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 '미생'..직원 문자 한통에 해고된 강릉시청 선수들

전상준 기자 / 입력 : 2014.12.26 15:06 / 조회 : 10346
  • 글자크기조절
image
강릉시청 선수들. /사진=내셔널리그 홈페이지






"그냥 축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축구판 미생이다. 계약직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도의마저 무시했다.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들은 문자 한통에 길거리로 내몰리게 생겼다. 강릉시청 소속 선수들의 이야기다.

지난 3일 강릉시청의 주장 김태진(30)은 구단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귀하의 계약기간이 12월 31일 종료됩니다. 새 출발하는 강릉시청 축구단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구단의 해고 통보 문자다.

강릉시청 선수들은 시 조례규칙에 따라 1년 주기로 재계약을 한다. 구단이 계약이 만료되는 선수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건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적절치 못한 과정이다. 수년간 강릉시청을 위해 뛴 다수의 선수들은 갑작스럽게 온 문자 한통에 일자리를 잃었다.


image
강릉시청 선수 17명에게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한 강릉시청 축구단 사무국. /사진=강릉시청 서포터즈 카페





총 17명의 선수들이 재계약 불발 통보를 받았다. 코치 2명도 해고됐다. 대부분 올 시즌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명확한 명분 없이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김태진은 26일 스타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구단 코칭스태프들이 결정한 일이 아니다. 강릉시청 직원 한명이 알아서 판단해 선수들을 해고했다. 이 직원은 경기장에 몇 번 오지도 않았다"면서 "축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적이라면 코칭스태프들이 선수들에게 이유를 설명한 뒤 '함께 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강릉시청은 상식적인 절차도 무시한 채 선수단을 정리했다. 이런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며 억울해했다.

이에 대해 강릉시청 관계자는 "세대교체를 위한 선택이었다. 당초 11월 1일 공문을 통해 사전에 알렸다. 재계약 대상이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 전체이기 때문에 선수 개개인의 재계약 여부는 공문에 포함하지 않았다. 대신 추후 개별 통지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면서 "(재계약 여부를 두고) 선수들과 면담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규정은 따로 없다. 원래는 재계약 대상자에게만 연락을 하는데 모두 궁금해 해서 이번에는 재계약을 하지 않는 선수들에게도 전했다. 알려주는 차원에서 문자를 보냈는데 (재계약이 불발된)선수들이 오히려 기분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태진은 "해고 통보를 받은 선수들이 올 시즌까지 대부분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다. 이 결정을 한 시청 직원은 선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다. 해당 선수가 몇 경기를 뛰었고 몇 골을 넣었는지조차 모른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재계약 여부를 결정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김태진은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때 믿을 수가 없어 동료들과 코칭스태프들에게 연락했다. 그랬더니 해고된 게 맞다하더라"며 "나는 동해와 강릉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강릉에 대한 애정이 커 강릉시청에서 정말 열심히 뛰고 헌신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가 해고라니 큰 배신감을 느낀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해고 통보 시점도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강릉시청은 11월 8일 경주한국수력원자력과의 경기를 끝으로 2014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해고 통보 문자는 지난 3일 왔다. 약 한 달간의 시간동안 선수들은 어떠한 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됐다. 이미 이적 시기도 놓쳐 팀을 옮기기도 어렵다. 내셔널리그 관계자에 따르면 내셔널리그는 따로 이적 기간이 없다. 대부분 시즌 직후 선수단 보강을 마무리한다.

김태진은 "재계약을 안 한다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렇게 늦게 알려주면 다른 팀으로의 이적도 준비하기 어렵다. 이미 많은 구단들이 시즌을 마치고 전력 보강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또 우리들은 주축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는 당연히 강릉시청에 남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는 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강릉시청 측은 해고 번복은 없다는 방침이다. 강릉시청은 이미 새로운 선수들을 수혈해 어느 정도 전력 보강을 마쳤다. 해고 통보를 받은 선수들 중 다른 팀으로 이적한 4명 또 군 입대자 3명을 제외한 10명은 본의 아니게 은퇴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이다.

한편 강릉시청은 올 시즌 내셔널리그에서 10승 11무 6패의 준수한 성적으로 4위를 기록했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