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김치냄새에 낚인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들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2.27 10:59 / 조회 : 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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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에 출연한 엠마 스톤/버드맨 스틸


'버드맨' 김치냄새 논란은 낚시다. 낚시란 걸 알면서 이 논란에 숟가락을 얹는 건 잘못된 것들을 계속 낚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맨'은 지난 22일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영화다. 이제는 퇴락한 한 때 잘나갔던 슈퍼 히어로물 주인공이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려는 이야기다. '비우티풀' 등으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에게 반한 영화팬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던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엉뚱하게 불이 튀었다. '버드맨'이 4관왕이 돼 검색어가 포털사이트 상위에 오르자 한 통신사가 발 빠르게 영화 속 장면을 인용해 '김치 냄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마이클 키튼의 딸로 나온 엠마 스톤이 꽃집에 들려 "모두 김치처럼 역한 냄새가 나는군"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덕택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던 엠마 스톤은 졸지에 '김치녀'가 됐다.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감히 신성한 김치에 욕을 하다니라며 열심히 돌을 던진다.

사실 '버드맨' 김치냄새 논란은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하기 전, SNS에서 살짝 일었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지, 특정 장면으로 전체를 비하하는 건 옳지 않다는 의견이 많이 일면서 유야무야 사라졌었다.


그랬던 '버드맨' 김치냄새 논란이 크게 불거져 TV뉴스까지 장식하게 된 건 언론의 검색어 장사 탓이다. 이 검색어 장사는 민족주의에 여성비하까지, 성감대를 제대로 건드렸다. 예쁘고 유명한 여배우가 상까지 받은 미국영화에서 한국을 비하하다니란 정서를 뭉게뭉게 일게 만들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한국음식을 즐긴다고 하면 박수를 치고, '버드맨'에서 김치냄새가 난다고 하면 저주를 퍼붓는다. 참담한 이중성이다. 국가가, 민족이, 그리고 정통이 소중한 건 국가가, 민족이, 그리고 정통이 지켜왔던 것들 때문이다. 그것들은 세상 누구에게나 같은 게 아니다. 김치냄새는 한국인에겐 어머니의 냄새일 수 있지만 외국인에겐 혐오스러울 수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다.

정작 '버드맨' 김치냄새 낚시장사로 오히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들여다보고 생각했어야 했을 많은 것들은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보이후드'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패트리샤 아퀘트는 "아이를 낳은 모든 여성들, 이 나라에 세금을 내는 모든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워 왔다. 이제는 미국에서 평등 임금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할 때"라고 수상 소감을 밝혀 환호와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각색상을 받은 그레이엄 모건은 이렇게 말했다.

"남들과 너무 다르다(weird)는 생각으로 16살 때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너무 이상하고 달라서 어디에서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이 무대에 서 있다. 이 순간은 자신이 이상하고 다르며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기회가 오면 당신도 이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렇다. 괜찮다. 이상한 채로, 다른 채로 머물러라.(Stay weird. Stay different) 그리고 기회가 오면 당신도 이 무대에 올라 다른 사람에게 이 메시지를 꼭 전해달라."

그레이엄 모건이 상을 받은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로 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 해독 장치를 만들어 영국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앨런 튜링의 이야기다.

주제가상을 받은 '셀마'가 수상을 앞두고 주제곡 '글로리'를 공연했을 땐 흑인배우들이 눈물을 흘렸다. '셀마'는 흑인인권운동을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일화를 다룬 영화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연기상에 흑인 후보들이 전혀 없어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었다.

김치냄새 장본인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지금의 이민자들이, 예전 이민자의 나라를 만든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게 존중받길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 출신이다.

여성과 인종, 동성애, 이민자 등 여러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쏟아진 것이다. 미국 뿐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한 이런 이야기들은 채 피어나지도 않았다. 오로지 김치냄새만 남았을 뿐.

김치는 소중하다. 하지만 남들에겐 다를 수 있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 지금 필요한 건 그것이다. '버드맨' 김치냄새 논란은 그저 고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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