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risis & Happy New Fear..2014년을 보내며

[전형화의 비하인드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2.23 09:03 / 조회 : 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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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주인공 송강호와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14년이 떠나간다. 다사다난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좋은 일들보단 힘들고 슬픈 일들이 차고 넘쳤던 해였다. 관계가 흐트러지고, 거짓말이 참말이 됐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돌을 던졌다.

아팠던 한해를 정리하면서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인연을 돌이켜봤다.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스쳤지만 가장 좋았던 인연으론 단숨에 김성훈 감독이 떠올랐다.

김성훈 감독은 올해 '끝까지 간다'로 되살아났다. 글자 그대로 되살아났다. 2006년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내놓고 무려 8년 만에 '끝까지 간다'로 돌아왔다. 데뷔작이 유작이 되기 십상인 한국영화계에서 기적 같은 일이다.

김성훈 감독이 인상 깊었던 건 단지 좋은 영화를 내놨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달라졌다. 내려놨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애정 결핍'으로 데뷔했을 때 그는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홀로 잘났었다. 세상이 자신을 모르는 것이지, 자신이 세상을 모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철저히 부서졌다. 실수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반성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다.

김성훈 감독은 현장부터 달라졌다. 예전 그의 스태프들은 '끝까지 간다' 현장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듣곤 놀라워했다. 김성훈 감독은 많이 들으려 했다고 말했다. 막내스태프부터 주연배우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자기화하려 했다. 그 노력은 칸 감독주간 초청으로, 흥행으로, 대종상 감독상과 청룡 각본상으로 보상을 받았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메리 크라이시스 앤 해피 뉴 피어'(Merry Crisis and Happy New Fear)란 말이 눈에 밟혔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에서 '크리스마스' 대신 '크라이시스(위기), '이어' 대신 '피어'(두려움)로 바꾼 말이다. 금융 위기를 겪었던 동유럽에서 건너온 말이다. 기쁨과 행복 대신 위기와 두려움을 맞는다는 말이다.

위기와 두려움이 많았던 올해였기에 가슴을 쳤다. 그래도 더 눈에 밟혔던 건 위기와 두려움을 메리(즐겁고)와 해피(행복하게)로 맞는다는 것이었다. 닥쳤던, 닥쳐온, 닥쳐올, 위기와 두려움을 즐겁게 맞을 수 있을까.

'변호인'이 제35회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에서 주최한 영화 시상식에서 '변호인'이 삼관왕이 됐기에 새삼 화제를 샀다.

영화계에는 알음알음 퍼졌지만 외부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변호인'은 올해 런던한국영화제와 파리한국영화제에 개막작으로 거론됐었다. 그랬던 '변호인'은 어느새 초청이 없던 일로 유야무야 됐다. 실체 없는 뒷말이 무성했다. 정체 모를, 실체 없는, 두려움이 쌓였다. 그래서 '변호인' 수상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변호인'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에게 혹시 이 영화를 하면 불이익을 겪을지 두렵지 않았냐고 물었다. 오달수는 "과연 누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줄까,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두려움은 누구에게서 오는가. 누가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오달수 말처럼 우리를 두렵게 할 사람은 없다. 두려움은 우리에게서 나온다. 위기는 언제나 다가오지만 두려움은 반드시 우리에게서 나온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꼽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겼던 말이 올해를 상징하는 말로 꼽혔다. 진실은 찾아내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법이다. 진실을 믿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중요한 한 해였다.

날이 춥다. 누구는 살기 위해 굴뚝 위로 올라갔다. 누구는 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려 모든 사람들이 애썼던 '미생'은 환상이다.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리는 게 현실이다. 굴뚝 위에 관심을 갖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게 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위기는 찾아오고, 두려움은 턱 밑까지 차오를 것이다. 불행을 피하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김성훈 감독은 실패를 성공으로 되돌리기까지 숱한 밤을 지새웠다. '변호인'은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위기와 두려움을 즐겁고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메리 크라이시스 앤 해피 뉴 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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