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 "'내 심장' 이민기 여진구 정말 감탄했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1.26 14:08 / 조회 : 6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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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사진=이동훈 기자


나이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정유정 작가가 1966년생이라니. '내 심장을 쏴라'를 비롯해 '7년의 밤' '28' 등 젊은 소설들을 쏟아내기에 당연히 젊겠거니 생각했다. 정유정 작가는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다"며 웃었다.

정유정 작가는 글이 영화 같다, 영상적이다, 라는 평을 듣는다. 그의 소설들이 차례로 영화 판권이 팔린 건 분명 이유가 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중 '내 심장을 쏴라'가 처음으로 영화로 만들어줬다.

'내 심장을 쏴라'는 지금의 정유정 작가를 만들어 준 작품이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작가로 꿈을 잊지 않고 계속 글을 쓰고 또 쓰던 정유정 작가는 포기할까 싶을 때 '내 심장을 쏴라'가 세계문학상에 당선이 되면서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내 심장을 쏴라'는 좌절한 청춘에 대한 글이다. 정신병원에 갇혀 사는 게 오히려 평한 청년이 끊임없이 탈출하려는 청년을 만나면서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이야기다. 2010년에는 연극으로 만들어줬고, 마침내 28일 영화로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정유정 작가는 힘이 넘쳤다. 분명 그녀는 글처럼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글과 사람이 닮은 정유정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내 심장을 쏴라'는 어땠나.

▶절제와 균형이 느껴졌다. 소설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운명이 나를 침몰시킬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였다. 소설에선 3분의 2는 침몰에 관한 이야기고, 나머지 3분의 1이 앞으로 나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에선 침몰과 탈출 중에 적절하게 선택해서 균형을 잡은 것 같다.

-'내 심장을 쏴라' 문제용 감독과 촬영 전에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감독에게 원작은 잊어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영화로 원작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미 연극에서 원작을 잘 구현했다.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해석이 어떻게 나올지 호기심이 컸다. 영화는 집중력과 균형이 정말 좋았다. 대단히 만족했다.

-2009년에 소설이 나오자마자 영화 판권이 팔렸는데. 긴 시간 동안 기다려준 이유가 있다면.

▶제작사인 주피터필름에서 그전에 썼던 청소년소설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도 영화 판권을 샀었다. 믿고 기다렸다. 사실 '내 심장을 쏴라'는 세계문학상을 타긴 했지만 심사에서 과반을 넘지 못해서 2차 투표까지 갔었다. 심사위원들이 대중성에 물음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정신병원 이야기니깐. 그런데 그런 이야기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새로운 즐거움이고.

-영화와 원작, 모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빚을 많이 졌는데. 아무래도 정신병원에서 탈출한다는 이야기니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기도 하니깐.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난 15살이었다. 밤새 총성이 들리는 게 무서워 펼쳐든 책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다. 새벽이 오고 그 책 마지막을 덮으면서 총성이 잦아들었다. 그 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많은 빚을 진 건 당연하다.

-글이 굉장히 영상적이다. 시각적이고. 그래서 그런지, '내 심장을 쏴라' 뿐 아니라 '7년의 밤' '28' 모두 판권이 팔렸는데.

▶시각적인 소설을 쓰는 이유는 독자를 위해서다. 활자매체가 요즘 젊은이들에겐 무겁다. 인간은 이야기를 들으면 끝을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학적인 동물이다. 다만 요즘 젊은이들은 영상 매체에 익숙하다. 그렇기에 이 독자들을 어떻게 내가 던지는 질문 속으로 끌고 갈까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글 속에 시체가 등장한다면 독자에게 시체를 그대로 던져줘야 한다. 시체를 오감으로 다 느낄 수 있도록. 습작을 할 때부터 그런 연습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마다 캐릭터가 굉장히 선명한데. 이야기를 구상할 때 캐릭터부터 떠올리나.

▶아니 소설 구상 시작은 공간부터 한다. '내 심장을 쏴라' 같은 경우는 정신병원부터 하나하나 구상했다. 화장실은 어디 있고, 면회실은 어디 있고, 그런 공간을 모두 머릿속에 정리한다. 내 공간 속에는 파리 한 마리 마음대로 움직여선 안 된다.

그런 다음 캐릭터를 만든다. 내 이야기 속에 캐스팅되는 캐릭터들은 두 가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자기 안에 지옥이 있어야 할 것과 욕망이 있을 것. 그래야 갈등이 생기고 동력이 만들어진다. '내 심장을 쏴라'도 마찬가지다. 조연들은 설사 등장하진 않아도 각 인물들의 역사를 내가 다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이야기는 저절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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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사진=이동훈 기자


-영화 '내 심장을 쏴라'에서 무기력한 청춘 수명 역할을 여진구가, 늘 탈출을 꿈꾸는 청춘 승민 역할을 이민기가 맡았는데.

▶이민기는 정말 정열적이더라. 승민을 정말 정열적으로 구현해줬다. 여진구는 울컥 하더라. 영화 하이라이트에 승민이 떠나고 난 뒤 감정을 표현해 내는 걸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또 감동을 받은 장면이 있다면.

▶'28'이 끝나고 내 안의 모든 게 고갈된 걸 느꼈다. 난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다.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내가 무기력해지더라. 그래서 2013년 가을 '내 심장을 쏴라'에서 승민이 갔던 안나푸르나로 떠났다. '내 심장을 쏴라' 작업노트를 펼쳤는데 거기에 "전사를 찾아서"라는 문장을 내가 써놨더라. 전사가 되고 싶은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었다. 고산병을 겪으면 안나푸르나로 간지 14일째 밤에 그곳에서 별들의 바다를 봤다. 홀린 것처럼 맨발로 걸어나갔다. 영화 속에 그 별들이 그대로 구현됐더라. 정말 좋았다.

-'28'을 썼을 때 영화 준비하는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줬더니 철학책을 쓰려면 철학책을 쓰고,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쓰라는 소리를 듣고 원고를 전부 다시 썼다고 하던데.

▶'내 심장을 쏴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말이 하늘에서 동아줄 내려온 것처럼 돼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모전 한 달 남았는데 결말을 다시 썼다. '28'은 2500매를 버리고 전부 다시 썼다. 원래 글이 잘 써지면 오히려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을 받았으니 전부 다시 썼다. 버리는 데 미련이 없어야 얻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미련이 있어서 조금씩 다시 가져오다보면 결국 하나도 버리지 못하게 된다.

-글이 영상적이란 건 결국 문학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중소설가라는 말이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할텐데.

▶맞다. 상업작가라는 오명을 쓰는 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오명을 뒤집어쓸까 봐 내가 쓰고 싶은 걸 못 쓰는 게 더 두렵다. 난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주인공 둘 외에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박두식이 맡은 점박이와 김정태가 연기한 김용이다. 점박이는 내가 원래 악역을 좋아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선 사람들이 점박이를 너무 미워하는데 난 오히려 어설퍼서 귀엽다고 생각했다. 박두식이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해줬다. 김용은 천상 오지라퍼다. 나 역시 오지랖이 넓다. 그래서 애정이 간다. 김용은 '28' 등 다른 소설에도 등장한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 그런 정체성이 소설에 영향을 주나. 바이러스로 폐쇄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28'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렇다. 팔십 몇 대가 죽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온 토박이다. 그런 토박이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직접적이면 위화감을 받는다. 그래서 슬쩍 슬쩍 이야기를 담아 놓는다.

-다음 소설은 어떻게 되나.

▶주인공이 싸이코패스인 이야기다. 어떻게 풀어질지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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