격신이란 게 뻔하다. 쏘는 놈이 있고, 피하는 놈이 있고, 맞는 놈이 있다. 그래서 총격신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선 공간을 넓게 쓰자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세트장을 같이 설계했다. 좌회전을 하고, 우회전을 한 다음, 그 앞에 3층 짜리 건물이 있고, 그 옆에 2층 짜리 건물이 있다, 그 동선에 맞춰서 뛰고 달리고 그 곳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액션이 진행되도록 했다.

전지현 결혼식 장면은 실내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액션이다. 원래는 3층 건물을 생각했는데 예산이 없어서 2층으로 만들었다. 1층과 2층으로 오가면서 벌어지는 액션, 그리고 결혼식장 뒤에 있는 방, 그 안까지 염두하고 액션을 설계했다.

그렇게 구성해서 관객이 암살 작전에 같이 참여해서 기다리고 쏘는 순간을 같이 느끼도록 설계했다. 그래서 액션장면이 길다. 7~8분 정도 된다.

-액션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 됐다기보다는 중간에 다른 이유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 꼭 끼어들어 흐름을 바꾸고 다시 하나로 합쳐지던데.

▶계속 방해자가 끼어들도록 했다. 오달수가 그렇고, 하정우도 그렇고, 이정재도 그렇다. 입장이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순간 액션에 활력이 더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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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더 울릴 수 있었다. 특히 전지현을 죽였다면 확실히 감정선을 자극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다른 선택을 했는데.

▶이 여자는 살아남길 바랐다. 역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안 흘러갔지만 서사는 그런 역사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가 집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여자가 역사의 증인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여자가 살아남는 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같았고.

-영화 마지막 반민특위가 끝나고 변절자인 염석진(이정재)이 무죄로 걸어 나오다가 결국 전지현이 암살을 하는데. 역사에서 이뤄지지 않은 결말을 감독이 영화 안에서 결론을 냈다. 사실 여느 블록버스터라면 해방이 되는 순간, 그들을 추억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을 법한데. 그게 더 안전하고.

▶흥행에 대한 내 생각은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너무 복잡해서 오히려 단순하게 보인다. 아무리 복잡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도 관객은 보면 바로 알아차린다. '암살'을 그렇게 끝낸 것도,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도, 결국 관객은 왜 그랬는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염석진이 죽는 공간을 황량한 벌판, 빨래가 널려 있는, 그리고 어디론가 떠날 것 같은 자동차가 놓여있는 곳으로 설정했는데.

▶사실 염석진을 죽이는 게 암살이다. 그렇기에 염석진을 죽이는 게 대로여야 할지, 쓸쓸한 골목길이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김우형 촬영감독이 날 세트장 옆에 있는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더라. 여기가 어떻겠냐고 하더라. "이제 이곳이 주차장으로 안 보이네요"라고 했다. 염석진이 바로 그곳에서 그렇게 죽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처럼 실존 인물로 영화로 만들었다면 더 감동을 주기가 쉬웠을 텐데. 이름 없는 독립군을 일부러 택한 이유는.

▶그 분들이 암살에 나서기 전에 찍은 사진들을 봤다. 그 사진들은 지금으로 치면 보도자료다. 우리가 일제를 처단했다는 증거용이었다. 그런데 결의에 차 있어야 할 사진들을 보면 담담하다. 심지어 이봉창 의사는 웃고 있다. 이봉창 의사가 그 사진을 찍으면서 김구 선생에게 가장 좋은 세상으로 가는 데 웃어야지요, 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너무 절절하고 의연해서 영화로 만들기엔 오히려 가짜 같았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당시 사진들을 많이 봤다. USC 강연을 갔다가 안창호 선생이 오렌지를 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봤다. 평화롭고 의연하더라. 독립군들 사진을 보면 우리에게 지금까지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들 의연하고 담담하고 쓸쓸함이 느껴진다. 사진은 말을 안 하니깐, 그 사진 속 인물들이 영화에서 그대로 걸어 나오기를 바랐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결국 '암살'은 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군에게 이름을 되찾아 준다는 이야기고. 그래서 이름이 더 중요 했을 텐데.

▶김윤석 선배가 자기는 시나리오 보면 이름부터 본다더라. 이름을 보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며. 그 뒤론 이름 짓는 게 더 어려워졌다.(웃음)

전지현이 맡은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은 무조건 안씨여야 했다. 안씨와 살아보니 그 성격을 알겠더라.(웃음, 최동훈 감독의 부인이자 '암살' 제작사 대표가 안수현이다) 안중근, 안창호 선생 등 안씨들이 독립운동을 많이 했다. 그리고 당시 이름에 많이 쓰던 '자' 자 돌림은 피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윤옥이라고 지었다가 옥윤으로 바꿨더니 좋더라.

이름을 완성하는 순간 캐릭터 성격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정재가 맡은 염석진은 백의사의 수장인 염동진에서 착안했다.

