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죽는다는 것..아끼지 말고 즐기며 살아"..김자옥을 기리며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1.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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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자옥 영정 / 사진공동 취재단


어떤 죽음이 애달프지 않으련만, 올해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망 소식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젊어서 죽음은 꽃 같은 청춘이라 애달프고, 중년의 죽음은 그 힘든 시간을 거쳐 이제야 한 숨 돌리려는 찰나 인지라 서글프고, 노년의 죽음은 아쉬워 눈물을 쏟는다. 권리세가 애통했고, 신해철이 비통했고, 김자옥이 서글프다.


김자옥이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16일 폐암 투병 끝에 훌쩍 떠났다. 고인은 이달 초까지 남편과 함께 서울 온누리 교회에 나왔다. 힘겨워하는 부인의 손을 꼭 잡은 남편 오승근에 주위에선 뒤로 돌아 눈시울을 붉혔었다. 아들 결혼이 내년 3월인지라 "조금 만 더 살았으면"이란 기도가 많았지만 하늘은 무심했다. 무심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 남은 사람만 애달프다.

김자옥은 젊어서 청순가련의 대명사였다. 김자옥은 CBS 기독교방송 아역 성우로 출발했다. 65년 배화여중 시절 TBC드라마 '우리집 5남매'로 출연했고, 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활동을 시작했더랬다.

'O양의 아파트'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등 여러 영화와 김수현 작가의 '수선화' 같은 드라마로 참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인기가 절정이던 80년에 가수 최백호와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오승근과 재혼할 때까지 잠시 활동을 멈췄었다.


꽃 같았던 김자옥은 꽃 같은 이미지를 뒤틀어 즐기기까지 했다. 90년 태진아의 권유로 '공주는 외로워'라는 음반을 냈다. 공주병, 왕자병이란 말이 비아냥처럼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시절 김자옥은 오히려 공주 이미지를 즐겼다. 영원한 공주란 말은 이렇게 생겼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 누구의 할머니를 맡기 마련인 노년배우 중에 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가 김자옥 외에 누가 있을까.

영원한 공주는 마지막까지 공주다웠다. 김자옥은 지난해 MBC '무릎팍도사'에서 암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암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병"이라고 했다. 암에 덤덤하기가, 죽음에 담담하기가, 어떤 이라고 쉬울까.

김자옥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사랑을 줬던 사람들과 안녕을, 마지막까지 참 열심히 준비했다. 암투병으로 공황장애까지 겪었지만 용기를 내 떠났던 '꽃보다 누나'에선 이미연의 손을 꼭 잡고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3월까지 방영했던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도 했고, 5월에는 악극 '봄날은 간다'도 했다. 치료 때문에 연습에 늦은 적은 있지만 예정된 공연을 거른 적은 없다했다.

김자옥은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출연했었다. 촬영 당시 김자옥은 암으로 몸이 참 안 좋았었다. 3일 촬영하고 바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래서 영화 속 김자옥 대사는 길고 길게 기억에 남는다. 김자옥은 영화 속에서 딸인 정은채에게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는다는 것이니 아끼지 말고 즐기며 살아야 해"라고 했다. 김자옥은 마지막까지 아끼지 말고 즐기면서 이별을 준비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출연은 유쾌했다. 김자옥은 "윤여정 선배님이 '너 좋은 영화 하고 싶다고 했지?'라고 전화가 왔었다"며 "홍상수 감독 아니?라고 물어서 잘 모른다고 했다"고 했었다. 김자옥은 "윤여정 선배님이 임상수 감독이 아니고 홍상수 감독이라며 임상수 감독은 돈을 주고 홍상수 감독은 돈을 안준다고 했다"고 말해 한참을 웃게 했다.

김자옥은 "그 부분이 굉장히 매력 있는 것 같았다"며 "감독님 만나서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데 공통적인 외로운 정서를 느꼈다. 그 때 나온 이야기가 다 내 대사에 나오더라"고 말했었다. 아끼지 말고 즐기며 살라는 대사는 그렇게 나왔다.

그렇게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김자옥의 영화 유작이 됐다.

김자옥은 "영화하길 참 잘한 것 같다"며 "계속 영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영화를 찍고, TV드라마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하고, 악극에 출연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충실한 일인지.

김자옥은 마지막까지 삶에 최선을 다한 진짜 공주였다.

누구의 죽음은 남은 이에게 고통을 안기고, 누구의 죽음은 남은 이에게 숙제를 남긴다. 김자옥은 남은 이에게 충실한 삶, 그리고 준비하는 이별을 남겼다.

잘 사는 것도 힘들고, 잘 죽는 건 더 힘든 세상이다. 김자옥의 하늘나라 여행은 많은 질문을 남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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