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사나이' 폐지요구가 답인가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08.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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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10일 방송한 MBC '일밤-진짜사나이' 화면 캡처


"교관은 동료를 혼자 살려고 도망갔다는 걸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 같은데 지금 헨리에게는 누굴 버린다는 개념보다 그 친구가 겪었을 두려움 공포, 그걸 경험한 것만으로도 일단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함께라는 건 그 다음에 설명해도 된다고. 아직 정신도 못 차린 친구에게 동료를 버리고 혼자 살려고 한 배신자라는 압박감은 주고 싶지 않았다."('진짜 사나이'의 박건형)

선임병들의 무자비한 가혹행위로 숨진 28사단 윤일병 사망 사건의 충격은 쉬 가시지 않고 있다. MBC 일요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사나이'는 혹독하게 얻어맞았다.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끓은 것이다.


느닷없는 일은 아니었다. 지난 6월 발생한 22사단 GOP총기난사 사건 당시에도 '진짜 사나이'를 더 못 보겠다는 이들의 폐지 요구가 있었다.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을 근간으로 한다. 군대의 긍정적인 일면만을 그린다는 지적은 그 전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사나이'는 군의 협조가 없다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프로그램이다. 앞으로도 '진짜 사나이'는 군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곤경에 처할 게 틀림없다.

지난 10일 방송한 '진짜 사나이'는 출연진들의 2번째 유격훈련을 담았다. 출연자 헨리는 처음 받는 화생방 훈련을 참다못해 포기하고 훈련장을 뛰쳐나왔다. 교관은 헨리의 동기인 박건형에게 헨리의 훈련 이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수차례 물었다. 박건형은 대답 대신 얼차려를 택했다. 헨리가 '배신'했다고 말하길 거부했다. 동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그의 모습은 TV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는 '진짜사나이'와 실제 군대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군 밖과는 다른 질서와 위계를 지닌 군은 개인의 이탈이나 포기를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책임은 함께 진다. 다른 이들도 함께 얼차려를 받아야 한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막내 헨리가 선임 상병 병장들에게 돌아가며 꾸중을 받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갓 스물을 넘긴 병사들이 고문관 동기를 위해 박건형처럼 대처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일병 사건을 전하는 뉴스와 '진짜 사나이' 속 뭉클한 전우애의 아찔한 간극에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생각해 볼 일이다. 또 하나의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진짜 사나이' 내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으면 모를까, 프로그램을 없애라는 건 억지다. 그렇다고 '진짜 사나이'에게 부대 내 불화나 가혹행위를 반영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군의 적극적 협조를 받아 제작되는 '진짜 사나이'가 그럴 수가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된다.

'진짜 사나이'는 국방부 홍보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군의 긍정적인 일면을 반영하는 데 충실해 왔다. 그 속에 등장하는 유쾌하면서도 효율적인, 전우애와 조국애로 가득한 부대는 군의 '이상'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비록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그것이 실재가 되어 전파를 탄다는 자체가 의미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라진 요즘 군대'를 매주 지켜보며 구타나 욕설 같은 가혹행위가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군 내부와 군 바깥이 공유하게 된 것이야말로 '진짜 사나이'의 진정한 성과가 아닐까.

'진짜 사나이'를 들여다보면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최신무기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대보다 먼저 사람이 보인다. 어깨가 빠지도록 줄을 당기고, 눈물 쏙 빠지는 훈련을 받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맛있게 짬밥을 먹고, 엄마 생각에 눈물짓는 사나이들이 거기에 있다. 군대에 아들 보낸 부모나 애인 보낸 '곰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청년들이다.

아른아른한 '진짜 사나이' 속 청년들의 얼굴들 때문에 그 비극이 더 끔찍하게 다가온다. 어제도 '진짜 사나이'를 보며 '부대가 저렇기만 하다면 윤 일병 사건은 없었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감상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진짜 사나이'를 그만 보고픈 이들도 그 심정만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는다.

윤일병 사망 사건이 군대의 전부가 아니듯, '진짜 사나이'가 군대의 전부일 리 없다. 실제의 군대는 그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불편하니 눈 앞에서 없애자는 건 다른 형태의 폭력이며 외면이고 은폐다. 어떤 극단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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