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설리·링링..이석훈 감독이 말하는 '해적'(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4.07.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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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이석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방과 후 옥상', '두 얼굴의 여친', '댄싱퀸'까지, 이석훈 감독(42)의 영화들은 언제나 유쾌하다. 지금까지 마음 따뜻해지는 코미디로 관객을 만났던 그가 올 여름에는 135억 원이 투입된 대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내놓는다. 물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유머는 여전하다.

언론시사회 이후에도 CG의 디테일을 손봤다는 이석훈 감독은 여전히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드는 사람의 욕심이야 어디 끝이 있으랴. 그럼에도 이석훈 감독은 적절히 타협할 줄 알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고를 이끌어내는 감각 있는 감독이다.


"CG가 많이 들어간 영화들은 아마 다들 저희 같을 거예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일반시사 때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해서 한시름 놨죠. 혹시 고래에 대해 관객들이 몰입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당일 날 시사회에 가신 분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CG가 많은 장면은 '저건 CG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무너지는 건데 무리 없이 보시는 것 같아요."

'해적'은 캐스팅이 상당히 신선하다. 청순의 대명사 손예진이 거친 바다를 휘어잡는 해적의 여두목 여월로 분했고, 정극 이미지가 강했던 김남길이 허당기 있는 산적단의 장사정 역을 맡았다.

"이미지 반전을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네요. 일단 여월 역은 할 수 있는 배우가 별로 없었어요. 처음부터 예진씨 외에 다른 분들은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죠. 남길 씨는 본인의 의지가 강했어요. 이미 내부적으로는 결정이 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같이 KBS 2TV '상어'에 출연하게 되어서 혹시 둘 중 한 명이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둘 다 무사히 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아이돌가수인 설리가 캐스팅 된 것도 놀라웠다. 여월의 오른팔이자 해적단의 막내인 흑묘 역의 설리는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석훈 감독도 처음에는 아이돌 캐스팅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함께 작업하며 그런 우려는 자연히 사라졌다.

"설리의 캐스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어요. 저는 처음에 해적단에서도 라미란씨처럼 재미를 줄 수 있는 분을 캐스팅하고 싶었죠. 결국 제가 설득 당했어요. 비중이 크지 않다보니 설리를 캐스팅할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오히려 설리 측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솔직히 얘기했죠. 예쁜 캐릭터도 아니고, 배우들이 많아서 스케줄을 맞춰줄 수도 없다고요. 그래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남자같이 나와도 괜찮다고요. 스태프들이 정말 좋아했어요(웃음). 그 기대를 저버리기도 힘들고, 현장에서 동기부여가 되는 배우가 하는 것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같이 하기로 했죠. 평가는 관객들이 하시겠지만 겸손하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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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이석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앞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이석훈 감독의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해적'이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제작비 규모 자체가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가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이석훈 감독은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그 말로 물의를 일으켰었는데 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근거 없는 자신감일 수도 있고, 저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요. 사실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캐리비안의 해적'을 재미없게 봤기 때문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의무감에 보게 되더라고요. 분명 미덕이 있고 훌륭한 영화지만요."

"저희가 자신있어하는 부분은 '해적'은 우리나라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우리말로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코미디가 훨씬 더 많이 와 닿을 것이라는 지점이에요. 사실 요즘 관객들은 정확하고 냉정해요. 10년 전만해도 할리우드 영화보다 좀 떨어져도 좋아해주셨다면 지금은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고 있죠. 그럼에도 믿을 구석은 있다고봐요. 막대한 제작비가 채울 수 없는 저희만의 아기자기한 창작물들이 분명히 있고, 할리우드의 스케일을 따라잡기 위한 장면도 있고요."

'해적'의 볼거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벽란도에서 벌이는 추격전이다. 전체 촬영 회차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가장 공들인 만큼 가장 많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이석훈 감독은 벽란도 시퀀스가 영화사에 좋은 사례로 남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공들이 장면이 가장 아쉬워요. 벽란도 장면이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라고 자부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 상업영화사에서 그렇게 복잡한 합성을 시도한 추격신은 드물다고 생각해요. 그 시도가 좋게 평가 받았으면 좋겠고, 우리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가능하다는 사례가 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안 좋은 점은 비판을 받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죠."

벽란도 장면에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바로 '미스터 고'의 주인공인 고릴라 링링. '미스터 고'의 CG를 담당한 덱스터 스튜디오가 '해적'의 그래픽 작업을 맡으며 링링의 출연도 성사됐다.

"벽란도 신의 고릴라는 링링 맞아요. 시사회 때는 엔딩크레딧에 이름도 올렸었는데 정식 개봉 버전에서는 빠졌어요. 제가 먼저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는데 한 번만 쓰긴 아쉽지 않냐고 얘기를 꺼냈는데 흔쾌히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요. 보지 못한 동물들이 있는 걸로 이국적인 벽란도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 장면에 코끼리도 있고, 기린도 있는데 잘 못 보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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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이석훈 감독/사진=임성균 기자


'해적'은 고래에서 시작해 고래로 끝나는 영화다. 고래가 국새를 삼켰다는 재기 발랄한 상상으로 출발한 만큼 영화 속 고래의 비주얼과 의미도 중요했다. 시나리오에서는 감동 코드가 더 컸던 것을 일부러 조금 더 담백하게 조절했다.

"엎치락뒤치락 다이내믹한 장면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감성적으로 흐르는 것이 맞는가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흐름이 끊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는 그대로 탄력을 받아서 가되, 최대한 찡하도록 만들어보겠습니다'하고 설득했죠."

올 여름 대작 경쟁의 한가운데에서 '해적'이 개봉한다. 혹여나 자신감이 사라질까봐 경쟁작인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해무' 모두 보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은 감독에게 부담이긴 하지만, 상반기 주춤했던 한국영화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왜 저에게는 항상 이런 일이 생기는지...대학을 갈 때도, 군대에 갈 때도 사람이 많아서 문제였어요. 경쟁이 치열한 시대를 살고 있네요. 새옹지마라고 할까요. 이번 여름을 계기로 분위기가 확 전환되면 좋겠어요. 올 여름 관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작년 기록을 깬다던지. 상반기에 국가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 힘든 마음을 영화로 위로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바다에 이어 이번에는 산이다. 이석훈 감독은 올 하반기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를 담은 '히말라야' 촬영 준비에 들어간다. 도전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이왕 모험을 한다면 어려운 길을 택한다는 이석훈 감독. 조곤조곤한 말투 뒤에 숨은 강단이 느껴졌다.

"'히말라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상당히 부담스럽긴 해요. 영화적인 재미도 있어야 하고, 억지스럽지 않은 감동도 있어야 하고, 산악 장면은 아슬아슬하게, 위기감이 넘치게 만들어야하니까요. 끊임없이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사실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커요. 사실 어떤 영화도 모험이죠. 어차피 모험을 하는 것이라면 어려운 쪽으로 가자는 마음은 있어요. 궁금하고, 배워보고 싶은 길을 가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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