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류현진의 길, 크리스 영이 앞서 걸었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5.22 07:23 / 조회 : 4176
  • 글자크기조절
image
왼쪽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은 류현진. /AFPBBNews=뉴스1






정확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왼쪽 어깨 통증에 시달리던 류현진(LA 다저스)이 끝내 수술대에 올랐다. 22일 LA에서 관절경수술(arthroscopic surgery)을 받았다. 과연 그의 앞길엔 어떤 시련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수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조건과 상황에서 류현진과 비슷한 케이스를 찾다보니 과거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 뛰었던 우완투수 크리스 영(35, 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이름을 발견했다.

메이저리거로는 드물게 보는 아이비리그 명문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수재인 영은 키가 6피트 10인치(208cm)나 되는 엄청난 장신으로 역시 6피트10인치였던 야구 명예의 전당 멤버 랜디 존슨과 함께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최장신선수 랭킹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당연히 존슨 스타일의 강속구 투수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역대 최고의 파워피처 중 하나였던 존슨과 달리 영은 제구력을 앞세우는 그렉 매덕스 형의 컨트롤 피처다. 무리하지 않는 부드러운 투구모션을 지닌 제구력 중심의 투수로 때로 90마일 이상의 빠른 볼도 던진다는 점에서 류현진과 닮은 구석이 많다.

2004년 8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 그해 7경기에 선발로 나서 3승(2패)을 올린 영은 이듬해 레인저스의 개막전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한 뒤 31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12승8패, 방어율 4.26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시즌 종료 후 애드리언 곤잘레스(현 LA 다저스) 등과 함께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됐고 다음 5년간 파드레스에서 뛰었다. 2006년 시즌 31경기에 선발로 등판, 11승5패, 방어율 3.46과 탈삼진 164개를 기록한 영은 2007년 4월 파드레스와 4년간 1.460만달러 연장계약을 체결했고 그해 7월에 생애 첫 올스타로 뽑히며 메이저리그 스타덤을 향해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 영의 커리어에 급제동이 걸린 것은 2009년 어깨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시즌을 4승2패로 순조롭게 출발했던 영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4연패의 늪에 빠졌고 결국 6월 중순 15일짜리 부상자명단(DL)에 올랐다. 그는 수술을 피하기 위해 휴식과 재활, 약물치료를 통해 복귀를 위해 노력했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자 7월말 60일짜리 DL로 옮겨졌고 결국 8월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당시 영의 수술 소식을 전한 뉴스보도엔 그가 ‘어깨 청소를 위한 경미한 수술’(minor cleanup surgery)을 받았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투수에게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어깨에 관한 한 ‘경미한’(minor) 수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8월 수술을 받은 뒤 약 6개월여의 재활과정을 순조롭게 소화한 영은 이듬해인 2010년 시즌 개막과 함께 팀의 2선발로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했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시즌 2차전에 선발 등판, 6이닝동안 86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의 빼어난 호투를 했다. 여기까지는 ‘경미한 수술’이라는 표현이 맞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어깨에 통증이 돌아온 것을 느꼈고 결국 다시 DL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 영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별 문제 아니다. 곧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자신도 잘 몰랐던가, 아니면 자신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다. 끝을 모르는 끊임없는 치료와 재활이 반복되며 장기간 DL에 머물러야 했던 영은 시즌 후반기에 돌아와 마이너리그에서 재활피칭을 하며 재기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갔으나 시즌 막판에 잠깐 돌아오는데 그쳤을 뿐 결국 2010년 시즌을 거의 전부 결장했다.

파드레스는 시즌 종료 후 영에 대한 2011년 계약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고 프리에이전트(FA)로 풀린 영은 이듬해 뉴욕 메츠와 인센티브 위주로 된 1년 계약을 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단 4게임에 나선 뒤 다시 어깨 통증이 도져 잔여시즌을 결장해야 했고 결국은 또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웬만한 선수라면 “이제 그만”하고 진작 포기했을 정도의 혹독한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영은 놀랍도록 강인한 의지력을 지닌 선수였다. 2012년 3월 다시 메츠와 마이너계약을 체결한 그는 마이너에서도 한 달 이상 DL에 올라 있다가 싱글A와 트리플A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한 번도 재기를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고 결국 6월 마침내 메이저리그 무대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메츠에서 20경기에 선발로 나서 115이닝을 소화하며 끝내 재기에 성공한 듯 했다. 2012년 성적은 4승9패, 방어율 4.15. 하위권인 메츠에서 승패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115이닝동안 119안타만 내줘 WHIP(이닝당 출루) 1.35를 기록한 것은 그가 거쳐 온 여정을 감안하면 거의 기적 같은 성과였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13년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한 영은 구위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그 해를 모두 마이너리그에서 보내야 했고 그나마 또 다시 수술로 중도에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이 시점에선 그의 선수 커리어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로 보였다.

하지만 영의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었다. 2014년 3월말 시애틀 매리너스와 인센티브 위주로 짜여진 1년 계약을 체결한 영은 4월13일 약 1년 7개월만에 다시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여기서 6이닝동안 4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한 영은 이후 매리너스 선발진의 5선발로 입지를 굳혔고 로이드 맥클랜던 감독은 그를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극찬했다. 결국 그해 선발로 29경기에 나서 12승9패, 방어율 3.65의 놀라운 성적을 남긴 영은 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와 스포팅뉴스, 그리고 메이저리그 선수협회로부터 모두 ‘올해의 컴백선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완전한 재기를 알렸다. 소위 ‘마이너’ 관절경 어깨수술을 받은 지 무려 5년 만에 만 35세 나이로 일궈낸 ‘인간승리’였다.

하지만 이런 성공적 재기에도 불구, 다수의 어깨수술 경력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붙은 데다 나이마저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그에게 장기계약을 주는 팀은 없었다. 영은 어느덧 이젠 매 시즌마다 새롭게 자신의 실력과 가치를 다시 입증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 매리너스는 그에게 재계약을 오퍼하지 않았고 시즌 종료 후 다시 FA로 새 팀을 찾아나서야 했던 영은 올해 3월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했다.

로열스에서 커리어 처음으로 불펜투수로 시즌을 시작한 영은 지난 5월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올해 처음으로 선발 등판, 5이닝동안 삼진 9개를 뽑아내며 무안타 무실점의 눈부신 투구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한 차례 다시 구원등판 후 로열스의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 마지막 두 게임에 선발로 나선 영은 올 시즌 현재 9경기(선발 3경기)에 나서 28.2이닝을 던지며 3승무패, 방어율 0.94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 중이다. 28.2이닝동안 삼진 21개를 잡아냈고 안타는 11개, 볼넷 7개만을 내줘 WHIP이 0.63으로 눈부신 수준이다.

영은 오는 25일 만 36세 생일을 맞는다. 6년전 만 30세 때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 반열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가 소위 ‘경미한’ 어깨 수술을 받은 이후 계속 수술과 재활을 반복해야 하는 암흑의 터널에서 5년 이라는 긴 세월을 악전고투해야 했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재기에 성공했다.

비록 한때 장밋빛이었던 그의 커리어는 이제 ‘저니맨’ 신세로 떨어질만큼 만신창이가 됐으나 그럼에도 불구,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끝내 재기에 성공한 그는 위대한 승리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커리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영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류현진의 앞길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영처럼 험난한 코스를 거치지 않고 순조롭게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시련과 도전이 닥치더라도 결코 실망하고 포기할 필요가 없음을 영은 자기의 삶을 통해서 웅변하고 있다. 류현진의 건투와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