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마이웨이' 망해 '장수상회' 한다고? 사실은.."(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3.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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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사진=이정호 인턴기자


누군가는 이제 강제규 감독이 끝났다고 했다. 그가 200억원이 넘게 든 '마이웨이' 흥행이 실패한 뒤로 '민우씨 오는 날' 같은 단편영화를 찍고,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 '장수상회'를 한다니 별의별 말들을 만들어냈다.

강제규 감독. '은행나무 침대'로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고, '쉬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탄생시켰고,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영화를 내놨다. 한국영화 산업이 성장하는 길에, 그 중심에, 늘 그가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매니지먼트사도 운영했으며, 우회상장도 해봤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해볼 건 다 해봤기 때문일지, 강제규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했었다. 여의치 않은 와중에 방향을 돌려 '마이웨이'를 만들었다. 거대한 영화, 포화에 쌓여있는 영화는, 그의 것이었다.

그랬던 강제규 감독이 '장수상회'를 만든다니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장수상회'는 고집불통으로 홀로 살고 있는 한 노인이 이웃으로 이사 온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자칫 뻔할 수 있던 노년 멜로영화는 큰 반전 이후 기어코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강제규 감독은 '장수상회'도 감정을 건드는, 성장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장수상회'를 왜 맡았나.

▶그동안 했던 영화들이 검은 교복 같이 목까지 옮아 맸던 것 같았다. 완전군장을 하고 뛰는 느낌이랄까. 그러내 런닝화를 신고 경쾌하게 걷는 그런 느낌의 영화를 하고 싶었다. 사람에 포커스를 맞추는 그런 영화에 대한 갈증도 컸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대명사 같던 인물이 '장수상회' 같은 영화를 한다니 말들이 참 많은데. '마이웨이' 이후다보니 이제 블록버스터는 안되니 방향을 돌렸다는 말도 나오고.

▶늘 특별한 시대, 특별한 인물을 다뤘다. 연출자로서 그런 중압감이 힘들었다. 너무 여행이 길어서 육신이 힘들어서 힐링하는 영화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이웨이'가 잘 됐어도 '장수상회'를 했을 것이다. 흥행 때문에 '장수상회'를 한 건 결코 아니다. 내가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일을 다루고 싶었다.

사람인지라 사람들이 하는 그런 소리들에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결국 본질로 돌아가게 되더라. 감독으로서 나. 진짜 내가 필요한 게 뭐지를 생각하게 되더라. 상황에 떠밀려 선택한다면 또 불행해지지 않겠나란 생각이 들더라.

-'장수상회'는 반전으로 이야기가 확 바뀐다. 평범한 노년 사랑 이야기에서 영화가 바뀐다. 그런 설정 때문에 더 끌렸던 건 아닌가.

▶반전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120%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란 점이 컸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장수상회' 속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이시다.

-영화 전반부에선 캐릭터들이 대부분 희화화됐다. 작정하고 코미디를 만든다는 느낌처럼 보여 지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반전 이후 캐릭터들의 모습마저 확 바뀐다. 반전 이후 영화가 속도를 갖게 되는데.

▶캐릭터를 희극처럼 묘사한 건, 그런 병을 갖고 있는 분들은, 그 주변사람들은 사실 아주 힘들다. 힘든 삶을 일부러 영화 속에서 또 보여주면 공감은 되겠지만 뭘 얻을 수 있겠나 싶었다. 오히려 판타지를 주고 싶었다. 비현실적이라기보다 영화적으로 슬기롭게 그 상황을 극복해 그분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유쾌하게 만들고 싶었다.

-초반에는 이야기가 늦게 흐르다보니 지루하게 느끼기 쉽다. 반전을 위한 미스터리 적인 요소를 넣어서 더 빠르게 갈 수도 있었을텐데 일부러 그런 호흡을 고수한 이유는.

▶그게 이 영화의 본질이다. 의도임과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앞부분에 좀 더 빠른 호흡으로 가면 내가 생각하는 감정이 중후반부에 덜 쌓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두 번 보면 훨씬 더 잘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을 알고 보면 굉장히 치밀하게 만들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극 중 중요한 장소인 중국집에 '철가방 휘날리며'라는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를 패러디해서, 마치 강제규 감독이 이제 코미디를 만든다는 느낌이 들던데. 적어도 전반부는 그렇게 받아들이기 쉽고.

