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웃기고 울리는 윤제균표 '포레스트 검프'①

[리뷰] 국제시장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1.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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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머니에게 6.25 전쟁 때 어땠느냐고 물었다. 낮에는 어머니 손잡고 산에 숨어 있다가, 밤에 어둠이 찾아오면 내려왔다고 했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6.25 전쟁 때 어땠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 삼형제가 다 참전해서 '빨갱이'들한테 죽을 뻔 했는데 이웃집 '아재'가 몰래 빼돌려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언젠가 이웃집 아주머니가 서독(그 때는 독일이 아니라 서독이었다)에 간호원(그 때는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원이었다)으로 간 누이에게 김치를 보내야 한다며 꼬득꼬득하게 말리는 광경을 봤다. 언젠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가 가스통에 불을 붙이고 대로에 누워있는 광경을 봤다. 언젠가 서울 여의도 광장에 가족을 찾는다는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담은 종이가 새하얗게 깔린 광경을 봤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제작 JK필름)은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관통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24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국제시장'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해운대'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일찌감치 천만영화라는 입소문이 자자했기에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몰렸다. 순제작비 140억원에, 총제작비 180억원이 들었기에 그 정도 관심은 어쩌면 당연했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밀려오면서 미군은 흥남에서 대대적인 철수를 해야 했다.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배에 태웠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이별을 했다.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황정민)는 그 때 여동생을 잃었다. 아버지는 동생을 찾으려 배에서 내렸고, 아들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니 어머니랑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덕수는 남은 식솔들과 함께 부산에 미군 물건 빼돌려 파는 고모집으로 가 얹혀살게 된다. 하루 한 끼 먹으면 감지덕지하던 시절이다. 미군에게 "기브 미 쪼꼴렛"을 외치다가 그나마 서로 얻으려 싸우던 시절이다. 전쟁은 끝났다. 덕수는 선장이 되고 싶단 꿈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돈을 벌었다. 공부 잘하는 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자, 서독으로 돈을 벌기 위해 광부로 갔다.

막장에서 죽을 뻔도 했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도 했다. 살만하다 싶었지만 웬걸 여동생 시집보낼 돈 마련하고, 죽은 고모 점포를 지키려 월남(베트남)으로 갔다. 덕수는 베트공에 죽을 뻔한 위기를 어찌어찌 넘기고,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 헤어진 아버지와 동생을 찾는 일이 남았다. 아버지와 약속을 지켜야 했다. 이산가족찾기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과연 덕수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국제시장'은 누군가에겐 그 시절을 진정성 담아 만든 감동적인 영화일테다. 누군가에겐 정치가 거세된 근현대사 신파극일테다. 윤제균 감독은 그 시절을 열심히 견뎌내고 살아온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 했다. 덕수는 윤제균 감독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다.

세상만사 정치와 연결되지 않은 일이 없지만, 평범한 사람에게 정치란 너무 먼 이야기다. 더욱이 그 시절엔 가족 입에 풀칠하려 온 몸이 부서지게 일해야 했다. 아버지라 다르고, 어머니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덕수 아내 영자(김윤진)는 가족에 돈 붙이려 서독에 일하러 간 간호원이다.

그래도 어머니에겐 살갑게 굴고, 아버지에겐 말이 안통한단 소리를 하곤 한다. 윤제균 감독은 말이 안 통하는 아버지가 왜 그리 됐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웃기고 울리며 들려준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나. 자기가 그렇게 했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국제시장'에 신파는 공감의 무기다. '미생'에 공감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교과서에서나 봤을 먼 이야기를 공감시키는 방법으로 신파를 택했다. 윤제균 감독은 다른 영화감독들이 촌스럽다고 피하는 방식을 일부러 택했다.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이 신파는 강렬하다. 흥남철수와 서독, 월남, 이산가족 찾기 등 4개의 큰 장면은 각각이 영화 한편이라 느껴질 만큼 공을 들였다. 각 장면마다 웃고 울린다. 윤제균 감독은 공감을 얻기 위해 시나리오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군데군데 각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 이유를 얻는다.

근현대사를 오가니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란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정주영이나 앙드레김이나 남진이나 이만기 같은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거인들이 우연처럼 스쳐 지나간다. 윤제균 감독은 촌스럽고 비판 받을 이런 방식을 택하면서도 칭찬 듣기 딱 좋을 정치 장면은 오히려 철저히 피했다. 그는 그 시절을 그저 열심히,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을 조명하는데 집중했다. 더도 없고 덜도 없는 윤제균 방식이다.

'국제시장'은 '해운대'를 만든 윤제균 감독 영화답게 볼거리가 참 많다. 흥남철수 장면은 전쟁영화 못지않게 큰 화면을 가득 메운다. 서독 장면은 좋았고 힘들었던 한 때를 환상처럼 그려냈고, 월남 장면은 흥남철수 장면과 연결된 만큼 공을 들였다. 이산가족 찾기는 당연히 눈물바다다. 이야기는 촌스럽지만 장면들은 세련됐다.

덕수 역의 황정민은 뜨겁고, 영자 역의 김윤진은 잘 받쳐주고, 천만 영화에 늘 있는 오달수는 감칠맛을 더했다. 어린 황정민, 어린 오달수 등 아역은 특히 좋다. 이병우 음악감독은 촌스럽지만 순간순간 뜨거워지는 '국제시장'을 지휘하듯 노래했다.

'국제시장'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들이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수박 쪼개지듯 갈라질 것이다. 그래도 울림은 분명하다. 이 울림이 얼마나 퍼질지, 지켜보는 것도 한 재미일 것 같다.

12월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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