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가 말하는 '나의 독재자', 아버지, 그리고 '마마'(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0.22 13:33 / 조회 : 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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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 /사진=이동훈 기자


설경구가 아버지가 됐다. '소원'으로 아빠가 되더니 '나의 독재자'로 아버지가 됐다. 설경구는 자기 색이 강한 배우다. 어떤 옷을 입혀도 설경구가 드러난다. 그랬던 설경구인지라 아버지 역할을 해도, 아이를 둔 설경구였다.


하지만 '소원'에서 그는 불행한 일을 겪은 딸을 위해 코코몽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아빠가 됐고, '나의 독재자'에서 아들에게 자랑스럽고 싶은 아버지가 됐다. 그는 비로소 아버지가 됐다.

'나의 독재자'는 1972년 남북공동성명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무명 연극배우가 가상의 김일성 역할을 맡아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 김일성 역할에 빠져 정신줄을 놓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설경구가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살을 찌우고 혹이 나오기 위해 뒤통수를 긁으며 그렇게 그는 '나의 독재자'에서 아버지가 됐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무엇이 가장 끌렸나.

▶처음엔 썩 좋진 않았다. 생각이 좀 많이 들었고, 무겁게 읽혔다. 그러다가 이해준 감독을 만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가볍게 읽히더라. 그 시대를 담은 블랙코미디 같았다. 코미디 같은 인생처럼 읽히기도 하고. 이해준 감독도 자기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 무겁게 만들겠다고 했다면 아마 안한다고 했을 것 같다.


부모 자식을 다룬 영화들이 많긴 하지만 1972년과 1994년을 배경으로 이렇게 풀어낸 게 특이하고 재밌었다.

-아들 역할인 박해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1994년 장면부터 말하자면 주인공이 바뀌는 셈인데. 감정선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는 없었나.

▶우리끼리는 2막이라고 표현했는데, 내 이야기인 1막이 끝나고 박해일이 나오는 2막부터 분위기를 환기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1막에선 아무래도 고문 장면도 나오고 칙칙했다면 박해일이 갖고 있는 분위기로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박해일이 똘끼도 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친구니깐.

-두 사람이 실제 9살 차이라 아버지와 아들 역할이 과연 어울릴까란 우려도 있었는데.

▶어색하지 않을까란 우려들이 있었다. 그런데 박해일이 문자로 "아부지, 지금 가요"라고 보내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와 줬다. 박해일이 내가 자기 아버지와 덩치와 태도 비슷하다고 하더라. 박해일 아버지께서 실제로 이 영화 촬영 중에 암에 걸렸다가 좋아졌는데, 아프시면 고집이 꺾일 줄 알았는데 똑같은 점까지 영화와 닮았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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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 /사진=이동훈 기자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 역할이 딱 맞는 것 같은데. 전환점이랄지,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랄지, 그런 게 있었나.

▶없었다. 그냥 나이를 먹은 것 같다.

-김일성 역할을 맡아 김일성처럼 돼버린 남자 이야기가. 김일성처럼 보이기 위해 배우도 참고한 게 있었을텐데.

▶제작사에서 동영상을 하나 줘서 봤다. 일반인도 볼 수 있는 그런 영상이었다. 요즘은 종편에도 많이 나오는 그런 영상들. 김정일이나 김정은이나 다 대단한 배우들 같더라. 김일성을 그렇게 닮을 수가 없더라. 손동작까지 닮았다.

그런데 이 영상을 집에서 보려는데 순간 쫄아서 커튼을 치고 봤다. 누가 밖에서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이후로 집에선 안 보고, 영화사에서 보면서 참고를 했다.

-김일성처럼 보이기 위해 살도 찌웠는데.

▶하도 살을 찌웠다 뺐다는 말들이 많아서 얼마나 더 쪘는지는 안 재봤다. 영화를 찍으면서 같이 살을 찌워야 해서 그냥 많이 먹었다. 고문 받는 장면에서 빠졌다가 다시 확 살을 찌웠다. 나중에 내 몸무게로 돌아와 보니 아, 내가 살이 많이 쪘었구나 싶었다.