▶미술팀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갖고 왔는데 처음에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패러디한지도 몰랐다. 어디서 많이 본 건데, 라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관객이 장난친다고 받아들이면 어쩌냐고 했더니 젊은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십 몇 년 전 영화라 기억도 못할 것이라고 하더라. 그럼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주인공 성칠(박근형)이 옆집 할머니 임금님(윤여정)과 만난 뒤 계속 변화한다. 일종의 성장담이고. 성칠이 10대, 30대 등등 각 세대와 계속 대화를 하는 장면을 넣어서 이 인물의 변화를 그리는데.

▶사랑에 눈 뜨면서 변하는 과정이다. 드라마틱하게 인물이 성장하는 것을 주로 했다가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관찰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동안 영화 속에서 치열하게 감정들이 부딪혀 충돌하는 걸 많이 보여줬었다. 그런 것에 대한 피로 때문에 '장수상회'에선 이런 식의 감정 배치를 한 건가.

▶감독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다. 그동안 특정 장르 안에서 내가 보여준 얼굴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나도 잘 모르는, 내 안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늘 영화 속에 성장담을 넣는데. 성장하는 인물이 강제규 영화의 테마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마이웨이'는 한국 주인공(장동건)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욕을 먹었으니. 오히려 일본 주인공(오다기리조)이 성장한다고 욕을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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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사진=이정호 인턴기자


-'장수상회'는 그동안 강제규 영화와 많이 다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다른 건 소재를 떠나 빛과 음악의 사용인 것 같은데. 카메라가 인물을 강조하지도 않고, 음악이 감정을 과잉시키지도 않는데.

▶배우들이 대본 리딩을 하는 걸 보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클로즈업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박근형 윤여정 같은 배우들은 굳이 얼굴을 가득 잡아내지 않아도 상체만 잡아도 감정이 충분히 보일 것이란 믿음이 들더라.

이동준 음악감독과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수상회'는 음악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 건 영상의 몫이고, 눈물을 똑 떨어뜨리는 건 음악의 힘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거기까지 가서 안된다고 했다. 음악이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은 대부분 타입 캐스팅이다. 그런데 박근형은 예외다. 박근형은 그동안 TV드라마에서 주로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 역할을 맡았다. 그랬던 박근형을 독불장군에 고독한 인물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박근형 선생님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걸 정반대로 보여주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모습을 뒤집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반전이 담겨 있는 닫힌 방은 카메라 앵글부터 다 다르게 접근하던데.

▶콘티부터 그렇게 기획했다. 구도나 앵글이 일상적이지 않아야 했으니깐.

-방 안에서 툭하고 발견되는 유서 같은 메모랄지, 일상적인 소품을 툭하니 던져 넣어 오히려 감정을 더 건드리는데. 과거라면 쌓이고 쌓여서 폭발시켰을 감정들인데.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나오는 그런 것들, 그런 날감정들이 훨씬 세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개봉시기를 놓고 영화계에서 사실 말들이 제법 돌았다. 하필이면 임권택 감독의 '화장'과 같은 날 개봉한다고. 사실 그래서 '장수상회' 개봉날짜를 일찍 공표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

▶뒤늦게 알았다. '장수상회' 날짜가 먼저 4월9일로 잡혔고, '화장'은 그 다음 주인 줄 알았다. 같은 날 하게 됐다는 소리를 듣고, 그러면 우리가 뒤로 가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대로 그렇게 조정할 수 있는 그런 시대도 아니고. 또 배급쪽에선 4월이 워낙 비수기니 같이 가서 붐업을 하는 게 더 좋다고도 하고.

-한국 영화산업 한 가운데 있어왔다. '장수상회'처럼 뒤돌아보면 아쉽거나 아련한 것들이 있을텐데.

▶확실히 변한 건 얼마 전까진 소명감 같은 게 있었다. 명분을 자꾸 가지려 했었다. 책임감도 동반했고. 지금은 내가 흥미진진한 것에 끌린다. 명분은 중요하지 않고 나한테 충실하게 됐다. 감독으로서 본질로 돌아가게 된 것 같다.

정말 많은 걸 해봤다. 감독도 하고, 제작도 하고, 매니지먼트사도 하고, 상장도 해봤다. 그 시간을 딱히 후회하지는 않지만 돌이켜보면 세상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느낀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런 여러가지를 할 시간에 감독만 했다면 더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차기작까지 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앞으로는 좀 빨라지나. 또 기획하는 영화들 중에는 북한 소재도 있고. 북한 소재는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가.

▶분명히 좀 더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물론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그런데 북단과 거기서 오는 아픔은 내가 놓치지 않고 갖고 있는 유일한 끈 같은 것이다.

중국에서 제안도 많이 받고 시나리오를 기다리는 것도 있다. 한중합작으로 총 제작을 하는 것도 있고. 예전에는 어디서 하고 싶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으면 그게 제일이다. 결국은 행복하려 영화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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