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10년, 1000만 영화 10년①

[스타뉴스 10주년 기획]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09.22 11:01 / 조회 : 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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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을 넘긴 한국 영화들 / 사진=포스터


스타뉴스가 출범 10년을 맞은 2014년은 한국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2003년 말 개봉한 '실미도'를 시작으로 올 여름 을 휩쓸어버린 '명량'까지, 그간 10편의 한국영화가 1000만의 관객을 넘겼다. 2편의 외화도 1000만 영화 대열에 합류했다.


"인구 5000만의 나라에서 한 영화를 1000만 명이 우르르 극장으로 달려가 본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란 회의적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신이 주신 관객'이자 '꿈의 흥행'이었던 관객 1000만 영화가 이제는 좀 더 가까운 현실이 되었다. 수치로 입증된 현실이다.

◆ 1000만 영화, 어디까지 왔니

최초의 1000만 영화 '실미도'(감독 강우석)는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4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58일째인 이듬해 2월 19일 1000만 관객을 넘겼다. 그 2월에는 2번째 1000만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가 440개 스크린에서 개봉했고, 훨씬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아 39일째인 3월 14일 1000만을 돌파했다. '실미도'의 최종 관객은 1108만 명, '태극기 휘날리며'의 최종 관객은 1174만 명이다.

이전의 최고 흥행작은 818만 관객의 '친구'(감독 곽경택·2001). 그에 앞서 580만 관객을 기록한 기념비적인 흥행작 '쉬리'(감독 강제규·1999)가 있었다. '서편제'(감독 임권택·1993)가 서울 단관 개봉만으로 103만 명을 불러 모아 파란을 일으킨 것이 그 시점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다.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1000만이란 수치에 영화계와 관객과 언론이 들썩였다. 이는 그 사이 무섭게 성장하고 팽창한 한국 영화시장을 나타내는 수치로도 받아들여졌다. 한국영화가 해냈다는 예의 애국심 마케팅도 제대로 관객에게 통했다.

2005년 연말 개봉해 1230만 명을 모은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가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개봉 전부터 바람몰이를 제대로 한 대작 블록버스터도 아니었다. 단 255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왕의 남자'는 입소문을 바탕으로 점차 스크린을 늘려나가며 무섭게 흥행했고, 재관람 열풍 속에 석 달이 넘게 관객과 만나며 한국 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롭게 썼다. "한국의 진정한 1000만 영화는 '왕의 남자' 하나 뿐"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흥행의 역사는 늘 새롭게 작성된다. 2006년 개봉한 '괴물'(감독 봉준호)은 1301만 관객을 동원하며 다시 역대 흥행영화 1위 자리에 올랐다. 역대 최대였던 순제작비 112억 원이 투입된 '괴물'은 예고된 흥행작이었고, 개봉 첫 주 역시 사상 최대였던 62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며 흥행기록 행진을 거듭했다. '괴물'은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얻은 명작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사회적 메시지 SF장르 CG 등 다양한 도전이 담긴 작품이었다. 동시에 흥행 독주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영화산업이 팽창만을 거듭한 것은 아니다. 함량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 쏟아지며 한국영화 거품이 최고조에 이른 2006년 한국영화는 침체의 늪에 빠졌고, 1000만 영화 역시 잠시 자취를 감췄다. 이후 등장한 1000만 영화가 2009년 여름 시즌 개봉한 '해운대'(감독 윤제균). 유머를 곁들인 한국식 블록버스터, 과감한 CG, 멀티 스타캐스팅을 선보인 '해운대'는 1145만 명을 끌어 모았다. 그 놀라움도 잠시, 그 해 연말 개봉한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 '아바타'(감독 제임스 카메룬)는 해외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한편, 무려 1362만 명을 모으며 역대최고 흥행작 자리에 올랐다. 관객을 3D의 세계에 눈뜨게 한 환상적인 볼거리, 압도적 물량, 대중적인 이야기가 조화를 이룬 '아바타'는 할리우드의 무서운 힘을 실감케 한 작품이었고, 그 흥행기록은 2014년 '명량'이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휴지기. 그러나 침체는 길지 않았다. 한국의 1000만 영화는 2012년 7월 개봉한 '도둑들'(감독 최동훈) 이후 또 다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화려한 멀티캐스팅을 앞세운 쫀득한 케이퍼 무비는 1302만 명(배급사 기준, 영진위 집계 1298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6년 만에 '괴물'을 제치고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고, 그해 9월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는 1231만 관객을 불러 모아 다시 1000만 영화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해 한국영화의 관객이 최초로 1억 명을 돌파했다. 한국영화 전체적으로도 2005년 이후 7년 만에 상업영화의 투자수익률이 흑자로 전환됐다.

