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넘어졌다가 일어나 제3의 전성기 활짝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8.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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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사진=이동훈 기자


최민식은 애 같다. 한국나이로 쉰셋. 그래도 그는 여전히 아이 같다. 아이 같은 성정으로 앞 뒤 재지 않고 부딪히고, 앞 뒤 재지 않고 뛰어든다. 그만큼 순수하고, 그만큼 지독하다. 아이처럼 연기를 탐하고, 아이처럼 욱하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그의 연기를 향한 동심은 그래서 강렬하다.


최민식이 2014년 한국 영화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그가 이순신 장군으로 출연한 '명량'이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모조리 갈아엎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3년이 송강호의 해였다면, 2014년은 최민식의 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제3의 전성기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지 꼭 4년만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전설 중 한 명이었던 최민식은 1990년 TV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꾸숑'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엄청난 인기였다. 그러나 이후 작품에선 '꾸숑'만큼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서울의 달'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나 싶더니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로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영화 '넘버3'를 찍은 건 그 즈음이었다. 그랬던 최민식은 1999년 '쉬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민식은 '해피엔드' '파이란' '취화선' '올드보이' 등으로 한국영화 대표 얼굴로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최민식은 흥행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잠시. 최민식은 고액 출연료 파문과 대부 광고CF,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 등으로 5년여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기활동을 중단해야했다.

최민식이 고액 출연료 파문 당시 기자회견을 자처했던 때 일이다. 최민식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고액출연료 기사를 쓴 기자를 지명하며 "정말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냐"며 돌직구를 던졌다. 앞뒤를 계산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반대 투쟁 당시 숱한 말들이 쏟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앞에 선 사람은 선 사람대로, 뒤에 있는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대로, 현실과 순수 사이에서 날선 말들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순수의 한 가운데 있던 최민식은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10년 '악마를 보았다'로 상업영화에 복귀할 때까지 내상을 달래야 했다. 충무로에는 최민식이 미운털이 박혀 그가 출연한다고 하면 투자가 안 된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았었다.

최민식이야 그의 표현대로 "샷다를 올린 건 2007년 연극 '필로우맨'이었다"고 하지만 2009년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처럼 그는 고독했다.

최민식은 "다 팔자려니 한다. 내 이름이 높을 최에 산이름 민, 심을 식이다. 이름에 산이 다 들어있다. 산이란 게 올라가면 내려가고 굽이굽이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악마를 보았다'를 하면서 최민식은 박훈정 작가를 무척 아꼈다. 박훈정 작가는 감독으로 '혈투'를 내놓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가 '신세계'를 준비할 때 쉽지 않았다. 최민식은 박훈정 감독이 '신세계'를 찍는다고 했을 때 선뜻 출연을 결심했을 뿐 아니라 이정재 섭외까지 공을 들였다. 약삭빠른 사람이라면 발을 뺐을 법도 했건만 최민식은 오히려 배우들을 독려했다.

'신세계'와 '범죄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사람들은 최민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를 믿기 시작했다. 관객이 믿고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난 게 '명량'이었다.

'명량'을 찍기 전 최민식에게 물었다. 이순신 장군 잘해야 본전 아니냐고. 최민식은 "왠지 운명 같다"고 했다. 최민식은 "'명랑' 속 이순신 장군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남자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남자, '히말라야' 최민식이 떠올라 애잔했다. 그가 '명량'을 찍기 전 씻김굿을 제안하고 울면서 굿에 참여했던 건 그만큼 외로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연기를 대하는 그의 순수한 동심과 어울리기도 했다.

최민식은 말했다. "인기라는 것에, 세상살이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자연인 최민식은 홀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고."

그는 또 말했다. "나도 목표에 중독된 놈이다. 불태울 수 있는 작품을 하면 유달리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래 걸리기도 하고."

최민식은 '명량'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한다. 김한민 감독이 영화를 이순신 장군으로 휘몰아친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민식이었기에 가능했다. 최민식과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 나이는 같다. 쉰셋. 굴곡을 넘어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 남자, 고독한 남자, 순수한 남자가 적어도 영화 속에선 같은 꿈을 그렸으리라.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때 그에게 돌을 던졌던 사람들은 이제 앞 다퉈 그를 칭송한다.

뤽 베송 감독의 '루시'로 할리우드까지 두드린 이 남자, 최민식. 제3의 전성기를 넘어 제4의 전성기까지 이어갈지, 이래저래 팬으로서 두근거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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