(백의사는 광복 이후 만들어진 우익 테러단체.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백의사 특공대원으로 밝혀졌다. 염동진은 중국 국민당 산하 단체 남의사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관동군에 체포된 뒤 변절해 밀정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의사는 남의사를 본 따 만들어진 단체다)

하정우가 맡은 하와이피스톨은 신비롭게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 원래 만주에서 마적하다 온 사람일 테지만 사람들에겐 하와이에서 왔다며 신비롭게 스스로를 포장하는 인물. 정작 본인은 하와이에 못 가본 사람. 하와이피스톨과 쿠바리볼버 둘을 놓고 고민했다가 하와이피스톨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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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암살'에서 임시정부 수장 김구와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힘을 합쳐 친일파 처단을 모색하는데. 그리고 마지막에 같이 독립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말하자면 좌우합작으로 친일파를 처단한다는 설정인데. 역사와 다르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감독의 판타지로 보이는데.

▶맞다. 둘은 실제론 사이가 안 좋았다. 나중에 같이 힘을 합치고 귀국하지만 김원봉은 월북을 하고 북에서 숙청을 당했다. 실제 역사에선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좌우가 노선경쟁이 치열해 회의를 하다가 김구 선생이 총에 맞아 병원에 간 적도 있다. 김구와 김원봉이 힘을 합친 건 역사에선 1939년이었다. '암살' 배경이 1933년이니깐 더 앞당겨 만들어낸 이야기다.

당시 일제가 김원봉에 내건 현상금이 영화에서처럼 100원이다. 김구가 60원이었고. 그 때 조선호텔 건설비용이 120원이 들었다고 하더라.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금액으로 환산하면 김원봉 현상금이 오사마 빈 라덴에 이어 역대 2위라고 하더라. 그랬던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처단하는 그런 판타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1930년대 상하이에는 일종의 로망과 판타지가 있다. 서양문물이 들어와 화려한 곳이지만 세계 각국의 스파이와 건달들이 암약했던 곳이었으니. 상하이 대세계는 그 당시 상징이기도 하고. 그 거리를 영화로 구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스티븐 스필버그가 '태양의 제국'에서 당시 상하이를 구현했었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만들려면 우리 영화 제작비를 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대표 거리인 와이탄은 영국의 조계지(열강들이 점령해서 다스리던 구역. 당시 상하이는 각 열강들이 조계지를 나눴고, 그 조계지로 들어가면 다른 열강은 개입할 수 없었다)이고, '암살'에 담겨진 곳은 프랑스 조계지였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와이탄을 담으면 실제랑 안 맞는 것 같아 고민을 했었다. CG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CG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최대 목표였으니깐 그것도 고민이었고.

1930년대를 찍으니깐 그 당시를 잘 구현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주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인물과 이야기가 주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암살'은 액자식 구성이다. 반민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이 옛 이야기를 전하는 구성인데. 그럼에도 그 구성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데.

▶원래 회상이나 플래시백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적인 근본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구성을 하고 편집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보니 마치 이 영화는 이런 것이라고 규정짓는 것 같더라. 그래서 원래 반민특위 법정 장면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를 편집했다. 편집을 하면서 내가 그렇게 안 찍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러닝타임이 139분인데. 그간 최동훈 감독 영화들이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됐다면 '암살'은 다섯 단락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길 수 밖에 없었을텐데.

▶고칠 수 없는 병인 것 같다. 7분 정도 잘라봤는데 재미가 없더라. 그냥 활극이 되어버리더라. 그렇게 다섯 단락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같다.

-관객이 당시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암살'은 작전에 성공해도 후련하거나 눈물을 쏟게 되진 않는데.

▶'암살'을 후려하게 만들면 이 영화는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많이 우는 것도 이 영화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나, 울 뻔 했어"라고 하면 성공했다고 본다. 그렇기에 '암살'은 어떻게든지 긴장감을 주고 끌고 가는 게 중요했다.

-'암살'에 여자가 주인공인 게 신의 한수인 것 같은데.

▶남자로 전지현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용기를 짜내서 꾸역꾸역해내는 느낌이 없을 것 같았다. 또 독립운동이란 게, 무장투쟁이란 게, 거친 폭력의 세계이고 남자들의 영역이라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당시 독립운동에 여자들도 많이 참여했었다. 그런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 또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면 시대극을 다뤄도 더 모던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시대극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여자가 살아남아야 역사는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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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전지현은 어땠나.

▶전지현과 우리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했다. 차곡차곡 쌓아 가면 만들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엔딩을 전지현의 얼굴과 회고로 마무리했는데. 전형적이지만 영화가 쌓아간 게 있고, 전지현이라 인상 깊던데.