이후 1000만 영화는 봇물이 터지듯 탄생하고 있다. 2013년 초 개봉한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이 1281만 관객을 모으며 '눈물 더하기 웃음' 의 힘을 보여줬고, 2013년 말 개봉한 '변호인'(감독 양우석)은 묵직한 실화의 저력을 입증하며 1137만 관객을 돌파했다. 수많은 흥행작이 쏟아진 이 해, 사상 최초로 한 해 영화 관객이 2억 명을 돌파했고, 영화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즐기는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의 1029만 흥행과 함께 문을 연 2014년은 올 여름 '명량'(감독 김한민)의 1700만 기록적인 흥행으로 다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개봉 첫 날부터 모든 최단기간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한민국 영화 흥행의 모든 기록을 모두 새로 작성한 '명량'은 지난 21일까지 1757만 관객을 기록하며 여전히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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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 돌파 영화들 / 사진 왼쪽 위부터 아래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해운대', '도둑들' 스틸컷


◆ 1000만 영화 10년, 무엇이 달라졌나

영화는 오락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지만 그 흥행은 사회적인 현상이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초대형 흥행은 더더욱 그렇다. 텍스트만큼 콘텍스트에도 그만큼 관심이 쏠린다.

첫 1000만 영화가 탄생한 2004년은 1998년 최초로 문을 연 복합상영관인 강변CGV 이후 확산된 멀티플렉스가 자리 잡으며 관객의 영화 소비패턴까지 바꿔놓은 막강한 위력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 해였다. 잊히다시피 한 실제 사건을 공론화시킨 '실미도', 한국전쟁의 스펙터클에 형제애를 녹여낸 '태극기 휘날리며'는 화제성과 막강한 배급력을 바탕으로 각각 400개 이상 스크린에서 와이드릴리즈 방식으로 개봉하며 극장가를 장악했다.

동시에 영화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대 젊은 관객뿐 아니라 40~50대 이상까지 관객층이 확산되며 폭발적인 흥행 성과를 이뤄냈다. '친구'의 흥행 이후 한참을 이어진 조폭영화 일변도에서 벗어난 차별화된 콘텐츠 또한 관객에게 통했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할리우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 기술로 구현해 낸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자체만으로 '봐야 할 영화'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노골적인 애국심 마케팅에도 비교적 너그러웠던 때였다.

10년 뒤의 2004년은 과연 어떨까. 일단 그 사이 한국의 영화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2004년 개봉 편수가 77편에 불과했던 한국영화는 2014년 9월 현재까지 150편이 개봉할 만큼 제작 편수가 늘었다. 스크린 수 역시 폭증해 2004년 12월 말 1451개(문화관광부 영상정책자료)였던 국내 영화상영관 수는 2004년 9월 현재 2587개 스크린(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가입률 99.38%)로 늘어났다. 관객 수도 크게 늘어 2004년 총 1억3200만 명이었던 1년 총 관객은 2013년 최초로 2억 명을 돌파, 2억1300만 명에 이르렀다.

이같은 성장은 1000만 영화의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채 2년도 되지 않는 동안 무려 4편의 1000만 영화가 나오면서 "1000만 영화 탄생에도 가속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어디 1000만 영화뿐이랴. 2013년에는 비록 1000만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설국열차'(감독 봉준호, 935만 명), '관상'(감독 한재림, 913만 명), '아이언맨3'(감독 셰인 블랙, 900만 명) 등 900만 영화가 무려 3편이나 탄생했다. 올 해에는 '수상한 그녀'(감독 황동혁, 865만 명), '해적,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850만 명, 상영 중) 등 2편의 800만 영화가 나왔다.

