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이 말하는 '쎄시봉', 멜로, 그리고 뒷모습(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5.01.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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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쎄시봉'의 김윤석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표정을 알 것 같은 등이 있다. 김윤석(47)은 그런 뒷모습을 한 배우다. 아무도 나눠지지 않은 무거운 짐을 홀로 진 쓸쓸한 중년의 뒷모습은 종종 그의 전매특허가 된 소름끼치는 열연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는 2월 5일 개봉하는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제작 제이필름 무브픽쳐스)에선 그 뒷모습이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배우의 진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화이', '해무', '타짜'를 잘 보고도 김윤석이 무서운 아저씨가 되어가는 게 내심 불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쎄시봉'은 오래 기다려 받은 화답 같다.


'쎄시봉'은 1960년대 말 한국 포크음악의 산실이었던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의 이야기다. 전설의 포크듀오 트윈폴리오의 탄생 비화를 아련한 러브스토리와 함께 그린 이 작품에서 김윤석은 트윈폴리오 제3의 멤버 오근태의 40대를 그렸다. 영화의 절반하고도 한참이 흐른 뒤에야 스크린에 등장하는 김윤석은 청춘과 함께 사랑과 친구와 노래를 모두 떠나보내고 만 중년이 됐다. 굳은 표정과 내리깐 시선으로 몇 겹의 보호막을 쳤던 남자는 먼 이국의 공항에서 마주한 옛 그녀의 질문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돌아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끝내 무너져 내린다.

물기어린 영화 탓일까, 기분 탓일까. 다음 영화 콘셉트를 못 정해 그렇다며 길게 자란 머리를 늘어뜨린 그의 모습이 전에 없이 애틋해 보였다. "내가 원래 로맨틱하다"던 김윤석은 이내 "아침이라 몽롱해서 그렇다"며 산통을 깨곤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우와 20대, 40대를 나눠 연기하는데 분량도 적다. 어떻게 출연을 결심했나.


▶지난해 스케줄이 그 정도 비중밖에 촬영할 수 없었다. 마침 딱 맞았다. 그 전에 김현석 감독님의 영화도 다 봤다. 찌질한 순정남이라고 해야 하나, 특징이 딱 있지 않나. 저 감독님이 참 설렁설렁 만드는 것 같아도 놓치지 않는구나, 속에 뭔가가 있구나 해서 만나보고 싶던 차였다. 분량에 상관없이 하기로 했다. 그런 데선 득도한 것 같다. 욕심이 안 난다.

-그 찌질한 남자(?)에 김윤석이 캐스팅됐다는 것도 신선했다.

▶빈말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고백을 못 하고 바라보는 스타일이고 주저주저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내고 그런다. 내 속에 있는 부분들이라 그 장면들이 낯설지 않았다.

-정우와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

▶제일 먼저 캐스팅된 사람이 나다. 나하고 정우하고 생긴 게 다르다, 이걸로 나한테는 뭐라고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모른다.(웃음) 정우는 눈으로 잘 웃는다. 웃는 게 시원하고 기분 좋지 않나. 나도 웃을 때 눈으로 웃는데 그런 부분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또 걔도 부산 사람이라 비슷한 바탕이 있다. 서울 뺀질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다. 연기할 때는 공통점을 찾으려고 전혀 애쓰지 않았다. 비슷하게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다르고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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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쎄시봉'의 김윤석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옛 연인으로 김희애가 등장한다. 멜로 연기 하고 싶다던 소원은 푸셨나.

▶어떠한 접촉이 없다. 제가 김희애씨 오른쪽 어깨를 한 번 잡은 것 외에는. 심지어 자세히 보면 40대 근태는 흔들릴까봐 눈도 안 마주친다. 그런 지경인데 무슨 멜로를 하겠나. 짝사랑의 찌질함만 있다. 김희애씨와는 다시 하기로 약속했다. 이번엔 너무 맛만 봤고 제대로 비중이 있는 영화를 해 보자고 뜻을 모았다. 한풀이까지야. 이전 드라마에서는 멜로를 많이 했다. TV인데도 다 누워있는 신이 있었다. 지수원씨, 하희라씨, 유호정씨랑도 하고 김혜수씨랑 키스신도 해봤는데 뭘.(웃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래 장면도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그렇게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게 거의 처음이다. 그런데 참 슬픈 게, 20대 근태(정우 분)가 그 노래를 부를 땐 사랑하는 여자를 옆에 앉혀 놓고 뽀뽀도 하고 참 많은 일이 있다. 그런데 20년 지나 이 남자가 혼자 노래를 부르는데 참 대비가 되더라. 그걸 스크린으로 객관적으로 보니까, 참 인간은 혼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짠하다고 해야 하나.

