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다시 벤치' 강정호, 기다림도 승부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4.24 07:18 / 조회 : 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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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 /AFPBBNews=뉴스1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마침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번 주 시카고 컵스와의 4게임 홈 시리즈 가운데 첫 3게임에 선발로 나설 기회를 잡은 강정호는 이중 마지막 두 게임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이미 노골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던 마이너행 논란을 일단이나마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그의 마이너행은 없다고 꾸준히 강조했던 피츠버그의 닐 헌팅턴 단장과 클린트 허들 감독도 강정호의 이번 활약으로 한결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강정호가 계속 부진해 여론이 계속 악화됐더라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신념을 굽혀야 할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는데 그럴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강정호가 사전에 차단해줬기 때문이다.

사실 강정호가 이번 컵스 시리즈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데는 행운도 따라줬다. 주전 유격수인 조디 머서가 지난 주말 경기 도중 번트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투구를 몸에 맞아 다치면서 강정호에게 3게임 연속으로 출전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져도 그걸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 강정호는 홀연히 찾아온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3번째 선발출전 기회를 잡았던 21일 1차전에선 3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시즌 개막 후 13게임에서 13타수 1안타(타율 .071)의 빈타를 이어갔던 강정호는 22일 2차전에선 4회 깨끗한 좌전안타로 자신감을 충전한 뒤 5-5 동점이던 7회말 2사 주자 만루상황에서 우중간 펜스를 원바운드로 때리는 호쾌한 주자일소 3타점 2루타를 뿜어내 자신의 빅리그 첫 3타점을 올리며 마침내 홈팬들에게 ‘강-정-호’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컵스의 조 매든 감독은 2사 1, 3루 위기를 맞자 스탈링 마테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강정호와 대결을 선택했다. 원아웃이라면 만루를 만들고 병살을 노리겠다는 의미겠지만 투아웃 상황에서 고의사구로 득점권 주자수를 2명으로 늘렸다는 것은 그만큼 마테에 비해 강정호가 훨씬 상대하기 수월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강정호는 여기서 컵스 구원투수 제이슨 모트의 시속 155km짜리 2구 빠른 볼을 정통으로 받아쳐 우중간 펜스를 원바운드로 맞추는 큼지막한 2루타로 주자 3명을 모조리 홈에 불러들이며 매든 감독의 판단이 틀렸음을 선언했다. 오래 묵은 체증을 한꺼번에 쓸어내려준 시원한 한 방이었고 피츠버그 불펜이 막판에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시즌 결승타가 됐었을 ‘빅 히트’였다. 멀티히트와 멀티타점을 한꺼번에 기록한 이 경기를 통해 강정호는 팀 동료와 코칭스태프에게 신뢰를 심어주며 본인도 상당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23일 3차전에선 강정호의 회복된 자신감이 바로 플레이에서 느껴졌다. 2회말 팀이 3연속 안타로 1-0 리드를 잡고 무사 주자 2, 3루 찬스를 잡은 상황에서 첫 타석에 나선 강정호는 컵스의 오른손 선발투수 제이슨 해멀에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내리 4개의 변화구를 던진 해멀을 상대로 두 차례 방망이를 휘둘렀으나 약한 파울볼에 이어 맥없는 스윙으로 2볼-2스트라이크로 몰렸다. 여기서 강정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레그킥을 자제한 채 볼에 방망이를 맞추는 모드로 전환했고 5구째에 가운데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는 낮은 커브를 끝까지 따라가며 그라운드 바로 위에서 퍼 올려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3루 주자를 홈에 불러들였다.

파워를 희생하고 콘택트에 초점을 맞춘 타격이었지만 언밸런스 자세로 쳤음에도 불구, 타구가 상당한 거리를 날아가 3루 주자가 여유있게 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어 이날 두 번째 타석에선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섰지만 다음 타석에서 깨끗한 좌전안타를 때린 강정호는 두 게임에서 6타수 3안타, 4타점을 기록하며 빅리그 피칭을 상대로 감을 잡기 시작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강정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두 경기에서 잠깐 ‘반짝’했다고 주전 자리를 얻은 것도 아니다. 당장 24일 시리즈 4차전에서 머서가 부상에서 회복돼 라인업에 복귀하자 강정호는 곧바로 벤치로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또 다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언제 또 다시 올지 모를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예리함을 유지해야 한다. 실전에 자주 나서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으면서 예리한 타격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강정호가 받아들었고 극복해야할 과제다.

물론 이제부턴 초반보다 출전기회가 다소 자주 올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타석수가 큰 폭으로 늘진 않을 것이다. 페드로 알바레스(1루)-닐 워커(2루)-조디 머서(유격수)-조시 해리슨(3루)으로 이어지는 피츠버그의 내야진은 매우 탄탄할 뿐 아니라 젊고 떠오르는 선수들이다. 강정호가 단시일 내에 이들을 대체하긴 어렵다. 당장 머서는 나흘 만에 복귀한 24일 경기에서 3-4로 뒤지던 6회말 좌전 적시타로 동점타점을 뽑아내며 건재를 알렸다. 반면 강정호는 5회 투수 대신 대타로 나서 3루 땅볼을 친 것을 끝으로 경기에서 물러났다. 시즌 초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여기서 강정호는 자신의 도전이 단기전이 아니라 ‘마라톤’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급하게 생각하는 순간 도전은 훨씬 어려워진다. 메이저리그 시즌은 무려 6개월 이상 광대한 미 대륙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살인적 강행군의 연속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시즌 전체를 장시간의 슬럼프나 부상없이 통과하기란 힘들다.

강정호에게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 문제는 기회가 올 때 그것을 살려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강정호는 그 첫 기회를 잘 살렸지만 그 것만으론 부족하다. 꾸준하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고 언제라도 팀이 필요로 할 때 믿어볼 수 있는 선수라는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항상 준비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시즌 출발과 같은 침묵이 돌아온다면 마이너행 주장은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강정호로선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마라톤 레이스에서 매 순간마다 긴장상태로 계속 이어갈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와중에 길게 보는 안목을 가지고 순간순간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기나긴 마라톤 시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일단 가능성을 알렸으니 이제부턴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꾸준함으로 승부해야 한다. 강정호는 이제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빅리그에서 뿌리를 내리려먼 앞으로 수없이 많은 관문을 넘어야 한다. 희망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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