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야설(野說)] 박찬호 첫 모델료 겨우 5천달러에서 100배 증가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1.13 08:00 / 조회 : 3174
  • 글자크기조절
image
박찬호가 지난해 5월 다저스타디움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OSEN



박찬호와 에이전트 스티브 김이 나이키(NIKE)에 원하는 모델료를 밝힐 차례였다. 스티브 김은 빌 퍼셰트가 제시한 조건의 100배인 50만달러를 달라고 요청했다. 빌 퍼셰트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랐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련한 그는 왜 나이키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마이너리그 선수에게 50만 달러를 줘야 하느냐고 물어왔다.

스티브 김은 나이키가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점, 일본이 미국 다음으로 나이키에 소중한 시장이라는 것, 한국이 나이키에 큰 시장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사실을 먼저 상기 시켰다. ‘납득시키는 작업(justify)’이다. 그리고 박찬호가 당시 나이키의 간판 모델인 마이클 조던보다 한국에서 더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 광고 시장 가치로도 박찬호는 동양 선수로서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 특히 한국에서는 마이클 조던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50만달러 정도에 그친 것은 매우 싼 것이라고 다시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일본 나이키, 홍콩 나이키, 한국 나이키에 박찬호라는 상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고 다시 조건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한 후 스티브 김은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사실 박찬호를 마이클 조던 급이라고 큰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스티브 김의 속마음은 어떻게 해서든 나이키와의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키와의 계약 자체가 박찬호의 위상을 단숨에 스타급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당시 스포츠 용품 회사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농구의 대명사처럼 된 마이클 조던을 비롯해 야구의 켄 그리피 주니어, 테니스의 피트 샘프라스 등 각 종목의 최고 스타들만 계약하고 또 계약 후에도 철저하게 홍보, 관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기업이 나이키이다. 따라서 나이키와의 계약 자체만으로도 박찬호는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날개를 하나 달게 되는 셈이었다.

문제는 나이키와 무조건 계약을 하면서 최고의 대우까지 얻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5천 달러를 50만 달러로 끌어 올리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박찬호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인기, 메이저리그 팀과의 계약을 맺은 효과 등 말로 할 수 있는 설명은 충분히 했지만 나이키 관계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실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경쟁 상대를 끌어 들이기로 했다. 우선 박찬호에게 계약이 정식 체결될 때까지 나이키 대신 리복을 신게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당시 다저스의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던 베로비치에는 시속 99마일(약 160km)의 공을 던지는 '괴물'이 동양에서 왔다며 박찬호에 대해 미국 언론들이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고 각종 신문과 TV에 계속 박찬호의 모습이 나왔다. 또 한국에서 온 특파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펼쳐 국내의 스포츠지에는 연일 1면 톱기사로 보도됐다. 사진 한 장, 화면 한 컷에 들어난 박찬호는 리복을 신고 있었다.

image
박찬호. /사진=OSEN



박찬호 측이 초조하게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2주 후에 마침내 나이키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특히 한국 나이키와 홍콩 나이키에서 박찬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협상을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나이키 측은 '박찬호의 인기가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당신의 말 그대로 대단하니 좋은 조건을 다시 제시하겠다, 그러니 계약을 체결하자'는 적극성을 보였다.

나이키도 전문가들임이 확실했다. 나이키는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인 켄 그리피 주니어와 배리 본즈의 계약금이 평균 20-30만달러 수준이니 박찬호의 경우에도 20만달러가 최대치라고 카드를 내밀었다. 이 계약금도 미국 한국 홍콩 나이키에서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해서 나올 수 있었던 액수라고 강하게 나왔다.

마지막 조율에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다시 한 번 50만 달러를 고집하자 나이키에서도 1년에 계약금 25만 달러, 기간 2년을 최종안으로 제시했다. 이번에는 스티브 김이 반 보 후퇴할 타이밍이었다. 부족한 부분 25만 달러를 채우기 위해 히든카드인 인센티브 보너스를 내놓았다. 우리는 50만 달러를 원하는데 나이키는 25만달러 이상 줄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나이키의 판단에는 박찬호의 1년 가치가 50만 달러가 안 된다는 것인데 그의 몸값이 50만 달러 이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센티브 보너스를 통해 증명하겠다고 밀고 나갔다.

결국 인센티브를 따냈다. 나이키에 박찬호 고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허용하고 수익의 5%를 로열티로 책정했다. 그리고 성적(performance)에 따른 보너스를 보태 1년 계약금 25만 달러, 보너스 최대 25만 달러를 마지막 조건으로 94년부터 95년까지 2년 계약을 맺었다.

96년 재계약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박찬호가 96 시즌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치솟고 있는 박찬호의 인기에 잠재력까지 보태서 4년간 계약금 200만 달러, 보너스 200만 달러 등 총 400만달러에 이르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5천달러에서 50만 달러 규모로 계약금을 키우는 과정, 나이키와의 줄다리기 곳곳에 에이전트의 능력과 역할의 중요성이 숨어 있다. 목표를 위해 어떻게 접근하고 자신의 요구를 정당화 시켜가는 길, 그리고 마지막 카드를 내미는 것까지 한 순간도 정확한 판단이 따르지 않으면 선수의 광고 계약은 어려운 일이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