막강한 와이드릴리즈 개봉 방식은 비단 1000만 영화만이 아니라 초기 폭발적인 관객몰이를 위한 대형 기대작들의 필수 조건이 되다시피 했다. 개봉 초반 상영관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스크린 싹쓸이 논란 또한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할 당시 440개관이 당시 전체 스크린의 약 30%였지만, 올해 '명량'이 개봉하며 확보한 1159개관은 전체 스크린의 44%에 해당한다. 가장 개봉관이 많았을 때는 1586개관에서 상영됐다. 전체 스크린의 약 61%를 한 영화가 차지한 셈이다. 디지털 영사시스템의 정착으로 각 극장이 입맛대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며 스크린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명량'의 경우 80%를 넘나든 좌석 점유율 덕에 비교적 비판이 덜했지만, 대형 배급사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동시에 관객들의 영화 소비 패턴 또한 달라진 모습이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 중심가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었던 멀티플렉스는 서울과 수도권, 지방 대도시는 물론이고 지방 소도시까지 침투해 관객을 모으고 있다.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연인과 친구, 가족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오락거리로 자리 잡았다. 2013년 기준 한국인들의 1년 영화 관람 수는 4.12편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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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들 / 사진 왼쪽 위부터 아래로 '겨울왕국', '광해, 왕이 된 남자', '아바타',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명량' 스틸컷, 포스터


최근에는 영화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대 관객에 비해 40~50대 이상 관객이 크게 늘어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영화 뿐 아니라 뮤지컬 등에서도 중장년이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노블레스'관객, 혹은 '시니어'관객이라 불리는 50대 중반 이상은 극장이 텅텅 비는 오전, 낮 시간대 극장을 관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럿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성향이 짙다. 각 극장체인이 이들을 위한 프로모션을 따로 진행할 정도다.

한 영화배급사 관계자는 "대형 흥행작들의 경우 500만 돌파를 전후해 영화의 흥행 소식을 들은 중장년 관객이 극장으로 나오면서 후반부 관객몰이에 불이 붙어 1000만 흥행까지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며 "최근에는 중장년 관객의 파워가 더욱 막강해졌다"고 평가했다. 중년 관객 파워가 제대로 발휘되며 달라진 흥행 패턴을 보인 대표적 작품이 바로 '명량'이다. CJ CGV의 예매 분석에 따르면 '명량'은 역대 최대 40대 이상 관람객 수와 역대 최고 재관람률을 기록했다. '변호인'에 이어 '명량'을 홍보한 퍼스트룩의 이윤정 대표는 "'명량'의 경우 개봉과 동시에 40~50대 이상이 극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낮부터 매진사례를 기록한 폭발적 흥행의 바탕이 됐다"며 "전에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교육적 효과를 고려한 '부모' 관객의 취향 역시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족영화의 파워 역시 상당하다. '겨울왕국'의 경우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30대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 자녀들과 반복 관람으로 이어졌다. 영어교육 열풍도 바람에 한 몫을 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향수와 리더십에 대한 갈망 등이 맞물리며 나타난 '이순신 신드롬'과 함께 폭발적으로 흥행한 '명량'은 자녀들에게 우리 역사와 위인을 알려주기 위한 교육적 영화로도 소비됐다.

◆ 1000만 영화 명과 암

1000만 영화는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잡는 데 큰 몫을 해 왔다. 10년 전 100억 영화는 세상이 놀랄 모험이었으나, 최근에는 제작비 100억을 넘기는 대형 영화가 한 해에도 몇 개씩 나온다. 모두 영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덕분에 가능했던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몇몇 불안 역시 여전하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논의 역시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에 매달리다보니 대형 기대작들이 개봉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스크린 독과점이 여전한 논란거리다. 투자-배급-상영의 수직계열화는 첫 1000만 영화 탄생 이후 지금까지도 마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다. 빛이 커지니 그늘도 짙어져, 영화 시장의 성장에도 영화 스태프의 처우 문제는 아직까지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1000만 흥행 영화를 위해 달려가면서 지금의 한국영화를 만든 10년 전의 다채롭고 개성 강한 작품들을 보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영화평론가는 "1000만을 향해 가는 흥행 지상주의가 영화계의 최고 가치가 된 느낌"이라며 "한 편의 1000만 영화보다 10편의 100만 영화, 3편의 300만 영화가 사랑받는 것이 다양성의 측면에서 건강한 영화 생태계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 영화 제작 관계자는 "단적으로 해외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모두 10여 년 전에 나왔는데 이를 능가할만한 한국영화의 수작들이 최근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지 반문해볼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 같은 점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이 준비하는 '천만제작자포럼'은 주목해볼만 하다. 역대 1000만 영화를 제작한 10인의 제작자 강우석(실미도), 강제규(태극기 휘날리며), 이준익(왕의 남자), 최용배(괴물), 윤제균(해운대), 원동연(광해, 왕이 된 남자), 김민기(7번방의 선물), 최재원(변호인), 김한민(명량) 등이 최초로 함께 모여 한국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 의미 있고도 신선한 시도다. 이제 1000만 영화의 다음 1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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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역대 1000만 관객 흥행 영화 /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 배급사 집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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