-무명배우가 김일성 역할을 배우면서 처음부터 연기를 익히는 부분들이 나오는데. 연기를 시작할 때가 떠오르던가.

▶영화에서처럼 맞으면서 배우진 않았다. 영화에서 꼭 고문실에서 연기공부를 해야 할까 싶었지만 감독이 그 시대를 담고 싶었던 것 같더라. 처음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땐 정말 영화에서처럼 잔뜩 긴장했었다. 연극 시작한지 40분 만에 무대에 오르는 역할이었는데 밑에서 술을 한 병을 다 마시고 올라갔었다.

원래 숫기가 없어서 배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선배들 손에 끌려서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얼굴에 경련이 일기도 했다. 연극은 라이브다 보니 정말 긴장된다. 예전에 베를린에서 '지하철 1호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보시더니 "네가 망치고 있다"고 하신 적이 있다. 대사도 안들리고 너만 보인다고. 머리가 번쩍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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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 /사진=이동훈 기자


-영화는 무섭지 않았나.

▶영화는 처음엔 스태프들이 무서웠었다. 다 적들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잘 하는지 지켜보자는 사람들 같았고. 그러다가 '송어'를 할 때 이 사람들이 다 내편이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강수연 선배가 많이 도와줬고.

-'나의 독재자'에서 이해준 감독이 설경구에게 어떤 것을 주문했었나.

▶나이를 먹은 모습을 특수분장을 꾸미는데 절대 김일성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하더라. 출발은 설경구니, 설경구나 늙은 모습이 나와야 한다며. 김일성 모습을 만들지 말라고 한 그 말로 다 이해가 되더라.

-영화를 찍을 때 늘 투덜거리면서도 감독이 원하는 대로 다 한다. 어떤 배우들은 감독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고, 어떤 배우들은 자기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돌을 하기도 하는데.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한 사람들이니깐. 처음에 "싫어"라고 하긴 하는데 감독이 나보다 전체를 더 많이 보고 더 고민을 했을테니 그 말을 따르려 한다.

-'나의 독재자'처럼 역할에서 오랫동안 빠져 나오지 못한 적이 있나.

▶'박하사탕'. 영화가 뭔지도 모를 때 오만감정을 다 담은 영화다 보니, 아직도 거기서 못 빠져 나왔나 싶기도 하다. 내 영화를 원래 잘 못 보긴 하는데 '박하사탕'은 보면 너무 울어서 계속 안 보려 피하기도 했었다. '나의 독재자'에서 이 인물이 김일성이란 배역에서 안 빠져 나온 건지, 못 빠져 나온 건지, 그게 끝까지 궁금하더라. 감독에게 가장 많이 물어본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도 모르겠고. 아마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의 독재자'는 보고 울었나.

▶울었다. 박해일이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기 때처럼 울 때 감정이 끓어 오르더라.

-아내인 송윤아 주연 드라마인 '마마'는 봤나.

▶촬영 없을 때 틈틈이 봤다. 많이 울었다. 울컥하지 않나.

-'나의 독재자'에서처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필모그래피나 보여주기 싫어서 안 하는 작품들이 나이를 점차 먹다보면 생기나.

▶꼭 보여주고 싶거나 그런 건 없는데. 너무 센 건 손이 잘 안가긴 한다.

-'나의 독재자'는 무명배우의 입장과 아버지의 입장이 나온다. 어디에 더 감정이입이 되던가.

▶아버지. 아버지를 아빠에서 아버지라고 부른 게 고등학교 때였다. 어머니가 컸으니 이제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버지란 아들에게 원래 어렵지 않나. 특히 우리 시대에는. 이 영화는 나의 아버지, 박해일의 아버지, 이해준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담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내게 "미안하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게 오히려 화가 나더라. 왜 이렇게 거리가 있는 걸까. 그게 우리 시대 아버지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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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 /사진=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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