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보이콧 논란..영화로 애국하는 사람들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8.24 12:37 / 조회 : 181939
  • 글자크기조절
image


영화 '해무'가 보이콧 논란에 휘말렸다. 발단은 뮤지컬 배우 이산(본명 이용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산이라는 자가 22일 SNS에 "'유민이 아빠라는 자'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라는 글과 광화문 단식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 글에 정대용이라는 배우가 "황제단식"이라며 동의하는 듯한 댓글을 올렸다.

세월호 특별별 제정을 촉구하며 40일이 넘게 단식해온 세월호 참사 유족인 고 김유민의 아버지 김영오 씨에 대해 막말을 퍼부은 것이다.

정치적인 색깔을 떠나 자식 잃은 아비를 향한 막말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갈 길을 잃고 엉뚱한 희생양을 찾고 있다. 정대용이란 자가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 '해무'를 보지 말자는 주장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 '해무'는 IMF 시절 만선의 꿈을 품고 바다로 나섰지만 돈을 벌기 위해 밀항자들을 태웠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 정대용이란 사람은 대사 한 마디 없는 역할로 잠시 얼굴을 비췄다.

'해무'는 어쩌면 세월호가 품은 슬픔과 부조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영화다. 가라앉는 배, 욕망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 이 영화는 2014년 대한민국을 전면으로 마주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도자를 '명량'으로 찾고, 웃고 즐길 수 있는 '해적'을 본다.

위로를 찾고자 영화관에 가서 굳이 힘든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관객의 취향을 탓할 순 없다. 탓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렇다고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은 채 그저 누군가가 그 영화에 출연했다고 보이콧 운운하는 건 안타깝다. 오히려 '해무' 제작자 봉준호 감독은 릴레이 단식에 동참했고, 비중 있게 출연한 배우 문성근은 단식장에서 하루를 같이 보내지 않았나.

선의에는 관심 없고, 악의에는 민감하다.

빛을 그리고 싶을 때는 어둠을 그리는 법이다. 어둠을 짙게 그리면 그릴수록 빛이 떠오른다. 만듦새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해무'는 올 여름 한국 영화 중 가장 어둠을 짙게 그렸다. 영화의 어둠에 잠식되더라도 그래서 빛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해무'에 돌을 던지는 사람과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닮았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미국 루게릭병 협회가 환자들을 돕기 위해 고안한 모금운동이다. 상대에게 지목 받은 인물이 24시간 내에 얼음물 샤워를 한 영상을 SNS에 올리면 통과, 그렇지 않으면 100달러를 기부해야 하는 룰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루게릭병 환우를 위해 설립된 희망승일재단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전 코치가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모이는 기부금은 한국 루게릭 요양병원의 건립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쓰고도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한국에 상륙한 뒤 많은 유명인들이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루게릭 환우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낄낄 대는 놀이로 이어진다며 질타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 중 세월호 특별법에도 그런 관심을 가지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많다. 안타깝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하기까지 루게릭병에 그렇게 관심은 가졌나. 얼음 함부로 차지마라. 얼음만큼 다른 사람을 시원하고 즐겁게 해줬나.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노란리본과 루게릭 환우를 기억하자는 아이스버킷은 본질이 다르지 않다.

엄숙은 때론 침묵을 강요한다. 정치적인 색깔이 짙은 엄숙을 강요하면 어느 순간 사람에 대한 연민을 잃게 된다. 아이 잃은 아비에 돌을 던지는 사람과 엄숙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 잃은 아비가 쫓는 본질은 사라져 간다.

어떤 영화를 보든 취향의 문제다. 취향은 계급에서 비롯된다. 가진 것과 보고 들은 것, 배우고 생각하는 것들로 취향이 완성된다. '해무'를 선택하든 말든, 취향의 문제며, 계급의 문제다. 누가 출연했다고 '해무'를 보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취향의 문제다. 영화로 애국을 하든, 영화로 정의를 외치든, 취향의 문제다. 그 취향을 탓할 수는 없다. 탓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렇다고 그 취향이 옳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렇기엔 그 희생양이 너무 엉뚱하다. 갈 곳 없는 분노가 엉뚱한 희생양을 찾았다. 씁쓸한, 너무나 씁쓸한 2014년 대한민국 늦여름의 한 풍경이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