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화장', 102번째 작품이라도 여전히 떨린다"(인터뷰)

김소연 기자 / 입력 : 2015.03.3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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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영화를 100편 넘게 찍었지만, 102번째 새로운 도전엔 떨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고수했던 한국적인 정통을 잠시 내려놓고 생활 밀착형 이야기를 택한 임권택(81) 감독은 그래서 "이번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정말 궁금하다"고 털어 놓았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인 '화장'은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수발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온 여자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30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마주한 임권택 감독은 "이전까지 비슷하게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으로 '화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100여 편의 작품들을 만들어 오면서 다른 것을 만들고자 했지만, 큰 틀로 보면 비슷한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의 문화적인 것들, 우리 삶의 수난사, 한국의 문화와 혼, 역사성이 있는 것들을 주로 해왔죠. 그런데 '화장'은 이런 것들과 연관이 없는 일상생활을 찍었어요. 그게 이전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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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임권택 감독의 말처럼 그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는 연출자로 유명하다. '서편제', '아제아제바라아제', '축제', '춘향뎐' 등에선 가장 전통적인 한국 문화를 담았고, 세계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임권택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 트로피를 안긴 '취화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임권택 감독의 성과에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찬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전작들을 관통하는 한국적인 정서로만 설명할 수 없다. '화장'의 주인공 오상무(안성기 분)는 화장품 회사의 중역이자 중산층 가장이다. 투병 중인 그의 아내(김호정 분), 에너지 넘치는 직장인 추은주(김규리 분) 등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스크린에서 펼치는 사건과 이야기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이다.

이전까지 작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새로운 작품에 대한 도전 욕구가 임권택 감독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도전은 40년 넘게 영화를 해온 베테랑도 긴장케 했다. 임권택 감독이 캐스팅 단계부터 더욱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다. 100편이 넘는 작품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배우들이 셀 수 없다. 그렇지만 임권택 감독은 개인적인 인연 보다는 작품에 맞는 배우를 찾는데 집중했다. 안성기와 김규리, 김호정이란 배우를 택한 것도 이전까지의 관계보다는 캐릭터와의 싱크로율만 생각했다.

임권택 감독의 도전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돼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물론 며칠 전에도 홍콩국제영화제에도 초청돼 GV가 진행되기도 했다.

'화장'을 본 관객들이 이 영화에 가장 찬사를 보내는 부분은 사실적인 표현이다. 노출과 베드신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도록 연출하지 않았다. 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때문에 임권택 감독은 "왜 우리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왜 우리 영화를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영화로 한정시키는지 이상했어요. 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바르게 파악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싶었죠. 연출자로서 표현의 강도를 더 낮출 생각도 없어요. 이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병든 아내를 둔 중년 남자가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을 짝사랑하고, 부부 관계를 맺는 순간까지 다른 이성을 상상한다는 설정은 자칫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임권택 감독이 고민한 부분도 이 지점이었다.

"당연히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부분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그런데 외도를 행동으로 옮기진 않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요. 영화에선 나이가 많고, 인생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니까 적당히 꾸며 맞춘 얘기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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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영화에 대해선 강한 주관을 드러낸 임권택 감독이지만 일상생활을 묻는 질문엔 "잘 모른다"며 "난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02개의 작품을 쉼 없이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영화에 빠져 산 탓이다.

"영화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취미도 없어요. 놀라고 시간을 줘도 어떻게 놀아야 할 지 몰라 못 놀아요. TV로 다큐멘터리나 음식프로그램 보는 게 다인 것 같네요. 그래서 아내에게 더 고마워요. 아내가 없었으면 제 생일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을 거예요. 매년 아내가 챙겨줘서 '생일이구나' 하고 알죠."

임권택 감독은 꾸준함을 무기로 영화계의 존경받는 큰 어른이 됐다. 지난 25일 중국 마카오에서 열린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지만 여전히 "난 선생님이나 거장이란 말은 별로"라며 새벽 3시에 일어나 작품을 고민하는 생활을 20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아직도 전 제가 만든 작품을 보면 아쉽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요. 이번에 공로상을 받았을 때에도 '내가 100개 넘는 작품을 한 감독인데 초기에 한 50개 작품은 너무 부끄러워서 버리고 싶은 작품'이라고 했어요. 그냥 저에 대해 좋게 말씀해주시는 건 40년 동안 한 일을 해왔다는 것을 높게 사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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