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1970' 유하 감독 "거리3부작, 의미있게 마무리하고파"(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5.01.2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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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로 하수상한 시대와 폭력의 학교에 시원한 욕지거리를 날렸고, 2006년 '비열한 거리'로 허망하게 스러지는 주먹 세계의 남루한 청춘을 그렸던 유하(52) 감독은 약 9년 만에 '거리 3부작'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작으로 돌아왔다. '강남 1970'의 제목은 간결한 마큼 정직하다. 1970년대, 돈으로 일렁이던 강남의 탄생기. 그리고 그 속엔 여전히 폭력의 시대에 발악하다 스러진 청춘의 이야기가 담겼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권상우를, '비열한 거리'로 조인성을 새로이 발견했던 그는 이번엔 최고의 한류스타 이민호와 칼을 갈고 돌아온 김래원과 손을 잡았다.

강한 메시지와 수위 높은 액션을 앞세운 청불영화 '강남 1970'이 첫 주말 100만 관객을 넘기고서 잠시 한 숨을 돌린 날, 강남의 한 복판 신사동에서 유하 감독을 만났다. 40여년 전 이 일대가 배나무 과수원에 미나리꽝이었다고 똑똑히 기억하는 그는 여전히 양재동에 사는 강남사람. 그는 '강남에도 강북사람 같은 사람이 있다. 반대도 있고'라며 '앞으로는 영화도 달라질 거다. '영동시장'을 만들지 어찌 아느냐'며 눙쳤다. 강남과 청춘, 거리와 폭력을 아우르는 긴 여정 마무리하며 "해 볼 만큼 해봤다"는 그의 말이 가벼이 들리지 않았다.


-영화를 보니 다들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쌍화점'보다는 덜 고생했다.(웃음)

-'강남 1970'은 처음부터 거리 3부작의 완결편으로 기획했던 이야기인가.


▶'말죽거리 잔혹사' 끝나며 인터뷰에서 이야기했었다. 3부작 정도로 찍고 싶다고. 마지막은 강남이라고 하는 상징, 그것의 시발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강남의 본질, 정체성이랄까. 어찌 보면 가장 큰 이야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같은 '강남'을 이야기하는데도 싸이의 '강남스타일'과는 전혀 반대의 이야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1990년대 오렌지족, 야타족에서 출발한 또 하나의 변주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가장 잘 놀고 첨단을 달리는 오빠라는. 싸이는 담론을 노래로 만들며 극도로 키치화 시켰다.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며 역설적으로 넝마주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댄디하고 트렌디한 시장 자본주의의 첨단이 어디서 출발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강남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초상, 알레고리라고도 할 수 있는 강남이란 곳의 이야기다.

-노력하지 않고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이 짙게 깔린다. 요즘 젊은이들이 느끼는 분노와도 맞닿는 느낌이고.

▶절망감의 표현이다. 양극화 현상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나. 1970년대가 폭력적인 시대였지만, 그 때만 해도 열심히 하면 뭔가 성취할 수 있겠다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열심히 해도 안된다는 절망감이 있지 않나. 상위 몇 프로는 그냥 가고, 아래 사람들은 쓸 때 쓰이다가 버려지는. 그런 데 대한 절망감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런데 영화가 가짜 희망을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전체적으로 감정보다는 메시지가 선명하다는 느낌이다.

▶감정도 중요하지만 메시지가 선명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편집 과정에서 정치인 이야기를 걷어내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든 밑그림이 흐트러질 수 있었다. 구부독재 시절, 정부가 땅투기를 해서까지 돈을 모으고 하는 것 자체가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천민자본주의 아닌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화의 그림자 속에 그런 양극화의 씨앗이 있었다는 걸 돌이켜 성찰해보고 싶었다. 아 장장 재밌네 하지 않더라도 자고 나면 잔향이 남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모은 '국제시장'과도 시대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당시를 봤다.

▶저도 '국제시장'을 보며 많이 울었다. 1970년대 서민들의 애환, 아버지들의 희생이 보여 좋았다. 저희 영화에서는 그런 희생이 다른 편으로 보여진다. 같은 이야기를 달리 했을 수도 있고. 윤제균 감독님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만들었을 것 같지 않다. 저희 영화는 당시 근대화에 대한 빛과 그림자의 느낌이 있다. 같이 보면 현대사가 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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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총제작비 100억을 들여 만든다는 데 대한 부담과 고민이 컸을 텐데.

▶어찌 보면 더 큰 고민이 예산이었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센 부분이 있어 호오가 갈릴 것임을 처음부터 예상했다. 200~250만 명만 들면 돈을 벌 수 있는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였는데, 액면을 받아보니 20억이 올랐다. 1970~80년대가 가장 어렵더라. 세트도, 의상도, 모든 걸 제작해야 한다.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할 무렵엔 이미 캐스팅이 마무리된 상태였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이민호 김래원도 좋지만 티켓파워가 검증된 배우는 아니었지 않나. 정말 열망을 갖고 만들었다.

