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로 막내린 '미생', 위로이자 위안이었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12.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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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생' 화면 캡처


화제 속에 방송됐던 tvN 금토드라마 '미생'이 막을 내렸다. 지난 20일 방송된 '미생'의 마지막 20회는 처연한 현실과 꿈결 같은 판타지의 조합이었다.

태어나 바둑 말고는 한 것이 없던 고졸 계약직 사원 장그래(임시완 분)는 처절한 노력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퇴사했다. 강직하고도 열정적인 회사원의 이상향이었던 차장 오상식(이성민 분)은 뜻하지 않았던 암초에 부딪쳐 청춘을 다 바친 회사를 장그래보다도 먼저 떠났다. 그렇게 암울한 현실의 이야기가 '미생'을 휘감는 듯 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업 아이템을 받아든 오상식은 김부련 부장(김종수 분)을 대표로 직접 회사를 차렸고, 외국어를 배우며 미래를 준비하던 장그래를 불러들여 팀을 꾸렸다. 외로이 회사를 다니던 대리 김동식(김대명 분)도 합류했다. 흐뭇한 해피엔딩에 정윤정 작가와 김원석 PD는 판타지 하나를 더 얹었다. 시간이 흘러 머리 스타일까지 바뀐 장그래는 납품할 물건을 떼먹고 도망간 공장장을 잡으러 요르단 암만으로 떠났다. 결국 문제를 해결한 장그래는 역시 암만으로 함께 온 오상식과 함께 지프를 타고 사막을 달렸다. 길도 없이 사방으로 바퀴자국이 남아있는 사막을 배경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태양을 향해 달리는 두 사람의 모습 뒤로 '미생' 20회가 마무리됐다.

마지막 이야기 속의 장그래는 '본' 시리즈 제이슨 본을 연상케 하는 히어로였다. 암만의 거리를 휘젓다 자동차에 치여 쓰러졌음에도 일어나 추격전을 계속했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하늘같은 선배 오상식에게 넉살을 부리기까지 했다. 원작 만화에도 없는 이 할리우드적 판타지는 보는 이들에게 극적인 재미를, 반전의 쾌감을, 그리고 일말의 위안을 동시에 안겼다. 처절한 리얼리티를 따라 장그래가 백수로 남았다면 시청자들도 결국 계약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장그래가 던진 마음의 짐을 벗어내지 못했으리라. 다만 이 해피엔딩은 '미생' 역시 한 편의 드라마였음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미생'은 윤태호 작가의 탄탄한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대기업 상사의 풍경을 세밀화로 그려내며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특히 가진 것 하나 없이 낙하산이란 오해를 받으며 인턴을 거쳐 영업직 사원으로 입사한 신입 장그래의 생존기, 일로 스트레스를 풀며 사는 차장 오상식의 이야기는 현실 직장인들의 팍팍한 삶과 소소한 행복을 녹여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계약직 사원의 현실, 미묘한 차별과 갑을관계, 직장 내 정치와 처세의 묘가 녹아있는 쫀쫀하고도 사려깊은 이야기는 팍팍해진 세상, 위로가 필요했던 평범한 이들에게 TV앞으로 달려가야 할 이유를 선사했다.


'미생'은 매력적인 캐릭터, 배우들의 열연과 만나 더 빛났다. '미생'은 연기 구멍이 없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아이돌 배우의 꼬리표를 완전히 벗어버린 임시완, 믿음직한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성민, 정감가는 김대명 등 영업3팀 3인방은 물론이고 강소라 변요한 강하늘 등 매력적인 신입들도 모두 빛났다. 이경영 신은정 김종수 등 중진은 물론 오민석 전석호 손종학 등 개성만점 대리 라인 심지어 한 회만 나온 단역들까지도 고루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캐스팅의 힘이요 연기의 힘이다.

극본 연출 연기, 거기에 현실과 호흡하는 감각까지 삼박자 플러스 알파가 맞아떨어진 '미생'은 2014년의 마지막 히트상품으로 남았다. tvN은 '미생' 마지막 20화가 평균 8.4%(이하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순간 최고 10.3%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21일 밝혔다. tvN '응답하라 1994'(최고시청률 11.9%, 순간 최고 14.3%)에 이은 케이블 드라마 사상 두번째 성적이다. 막 내린 '미생'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본 장면은 의미심장하게도 장그래와 오상식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끝이 아닌 길을 향해 가던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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