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최민수 "끝까지 시청자 뒤통수 치고싶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12.23 11:02 / 조회 : 8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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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최민수 / 사진제공=MBC, 본팩토리


"최민수가 연기 잘 하는 배우인 줄이야 이미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MBC 월화특별기획 드라마 '오만과 편견'(극본 이현주·연출 김진만)의 한 시청 후기다. 공감이다. 쉰이 넘어서도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록밴드를 이끄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바람 잘 날 없는 트러블메이커이자, 대책 없는 로맨티스트 최민수가 아니라 그냥 배우 최민수가 거기에 있다.

'오만과 편견'은 오랜만에 만난 묵직한 드라마다. 20년 전 벌어진 어린이 납치 사망사건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인물들의 치열한 싸움을 꾹꾹 눌러 담아낸다. 어느 단서 하나 허투루 남겨놓지 않은 치밀한 각본과 힘 있는 연출, 배우들의 앙상블이 볼만하다. 심지어 매회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시청자의 기대를 한 발 앞서 이끌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인천지검 부장검사 문희만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베테랑이면서 때로는 장난기가 넘치고, 간사하기는 또한 이를 데 없는 그는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이다. 최민수는 "나와 한 치도 닮지 않았다"는 그 문희만을 빙의라도 된 듯 연기하는 중이다. 그 덕에 드라마는 더욱 풍성해지고 수많은 여지를 남긴다.

"느슨해질까봐 밥도 잘 안 먹는다"는 그를 그 밥시간을 빼앗아 기어이 만났다. 인터뷰 와중에도 최민수와 문희만을 끊임없이 오가던 그는 "끝까지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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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최민수 / 사진제공=MBC, 본팩토리


-올해로 연기 30년을 맞았다. 그러고는 얼마 전 간담회에서 '대사 뜻도 모르고 하고 있다'고 눙쳤다.

▶그뿐인가. '머리가 나쁘면 이 드라마 보기 힘들 것'이라고도 했다. 나름 영국식 유머였는데.(웃음) 대사가 뭔지 모른다는 건 다름아닌 '오만과 편견'이기 때문이다. 검사의 생활을 해야 하는데, 생방송처럼 나오는 대본이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거다. 다음에 어떤 사건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순간순간 반응하고, 검사로서의 프리즘을 통해 본능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오랜만에 보는 힘 있고 묵직한 드라마다.

▶무게가 안 실린 신이 없다.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리하고 날카롭고 또 굉장히 남성적이다. 배우 입장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많다. 내가 보기에 이현주 작가는 청사진을 모두 마련해 놨다. 설계도면을 두고 빙의된 작가의 필력으로 혼을 입히는 것 같다. 논리적인 것과 본능적인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난다.

-김진만 PD와는 '로드넘버원' 이후 2번째 만났다.

▶연출도 마찬가지다. 김진만 PD의 연출에는 굳은살이 있다. 본능적이다. 기교나 테크닉으로 드라마를 이끄는 게 아니라 희노애락을 사람을 통해 끌어낸다. 조미료를 안 쓴다. 더욱이 B팀 감독이 없다. 요즘 드라마 상황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직하게 찍어 편집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오만과 편견'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각각의 밀도있는 조합으로 탄생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잘 만났다. 그냥 찍어내는 게 아니라 섬세하게 메스로 조각하는 느낌이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검사다. 거기에서 오는 힘이 또한 있다.

▶검사들의 이야기가 선과 악, 이분법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검찰청에 가면 이야기도 잘 못한다. 공기가 다르다. 가령 문제가 생겨 검찰청에 가져가면, 나한테는 너무 아픈 문제인데 거기서는 수많은 사건파일 중에 하나가 된다.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없는 곳이다. 그 늑대가 드글드글한 곳에 공소시효 3개월을 앞두고 동생 죽인 범인 찾겠다고 검사가 된 한열무가 있고, 사건에 연결된 강수라는 아이가 있고, 검사 선서에나 나올법한 천재적 수석검사 구동치가 있다. 젊은 배우들도 모두 잘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와 연출이 제대로다.

결국 이 3개월의 사건수사 역시 그 많은 파일 중에 하나가 될 거다. 우리 드라마는 그 비릿한 현실의 이야기다. 저 기득권자들은 검사를 통해 이런저런 사건을 파헤치려 하면서 정의를 쥐어줬다 빼앗아가려고 한다. 이야기가 복잡다단한데,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그래도 우리를 찾고 싶다는 거다. 이건 어쩌면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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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최민수 / 사진제공=MBC, 본팩토리


-알다가도 모를 문희만 자체도 퍽 흥미롭다.

▶문희만은 15년 전 구동치와 똑같은 아이였지만 지금은 알기에 정의에도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문희만에게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단전적인 악인이었다. 표정변화도 거의 없고 감정도 자제된 듯했다. 그런데 이 인물이 전체적인 드라마 안에서 중심 인물이 되면서 다층적인 면모를 갖게 됐다. 과연 문희만이가 누군가. 내 단 한 번도 조직생활 기관생활을 해 본 적 없는 놈이지만, 나와 완전히 상반된 인물이다. 그런 삶을 1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최민수와 문희만은 180도 다르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문희만이란 캐릭터에게서 조금이라도 최민수가 느껴지면 실패일 것이다. 그것만 놓고 시작을 했다. 평소 사람들을 잘 관찰하는데, 어느 순간 검사의 양복이 제복 아니면 갑옷 같은 느낌이 들더라. 거기서부터 많이 끄집어내갔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다듬어갔나.

▶문희만이란 인물 자체가 속을 헤아릴 수 없다. 출세욕 강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그 프로파일을 쭉 훑어보긴 했지만 만들어진 인물은 독창적이고 창작적이어야 한다. 생각해봤다. 30년 넘게 매일매일 범죄자를 상대한 인물인데, 과연 이 사람은 정공법으로 사람들을 대했을까. 출세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면 그 정체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을 경영하는 화법은 어땠을까. 적어도 딱딱 치고가는 정공법은 아닐 것이다 싶었다. 코뿔소처럼 저돌적인 사람이 아니라 장애물 앞에서는 뱀처럼 돌아가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고, 나름의 화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층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공들인 티가 난다. 사람들이 문희만 캐릭터에 열광하는 데 그 입체적인 매력도 한 몫을 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예측하거나 기대하면서 연기한 건 아니다. 남들이나 보는 사람이 판에 박히게 얻어지는 연기적 톤이 이 작품에 들어올 수 없다고 봤다. 애초부터 열심히 봤다. 끝까지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는 작품이고 싶다. 문희만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연기하는 맛도 날 것 같다.

▶처음부터 시청률 관객 수 따져가며 연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첫 방송 끝나고 시청률을 찾아봤다. 사심은 없지만 작품이 워낙 애착이 간다. 처음 1~2부 대본을 받았었는데, 적어도 30년 연기한 내 눈으로 들여다봐도 글을 통해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더라. 너무 좋더라. 내가 묵직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장르에 상관없이 사람다운 것이 좋다. 패륜 불륜 이런 거 싫어하고, 관객이나 시청률을 잡기 위해 말이 되게끔 표현하는 걸 싫어한다. 이 작품 역시 검사들의 이야기지만 본질에는 사람이 있다. 정치에 검사의 세계를 얹었을 뿐 옆 사람에 의해 희망도 좌절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결말이 궁금하다.

▶끝까지 말할 수가 없다. 알아도 말 못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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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최민수 / 사진제공=MBC, 본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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