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 "여전히 배고프지만 연기 놓치고 싶지 않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5.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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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사진=이정호 인턴기자


독립영화 '잉투기'를 찾아본 관객이라면 엄태구(32)란 배우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선 굵은 외모에 단단한 몸, 바닥에 착 달라붙은 듯한 중저음. 다듬지 않은 강철 같다.

형인 엄태화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잉투기'로 세상에 얼굴을 알린 건 마치 류승완-류승범 형제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는 듯 했다.


엄태구는 KBS 2TV드라마 '감격시대'와 영화 '인간중독' 등 여러 작품을 오가며 조금씩 얼굴을 알리고 있다. 그의 단단함을 일찌감치 알아본 눈썰미 좋은 관계자들 사이에선 호평이 자자하다. 무섭게(?) 생긴 외모와 달리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도 의외의 매력이다.

엄태구는 지난달 29일 개봉한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에서 묵묵히 조직보스인 엄마(김혜수)의 말을 따르는 남자로 출연했다. 말수는 적지만 그래도 조직을 떠난 일영(김고은)을 가족이라고 아끼는 남자. 폭력을 들어낸다면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듬직한 아들이기도 하다. 듬직한 남자, 엄태구를 만났다.

-'차이나타운'은 어떻게 하게 됐나.


▶그 역할로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한준희 감독님이 내 눈이랑 목소리, 우울하고 어두운 기운이 그 역할에 맞다고 생각한 것 같다. '대부'를 워낙 좋아해서 '차이나타운'이 그 정서가 비슷해서 좋더라. 또 여성들이 주인공인 느와르라는 게 워낙 좋아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 그들과 함께 식구가 되고 싶었다.

-건국대 영화과를 나왔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나.

▶중학교 때 교회에서 촌극을 했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당시 같이 했던 잘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는 이 길(연기)로 정했다며 같이 하자고 하더라. 그 친구는 나중에 미술쪽으로 빠졌고, 난 이 길을 택했다. 딱히 할 것도 없었다.

-형도 영화를 택했는데 부모님이 반대는 없으셨나.

▶믿어주셨다. 연기 학원을 등록하려는데 형편이 안 되서 부모님이 돈을 빌려서 주실 정도였다. 안산에서 살았는데 지금도 기억나는게 동대문역 근처에 있는 연기학원에 등록하는데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돈을 그 앞에서 뭉치로 주시면서 형이랑 가서 내고 오라고 하셨다. 형도 당시 미성년자였지만 동생 잘 챙기면서 같이 갔다오라고 하셨다.

-중저음인 발성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정확히 잘 안 들리는 양날의 검 같기도 한데. 약점이라고 생각하나 강점이라고 생각하나.

▶약점 반, 강점 반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음향 감독님이 안 좋아하신다. 드라마를 할 때는 많이 혼나기도 했다. 정확하게 발성을 전달하기 위해 무작정 매일 성경을 읽는다. 지금 3번째 읽고 있다. 이게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다. 정확한 발성은 계속 노력해야 할 숙제다.

-'차이나타운'에서 맡은 역할은 상당히 강한 남자다. 무뚝뚝하고. 멋있게 보이기 쉬운.

▶멋부리지 말자고 처음부터 결심했다. 시나리오를 볼 때 그 인물이 멋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멋을 부리지 않아야 최대한 그 인물이 살아날 것 같았다. 그냥 일영(김고은)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성이라기 보단 가족이랄까. 그래서 내가 대신 죽을 수 있는 여자가 누구일지 생각해봤다. 엄마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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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사진=이정호 인턴기자


-김혜수 외에는 대부분 신인 연기자였는데. 배우들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김혜수 선배는 베테랑인데 나머지는 다 신인이었다. 그런데 김혜수 선배가 정말 대단한 게 전체를 다 아우르면서 우리 캐릭터 하나하나까지 다 분석을 해오셨더라. 우리는 자기 꺼 분석하기 급급했는데. 김혜수 선배가 "너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으면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같이 갔다.

김혜수 선배가 같이 밥을 먹어야 식구라며 회식도 자주 했다. 직접 고기를 구워서 많이 먹으라며 그릇에 수북이 쌓아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과 행동이 말로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쿵쿵 심장으로 들어와 알게 해주는 부분이 많았다.

-다른 배우들과는 어땠나.

▶내성적이라 나 때문에 괜히 피해주지 않나 걱정스러웠다. 즐겁게 있는 분위기에 내가 끼면 어색해지진 않나 싶었고. 박보검이나 고경표, 김고은 등 동생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해줘서 고마웠다. 그래서 내 안의 이런 부분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차이나타운'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좀 더 멋있게 퇴장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배우로서 아쉽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이 전화가 와서 지금 버전으로 가야 한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감독님이)전체를 보시는 분이니 그렇다면 그렇게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지금 모습이 더 인간적이지 않나 싶다.

-'감격시대'도 했고, 영화도 계속 출연 중이다. 예전만큼 배고프지는 않을텐데. 미지급 논란이 있었던 '감격시대' 출연료는 다 받았나.

▶'감격시대' 출연료는 절반 받았다. 여전히 배고프지만 그래도 끼니 거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란 직업이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다. 막연히 멋있을 것이라는 꿈을 갖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런 환상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그래야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외롭고 힘든 직업이지만 놓치고 싶진 않다.

-강한 이미지다보니 그런 역할들로 고정되지 않을까 고민스럽지는 않나.

▶언젠가 다른 역할도 오겠지라고 생각한다. 안 하던 것을 하면 겁도 나지만 그런 것을 해보려는 나한테 기대도 된다.

-류승완-류승범 형제처럼 또 계속 같이 작업을 할 생각인가.

▶형은 상업영화 데뷔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나한테 맞는 역할이 없다고 하더라. 글쎄 '잉투기' 때도 나를 출연시키는데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다더라. 형과 알려지지 않은 많은 단편영화들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내가 잘 하고 영화에 맞는다면 같이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잘 해야 한다는 것 같다.

-'차이나타운'이 제6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는데. 칸에 가나.

▶글쎄, 오디션을 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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