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는 왜 '홍상수 마니아'가 되었나(인터뷰)

영화 '자유의 언덕'의 영선 역 문소리 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4.09.1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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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소리/사진=이기범 기자


"몇 번 가보니 이제 단출하게 가요."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베니스영화제 레드카펫. 이미 많은 해외영화제를 경험해본 문소리(40)는 마치 잠시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듯 담담하게 웃으며 말한다.


함께 영화를 찍은 사람들과 MT를 떠난 것처럼 화려하고 유난스럽지 않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즐기고 돌아온 문소리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서울 팔판동의 한 게스트하우스.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 속 이야기의 중심이 됐던 게스트하우스가 떠올라 어쩐지 웃음이 나는 공간이다.

영화제에 대해 묻자 "MT간 것 같았다"며 "MT를 너무 멀리 갔죠"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별 일 아닌 듯 말하지만 베니스의 작은 호텔 앞뜰과 비가 내리는 운치, 맑게 갠 하늘에 쏟아지던 노을을 말하는 순간은 마치 소녀처럼 설레 보였다.

"MT를 너무 멀리 갔죠? 강원도로 가도 될 것을(웃음). 다들 굉장히 반가웠어요. 베니스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즐겼다기보다는 노을도 멋지고, 호텔 앞 작은 마당에서 오붓하게 와인 한 잔 하고.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올해는 영화제 기간에 비가 왔어요. 의외로 차분하면서 느낌이 있더라고요. 저희가 레드카펫 할 때는 딱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에 노을이 이글이글 거리는 거예요. 그 모습이 정말 강렬했어요."


그간 일상과 일탈이 묘하게 뒤섞인 작품들로 해외 관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던 홍상수 감독의 신작인만큼 '자유의 언덕'에 쏟아진 관심도 뜨거웠다. '오아시스'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던 만큼 문소리에게도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졌을 터, 문소리는 "저보다는 홍 감독에 대한 반응이죠"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감독님에 대한 반응은 역시 좋았어요. 감독님 영화들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인터뷰를 할 때도 이 작품 하나가 아닌 여러 작품을 이어서 분석하고 질문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요? 에이. 예전에 상 받았었다고 질문을 조금 더 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홍 감독에 대한 관심이죠. 홍상수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어가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계속 좋아해주는 것 같고, 외국 관객 반응은 확실히 한국의 반응과는 다르다는 걸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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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소리/사진=이기범 기자


문소리는 스스로 '홍빠'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하하하'에 출연한 후 문소리는 마치 가랑비에 옷 젖는 듯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스며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홍상수표 영화의 매력이란다.

"소위 '홍빠'라고들 하죠(웃음). 배우들 중에도 여러 사람이 있어요. 저는 처음에는 '난 홍빠는 아니야' 했었어요. 어릴 때는 감독님 영화를 보고 싫어하는 작품도 물론 있었어요. 지금 보면 물론 또 달라요. 나이가 들면서 감독님 영화가 점점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하하하'를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 작품이 저 개인에게 가져다 준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했어요. '한 번 더 해볼까?'하고 한 번 또 했더니 완전히 다른 걸 가르쳐주고요. 영화를 여러 작품 하지만 진짜 깨달음이 되는 작품은 많지 않아요. 이젠 계속 하고 싶어지는 상황이죠(웃음). 전 '홍빠'가 늦게, 천천히 됐고, 점점 더 홍 감독님의 작업의 맛이 뭔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어떤 영화인지 전혀 정보도 없이 현장에 가서 그날 그 날 주어지는 대본대로 촬영을 끝냈다. 카세 료가 출연한다는 정도가 주어진 정보였달까.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채 진행된 촬영이었지만 문소리는 '자유의 언덕'을 통해 연기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상투적인 말이라서 이렇게 표현하기는 싫은데, 초심을 떠올리게 했어요. 뭔가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 느낌? 단순히 '아, 내가 변했구나. 돌아가야지'하고 다짐하는 것과는 달라요. 굉장히 세세하게 내 연기에 대해 느끼게 하고, 연기의 본질을 생각하게 했어요."

문소리가 천천히 '홍빠'가 된 케이스라면 이번 작품을 통해 홍상수 월드에 뛰어든 일본 배우 카세 료는 마치 뼛속부터 홍상수 마니아의 피가 흐르는 듯하다. 인터뷰에서도 수차례 홍상수 감독의 팬임을 강조했던 카세 료는 '자유의 언덕'을 통해 감독의 작품 속에서만 만나던 문소리와 한 앵글에 담겼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어요. 마치 '날 때부터 홍빠가 아니었을까?'싶은 느낌이랄까요(웃음). 카세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해요. 온 몸과 마음을 이 작품을 위해 바친 것 같았어요. 작품과 완벽하게 교감하고 이 작품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은 자세가 보였어요. 무엇보다 홍상수 감독님에게 굉장히 큰 자극이 되는 배우였어요. 그런 부분에서 정말 좋은 영향을 많이 준 배우예요."

카세 료에 비하면 자신은 한참 멀었다고 말하지만, 문소리도 영화에 대한 애정은 만만찮다. 스스로 영화에 대한 열정이 줄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애정을 놓지 않기 위해 영상대학원을 등록했다. 대학원에서 만든 단편영화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단편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영화가 더 깊이 알고 싶었다기보다는 왜 그런지 영화를 옛날처럼 좋아하지 않는 저를 느꼈어요. 한때는 어떤 영화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빨리 봐야지!'하고 꼭 챙겨봤는데 어느 순간 그 영화를 보지 않아도 특별히 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영화와 관계를 유지하는 저 만의 방법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공부 하라고 할 때는 안 하고(웃음). 교정이라는 곳이 평화롭게 느껴져요.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교실 안은 편안하죠. 산 속의 절보다 더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앞으로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단 문소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지금은 전혀 생각이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한 집안에 감독 둘은 너무 하잖나"라며.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것, 영화감독과 결혼하지 않겠다더니 덜컥 장준환 감독과 결혼한 문소리가 아닌가.

"연출이요? 지금 마음으로는 하지 말자 싶어요. 만약 정말 너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그런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요. 연출에 욕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해 광범위하게 공부할 수 있어서 선택한 것이 연출 제작 파트였어요. 그래도 사람 앞날은 모르죠. 그렇게 영화감독과는 결혼 안한다고 했던 제가 감독이랑 결혼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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