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모영 감독 "'님아'는 로맨스..배려가 가지는 힘"(인터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 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4.12.17 06:57 / 조회 : 8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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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모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이만하면 신드롬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단 18일 만의 기록이다. 76년간 연인처럼 함께 해온 강계열 할머니와 고 조병만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100만 관객을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그 이상의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16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진모영(44) 감독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저 허허 하고 웃었다. 흥행을 예상했느냐는 말에 "말도 안 되죠. 이 상황이"라고 답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박스오피스 1위, 독립영화 사상 최단 기간 100만 돌파, 그리고 계속되고 있는 기록. 감독마저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일들이 지금 극장가에 벌어지고 있다.

"사실 관객들이 극장가서 다큐멘터리를 잘 보지는 않잖아요. 같이 지내면서 사부님 같았던 고 이성규 감독님도 저에게 물어보더라고요. '극장에서 1년에 다큐멘터리 몇 편이나 봐?' 할 말이 없더라고요. 우리도 그 정도로 안 보는데 보통 관객들은 더 보기 힘들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70여 년의 결혼생활에도 여전히 이 부부는 같은 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있고 손을 잡고 장에 나간다. 이들의 모습이 우연히 지역 신문에 실렸고, SBS에서 파일럿으로 제작된 '짝' 4부작에 출연했다. KBS 2TV '인간극장'까지 이어진 부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진모영 감독도 마찬가지로 이 부부의 인생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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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모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영화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은 여느 연애 초반의 연인들 못지않게 애정이 넘친다. 할머니가 냇가에서 나물을 씻으면 할아버지는 어느새 다가와 돌멩이를 물에 던지며 장난을 걸고, 할머니는 화장실에 갈 때면 할아버지에게 말동무를 부탁한다. 부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진모영 감독이 발견한 금슬의 비법은 다름 아닌 '배려'다.

"굉장히 고전적이세요. 요즘에는 희생과 배려 이런 얘기하면 웃을 텐데, 사실 답이 그것 같아요. 그 작은 것을 끝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부부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거예요. 백송이 꽃 보다 한 송이 꽃을 매달 한 번씩 가져와서 10년 동안 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크다고 보는 거죠. 머리를 빗겨주고, 나가기 전에 신발을 돌려서 놔주고, 손을 잡아주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그런 것들이 가지는 힘이 있어요. 습관처럼 굳어진 배려가 단단한 기초가 되는 것 같아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제목은 고전 시가 공무도하가에서 차용했다. 그 강을 건너지 말라는 이 말은 영화 속 냇가가 휘감아 흐르는 부부의 집과도 닮았다. 감독에게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를 물었다.

"제목은 공무도하가에서 차용했어요. 전 학력고사를 보고 달달 외우는 세대여서 낯익은 고전시가였어요(웃음). 영화에 보면 집 앞에 흐르는 강이 좋잖아요. 두 분이 평생 사시면서 빨래하고, 나물을 씻었던 냇가를 지나면 강으로 연결이 되는데, 그 곳에서 강보는 걸 좋아하세요. 그런데 어느 날 부터는 할머니 혼자 앉아 있게 되는 거죠. 어느 날인가는 영원히 저 강을 건너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의 말씨와도 닮았죠. 할머니께서 강릉말씨를 쓰는데 굉장히 교양이 있어요. 요즘은 패러디도 하더라고요. '님아, 그 땅콩을 까지마오'라고."

기껏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싸우고, 또 화해하고, 후회하는 모습은 우리네 일상에도 녹아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도 이런 일상들이 녹아 있지만,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이 부부의 로맨스였다.

"사실 가족분들이 메인은 아니에요. 이건 가족 드라마가 아니거든요. 이건 연애의 이야기죠. 두 분이서 동떨어져 사는 게 아니니까 가족들과 관계도 보이지만 이건 로맨스에요. 가족분들을 밖에서도 만나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했어요. 굉장히 독특했어요. 다들 어쩜 그렇게 부부 관계가 좋을까 싶었죠. '큰아들부터 막내까지 닮은 부분이 있구나. 그건 부모로부터 부부관계에 대한 것들을 잘 배운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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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모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진 감독은 강계열 할머니의 가족들이 영화를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개봉 전 미리 가족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이들의 동의를 구했다. '워낭소리'의 사례처럼 흥행 후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들의 생활에 대한 안전도 최우선을 했다.

"할머니의 안전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자녀들 집으로 옮겨가셔서 보호를 하고 있고, 저희도 어떤 역할을 언제까지 어떻게 할지 미리 설계를 했어요. 할머니를 내세웠다면 영화가 더 잘 됐을 수도 있지만 할머니를 절대 내세우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했고, 배급사도 동의를 해줬어요. 돈 이야기는 안 하고 싶어요. 위험한 요소들이예요. 출연자와 가족에 대한 접근과 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들은 나쁜 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우린 돈을 벌기 위해 두 분을 찾아가서 카메라 앞에 서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이분들의 사랑의 위대함을 나누고 공감하고자 시작한 것인데 출연자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거나 당신들의 인생을 살지 못하면 우리가 가장 크게 잘 못한 것이고 죄의식이 크겠죠. 그 부분이 가장 힘들어요. 공포스러워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엄청난 흥행에도 감독의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스스로를 '독립PD'라고 소개하는 진모영 감독은 앞으로도 현대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이다.

"제 정체성은 독립PD예요. 1997년 방송을 통해 영상 쪽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18년 째 독립PD로 살고 있어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이에요. 영화로 내보내면 영화감독이 되고, 방송에 얹어지면 PD라고 하죠.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서 방송을 시작했어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오로지 현대 한국인에 관심이 있죠."

다음 작품 계획에 대해 물었다. 아직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는 사람을 조명할 것이다. 한 사람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인터뷰에 나온 그의 가슴팍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노란 리본 모양의 배지가 자리해 있었다.

"TV다큐도 할거고요. 영화도 만들 거고요. 공통점은 다큐멘터리를 한다는 것이죠. 산골에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수 도 있지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중 한 인물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세계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연결되는 것들, 단면을 통해 큰 것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어요. 세월호도 물론 관심 있죠. 문화라는 건 시대의 공기잖아요. 공감하고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응당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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