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재자' 독재자였던 그가 몹시 보고 싶다①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0.21 09:50 / 조회 : 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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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품을 정리하다 문득 아버지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청춘은 어땠는지, 꿈은 뭐였는지, 무슨 일로 기뻐했고, 무슨 일로 화를 냈는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는 그런 궁금증과 맞닿아 있었다. '나의 독재자'는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했던 그 무렵, 한 연극쟁이를 그린다. 정부는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밀 프로젝트를 꾸린다. 김일성의 가상 대역을 만들어 리허설을 꾸려보자는 것. 오디션은 혹독했다. 무자비할 정도로 고문을 한 다음 가장 입이 무거운 사람을 김일성 대역으로 삼는다.

아내는 병들어 죽고,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둔 가난한 연극배우 성근. 설경구가 맡았다. 아들에게 무대 위에 선 제대로 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간신히 얻은 리어왕의 그림자 역할을, 대사를 외우고 또 외웠건만, 그만 쏟아지는 조명에 잊고 말았다. 아들에게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죽자고 오디션에 매달려 죽도록 고생하며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역을 맡게 된다.

살을 찌우고, 뒤통수를 긁어 혹을 만들며, 아버지는 김일성이 돼 갔다. 광기의 시대, 광기의 배역에 사로잡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라며 아들을 때린다. 하지만 유신이 선포되고, 남북 정상회담은 취소되고, 무대는 사라졌다. 김일성이 된 아버지만 남았다. 광기의 시대는 광기만 덩그러니 남겼다.


기억 속에 아버지는 늘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기억은 잊었다. 아니 지웠다. 여느 아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고 애써 자위하면서 아빠라고 불렀던 기억을 지웠다.

'나의 독재자'도 닮았다. 영화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던 과거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1994년 어느 시간을 담았다. 아들 태식, 박해일이 맡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잊었다. 아니 지웠다.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은 정신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지운 채 피라미드 사기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쫓아다니는 여자도 귀찮다. 사채업자에 쫓기던 그는 아버지가 김일성 역할을 맡은 대가로 받았던 분당의 집이 재계발로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집이 아버지 삶의 대가였던 건 모른다.

집을 팔아 한 몫을 챙기려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찾는다. 아버지의 인감도장이 필요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남조선 통일을 외치는 미친 아버지가, 마트에 쌓여있는 통조림을 인민에게 나눠주라고 점장의 멱살을 잡는 아버지를, 자신을 정일이라고 부르는 아버지가, 그저 미웠다.

기자가 아버지를 처음 이해한 건 군대에 있었을 때였다. 그러니깐 17년 전쯤이다. 젊어서 돈을 벌려 두 차례 중동에 갔다 왔던 아버지는 사막의 열기로 밥알이 모래처럼 느껴졌다고 했었다. 가족을 위해 살려고 먹었다고 했다. 군대에서 열이 올라 밥알이 모래처럼 느껴졌다. 물이라도 말아 먹으면 좋았으련만, 이등병이 그랬다간 빠졌다고 한참 맞을 일이었다. 아버지가 면회를 왔다. 평일이었다. IMF 때였다. 주말이 아니라 소대장의 배려로 외박 아닌 외출을 나갔다. 아버지와 같이 목욕을 했고, 처음으로 담배를 나눠폈다.

'나의 독재자'에서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광기가 사그러들던 어느 날, 정부에서 다시 아버지를 찾았다. 김일성과 YS의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아버지는 비로소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단 하나 아들에게 그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조건을 단다. 청와대에 들어선 아버지는 일생 최고 무대에 오른다. 마지막 무대다. 세상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단 하나의 관객, 아들을 앞에 뒀다. 아버지는 과연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칠까, 아니면 다시 대사를 잊을까. 연극이 끝나고 조명이 사라진 뒤 청와대를 나서는 아버지의 등은 흠뻑 젖었다.

이해준 감독은 일상을 마법처럼 잡아낸다. 여자가 되고 싶은 아들의 이야기였던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한강에서 표류하는 남자 이야기인 '김씨표류기'에서, 그는 일상을 마법처럼 잡아냈다. '나의 독재자'에선 집이 철거되던 그 순간, 거대한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는 그 순간을, 벽을 무너뜨리는 마법 같은 순간으로 잡아냈다. 설경구는 아버지였고, 박해일은 아들이었다. 유품을 정리하던 아들은 아버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1994년 7월8일 김일성이 죽었다. 첫 남북정상회담은 DJ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미뤄졌다. 아버지가 죽었다. '나의 독재자'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2006년 8월2일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체안치소에 차갑게 누워있는 아버지를 동생과 같이 확인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나의 독재자'는 독재자였던 아버지를 그리게 한다. 독재자였던 그가, 몹시도 보고 싶다.

'나의 독재자'는 10월30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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