-첫 주 100만 명이 넘었다. 좀 안도했겠다.

▶내심 안도했지만 아직. 이 영화는 다른 욕심은 없고 다만 손해를 안 끼쳤으면 한다. 의미있게 3부작을 마무리하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캐스팅이다. 특히 이민호는 뜻밖이었다.

▶이민호는 제가 계속 투자자에게 밀던 배우였다. 개인의 취향일 수 있지만 거리 3부작은 완성된 배우보다는 잠재력 있는 배우가 해 왔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투자 쪽에서는 망설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상속자들'이 잘 된 뒤 기꺼이 투자가 됐다. 굳이 비교해보면 '말죽거리 잔혹사' 당시 권상우가 핫했다. '비열한 거리' 당시 조인성이 이민호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권상우, 조인성이 배우로 평가받던 당시와 비슷한 뿌듯함이 이번에도 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 이민호를 의욕적으로 캐스팅해 들어갔는데 저도 걱정을 했다. 워낙 순정만화 같은 이미지가 있고, 너무 잘 생겨서 현실에서 떠 있는 이미지이지 않나. 그를 1970년대의 비루함으로 끌어내리는 게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잘 해줘서 뿌듯함이 있다. 특히 이민호가 넝마주이 역할을 소화할 때 넝마주이의 구질구질함, 불쌍함이 나와야 하는데 그 자체도 순정만화의 불행한 주인공처럼 보이더라. 수십 번 더 구질구질하게 만들라고 주문했다, 머리도 기르고, 분장도 하고, 염색한 군용 야전을 더 구질구질하게 만들어 입히고 했다. 오죽하면 이민호가 '저는 거지인가요'라고 묻더라. '거지랑 넝마주이는 다르다'고 했다. 그 다음에 이민호가 길수(정진영 분)의 집에 들어와 우적우적 밥을 먹는 신이 있는데 참 마음에 든다.

-김래원도 돋보인다.

▶김래원은 사실 그간 해온 연기에 비해 과소평가 받은 배우일 수 있다. 저도 이번에 하며 굉장히 놀랐다. 스스로도 한 차원 다른 연기를 펼쳤다. 본인도 스스로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땐 살이 쪄 있어서 제가 생각한 날선 이미지와 달랐다. '일단 살부터 빼자. 낯설게 보여주자'고 하니 '얼마나요'라고 묻더라. '네기 상각한 것보다 5kg만 더'라고 했다. 그러고 한 달 만에 몸을 만들어 왔는데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 때부터 저 친구가 배우로서 기대를 충족시켜 줄 거라는 느낌이 왔다.

-따져보면 장신 미남 배우들을 유독 사랑하는 감독이다. 그 미남들의 비주얼을 망가뜨리는 악취미가 있는 듯도 하고.

▶민호는 캐스팅 전에는 그렇게 큰 줄 몰랐다. 래원이도 크다. 어떤 로망이 있었던 건 아닌데, 잘 생긴 남자를 보면 어렸을 적부터 어떤 쾌감이 있더라. 예전에도 장 폴 벨몽도보다는 알랭 들롱을 좋아했다. 고전 미남들의 영화를 좋아했던 셈인데 그게 내 취향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이미지를 그대로 쓰면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미는 덜하지 않나. 보면 그들이 참 포토제닉하다. 사진 속에 정령이 깃들어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있다. 돈 주고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그런 쾌감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한다.

-마지막 황토뻘 액션신이 인상적이었다.

▶촬영도 길어져 7일을 찍었다. 제가 찍었던 영화 중에 가장 고생스러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시대성으로서의 지옥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아비규환. 그걸 알고 보시면 수위만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관을 묻으면서 싸우지 않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신으로 디자인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얼마나 처절한가. 촬영은 각오를 하고 갔다. 1회차부터 '그 신 찍을 때 힘들겠죠?'하고 걱정하면서. '니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했었는데, 오히려 실제는 그들이 상상했을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드디어 10여년 만에 강남 3부작을 마무리했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나.

▶배경이 강남이고 폭력, 거리, 청춘이 키워드였다. 이 네 개의 키워드가 들어가는 이야기는 그만 해야지. 준비 중인 이야기는 없다. 다만 장시간 어둡고 우울한 영화들을 하다 보니 코미디 같은 걸 하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도 좋고. 이 작품이 저에게는 할 만큼 여정을 다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극장에 와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영화들을 해보고 싶다. 직접 찍으면 젊어지고 좋지 않겠나. 영화는 젊음의 예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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