-김윤석이 노래 잘 하는 배우란 걸 새삼 깨달았다.

▶노래가 낯설지는 않다. 공연할 때 뮤지컬도 했었고 기타도 쳤다. 오지랖 넓게 어디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고 항상 듣는다. 영화 속 노래도 실제 좋아한다. 이장희로 나온 장현성씨는 극단 학전에서 오래 같이 한 동생인데 진짜 노래를 잘한다. 감독님은 다 모르고 캐스팅을 했다고 하더라. 노래는 꾸미지 않고 맑고 정확하게 부르는 게 좋다. 없는 기교 부릴 것도 없고 담백하게 부를 때 멜로디나 가사가 잘 전달된다. 정우도 그렇게 부르더라.

-근태가 주저앉아 우는 뒷모습에서 눈물이 났다. 김현석 감독은 그 장면이 영화의 출발이라고 하더라.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도 없고, 돌아봐서도 안됐다. 내가 나오는 장면이 한참 뒤다. 3분의 2 정도가 지나서다. 지문에 이렇게 써 있다. '굉장히 냉정한 얼굴이다.' 친구도 놓치고 사랑도 놓치고 자기가 하고 싶던 일을 모두 놓친 사람이 20년 세월을 견디려면 얼굴에 밀랍 같은 걸 하나 깔고, 가슴에 철판을 대야 한다. 그 사람이 우연찮게 연인을 만났다. '잘 가라' 하고 참았는데 결국 그렇게 된 거다. 20년간 참다 우는 게 바로 그 장면이다. 핸드헬드 스테디캠으로 찍었는데, 테이크는 2번 갔다. 뒷모습이지만 연기는 같다. 우는 척, 울음을 연기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작품마다 인상적인 뒷모습이 많았다.

▶그랬던 것 같다. 센 캐릭터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또 다르게 해석하면 다 외로운 캐릭터들이었던 것 같다. 혼자서 짊어지는 캐릭터, 다시 말하면 혼자서 독박 쓰는 캐릭터다. 아무도 책임을 안 지니까 결국엔 혼자 뒤집어쓰는 거다. 아무래도 쓸쓸하다.

-일, 친구, 사랑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이 우선인가.

▶저 같으면 일이다. 저는 일을 제일 우선으로 할 것 같다. 사랑, 그리고 친구 순서일 것 같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예전 20대라면 사랑에 미쳤을 거다. 사랑에 획 돌아버렸겠지. 하지만 오근태처럼 바보처럼 놓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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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쎄시봉'의 김윤석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오랜만에 힘을 뺀 연기가 반가웠다. 굳은 모습이 평범한 중년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원래 좋아한다. 더 좋아한다. 나이 40이 넘어 낯선 곳에서 20년 만에 첫사랑을 만난 것 아닌가. 미국의 공항에서 만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오가는 커피숍에서 앉지도 않고 서서 이야기를 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연기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굉장히 좋았다. 오근태의 가정부터 나와 잠옷 바람으로 양치질하고 그랬다면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가 됐을 거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개인이 되어 만난 게 아닌가. 짠한 느낌이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슬픔도 있는 것 같다.

-미국 공항에서의 촬영이라 촬영 자체도 부담이 컸을 것 같다.

▶하루에도 비용이 어마어마하니까 반드시 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특히 공항은 정말 살벌했다. 엑스트라에게 출연료를 달러로 줘 가며 딱 하루를 빌려 찍었다. 그것도 몇 시 안에 끝내야 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끝나고 나선 모두 녹초가 됐다. 엑스트라 분들이 잘 해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완득이'에서도 인상적인 캐릭터를 그렸다. 그런 청춘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나.

▶솔직히 이야기하면 얻어걸렸다. 청춘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할까. 강력한 설정으로 센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나.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인간적인 매력, 섬세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들이 점점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영화의 스케일은 어마어마하게 커지거나 완전히 작아진다. 중간이 없다. 그런 영화들이 그립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런 영화는 언제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그런 이야기가 잘 나와서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란다. 그래야 또 그런 영화가 만들어질 테니까.

-올해 계획은 어떤가.

▶곧 '극비수사'가 개봉할 거다. 1970년대 실화가 바탕인데 거창한 장르 영화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3월에는 '검은 사제들'에 들어간다. 엑소시즘도 다루는데 신선한 소재다. 아마 순수 우리밀로 만든 정통 이태리피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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