▶댄스홀에서 춤추는 장면을 찍다가 그 엔딩을 떠올렸다. 음악 없이 춤을 2시간 동안 배우들에게 추라고 하니깐 힘들어하더라. 그러다가 이 장면을 엔딩으로 쓴다고 했더니 당장 연기들이 달라지더라. 전지현에게 사람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바라보라고 했다. 정말 전지현이 아름답다고 처음 느꼈다.

사실 댄스홀 장면을 넣고 싶었다. 그 당시에 새롭게 들어온 문물이었으니깐. 그렇지 않았으면 양복집을 독립군 연락장소로 쓸 수도 있었다.

-이정재는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 했던 청년시절부터 장년과 노년까지 연기했는데. 노년의 몸을 보여주기 위해 15㎏를 줄인 것도 대단하지만 CG도 아닌데 새파란 청년시절을 표정으로 보여준 게 무척 인상 깊던데.

▶본인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나는 어리다, 어리다,라며 계속 자기 최면을 걸었다더라. 이정재는 이 역할을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이정재에게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주문했다. 염석진이 어릴 적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 했고, 잡혀서 변절을 하고, 나중에 해방 후 경찰이 되는 건, 그에겐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반성도 안 한다. 그런 인물이었으니 이정재는 스스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죽는 장면은 이정재가 오른쪽 어깨를 수술하고 난 뒤에 찍어서 왼쪽으로 넘어져야 했다. 그걸 6번 반복했다. 감탄했다. 투덜이 없다. 찍은 걸 보면서 도취되더라.

-하정우는 하와이피스톨을 아주 멋드러지게 그려냈는데.

▶하정우는 남성적이면서 친근하고 우아하다. 그는 그런 인물을 아주 자연스럽게 끌어낼 줄 안다. 장면의 목표를 정확히 안다. 어떻게 하면 그 장면에 가장 어울릴 줄 정확히 알고 표현해낸다.

-하정우가 쓰는 소음총이 당시에도 있었나.

▶있었다. 소음기 특허가 1910년에 등록됐다. 거기에 영화적 허용을 조금 더했다.

-하정우와 전지현의 두 번째 키스신을 입술이 아닌 이마에 한 건.

▶영화 마지막 즈음에 남녀가 키스를 입술에 하면 감정이 해소돼 버린다. 그 뒤에 아직 처단해야 할 인물이 있는데 감정이 해소돼 버리면 안되니깐. 입술에 하는 장면도 찍긴 찍었는데 편집했다. 더욱이 두 사람의 감정은 육욕이라기 보단 동지애고, 너 대단하다란 의미도 있으니깐.

-전지현이 쌍둥이 설정이다. '범죄의 재구성'도 그렇고 쌍둥이 설정을 좋아하는데.

▶쌍둥이 설정은 한 번 더 할 생각이다. 어릴 적에 필립 K. 딕(토탈 리콜 저자)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같고. 감독이란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아분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걸 좋아하는 것도 같고.

'암살'에서 쌍둥이 설정은 독립군으로 떠난 사람과 친일파로 남은 사람을 상징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다. 어릴 적에 납치돼 독립군으로 자란 전지현과 친일파의 자식으로 자란 전지현, 그 둘이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또 '암살'을 처음 구상할 때 피 묻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장총을 들고 서 있는 여자 이미지를 잡고서 썼다. 전지현이 조선 주둔군 사령관 아들과 결혼을 해야 하니깐 쌍둥이 설정이 들어갔어야 했다.

-하정우가 연기한 하와이피스톨이 나라를 판 아버지들을 서로 대신 죽여주기로 한 살부계 출신이란 설정인데.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나.

▶문헌에는 없는데 떠돌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전지현이 아무리 친일파지만 아버지를 죽일 수 없으니 대신 하정우가 죽여야 했고, 거기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고. 전지현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는데 그랬다가 이 여자가 살아갈 힘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더라.

-말하자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데.

▶시나리오를 쓸 때 셰익스피어 책만 갔고 간다.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운명으로 걸어가는 원형적인, 그런 신화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전지현이 아버지를 죽이러 간 건 아닌데 알고 보니 아버지다. 그냥 떠날 수도 있지만 운명에 끌려 그렇게 가는 걸 담고 싶었다.

-'암살'을 준비하기 전에 이십세기 폭스에서 할리우드 영화 연출 제안을 받았었는데.

▶ 은행 터는 이야기였다. 또 은행을 터는 걸 하고 싶진 않더라. 영국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같이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는데 잘 안 맞더라. 할리우드에 가게 된다면 내가 쓴 이야기를 그들이 원하면 하는 방법이 차라리 좋지 않겠나 싶더라. 어차피 나야 그들이 찾는 감독 중 가장 바닥에 있을테니.

-차기작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암살'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도둑들'보다 더 걸릴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찍고 보니 한 번 더 감정을 깊게 들어가 보고 싶다. 끓는 물에 얼음을 집어던지는 듯한 영화를 하고 싶어진다.

-'암살'에서 하정우와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다음 작품에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원빈이다. 어떤 배우인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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