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5' 업그레이드됐다지만 차갑게 식은 짬뽕

[리뷰]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6.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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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가 6년 만에 돌아왔다.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하지만 도무지 뭐가 업그레이드됐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기대작 중 한 편인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이하 터미네이터5)가 2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였다. 2009년 4번째 시리즈가 나온 지 6년만이다. 시리즈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리부트에 이병헌이 액체 사이보그 T-1000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한국팬들의 관심이 컸다.


뭐든지 관심이 크면 결과가 썩 마뜩잖다. '터미네이터5'는 제대로 된 리부트를 바라마지 않던 팬들에겐 추억팔이 그 이상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 같다.

2029년 인간과 로봇의 전쟁.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인간 지도자 존 코너를 없애기 위해 로봇의 우두머리 스카이넷이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죽여 그의 탄생 자체를 막아내기 위해서다. 존 코너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될 동료 카일 리스를 1984년으로 보낸다.

여기까지는 '터미네이터'와 같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풀기 위해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1편과 2편을 적당히 섞어 짬뽕 같은 맛을 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터미네이터에 벌벌 떨던 1편의 사라 코너는 없다. 2편처럼 씩씩한 여전사가 돼 오히려 위기에 처한 카일 리스를 구한다. 그녀의 곁에는 착한 터미네이터가 수호자로 지키고 있다. 2편에서 어린 존 코너 옆에 붙어있던 착한 터미네이터처럼.

2편에 등장해서 놀라움을 줬던 액체 터미네이터는 일찌감치 등장해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를 위협한다. 2편에서 선보였던 칼로 변신하는 팔이 등장하는 것도 당연지사. 2편의 악당이 5편에서 오래 갈 수는 없다. 사라 코너의 활약으로 바로 사라진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용광로에 들어가면서까지 간신히 없앴던 T-1000은 더 이상 없다.

뿐만 아니다. 사라 코너는 아예 전쟁을 막기 위해 스카이넷 탄생을 막고자 한다.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모바일 OS를 꼭 빼닮은 스카이넷 탄생을 막기 위해 2017년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바로 인간의 지도자 존 코너. 그런데 어인 일인지, 이 남자 이상하다. 스카이넷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존 코너를 최악의 터미네이터로 개조한 것. 인류의 미래를 위해 아빠와 엄마는 자기들보다 훌쩍 큰 아들과 맞서게 된다.

장황하다. 기존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칠하려다 보니 장황하기 그지없다. 모든 설정과 상황을 줄줄이 대사로 설명한다. 이 설명을 영화 중반까지 이어간다. 과거가 왜 바뀌었는지,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시리즈 설정을 바꾸기 위해 쉬지 않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인류의 멸망과 구원이라는 묵시록적인 세계관은 더 이상 없다. '트랜스포머'처럼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로봇과 인간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하기야 변신로봇과 슈퍼히어로가 날라 다니는 판에 로봇과 인간의 싸움은 퀘퀘 묵은 이야기일 수밖에. 그런 탓인지 '터미네이터5'는 노골적으로 '트랜스포머'를 차용한다. 옵티머스 프라임의 내레이션을 빼닮은 내레이션으로 영화의 앞과 뒤를 장식한다. '트랜스포머' 이야기는 대사로도 등장한다.

낡은 이야기이니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히어로인 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올드하다. 하지만 쓸 만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도록 한다. 세월 따라 늙어버린 터미네이터가 반갑기는 하지만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2편에서 정신병원에 갇힌 채 턱걸이를 했던 린다 해밀턴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새로운 사라 코너 에밀리아 클라크는 한참 아쉬울 법하다. 미래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쳤던 1편의 카일 리스는 5편에선 그냥 힘 좋고 사람 좋은 평범한 히어로가 됐다.

그래도 시리즈 팬들이라면 한스 짐머 사단의 웅장한 그 음악과 "I'll be back"(다시 돌아온다) "Come with me if you want to live"(살고 싶으면 따라와요)라는 명대사가 반가울 수 있다. 한국 팬들에겐 10분 정도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병헌이 반가울 법 하다. 반가움만으로 두 시간을 견디기는 쉽지 않겠지만.

'터미네이터' 1편이 탄생했던 1984년은 핵전쟁의 공포가 있던 시대였다. 인류의 멸망은 곧 다가올 미래처럼 느껴졌다. '터미네이터5'가 등장한 지금은, 그래서겠지만, 언제나 들여다보고 있는 휴대전화가 또 곧 등장할 사물 연결 인터넷이 파멸의 시작으로 그려진다. 그 정도 상상력 밖에 발휘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쿠키영상이 등장한다. 마블의 쿠키를 어쩌니 닮았는지 실소가 절로 나온다. '터미네이터5'는 이것저것 섞었지만 너무 늦게 나와 차갑게 식어버린 짬뽕을 맛보는 것 같다.

15세 이상 관람가. 7월 2일 개봉.

추신. 시리즈 창조자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터미네이터5'를 극찬했다고 한다. 그는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나서 반가웠거나, 리부트로 들어올 수입을 기대했거나, 영화를 안 봤던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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