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김한민 감독 "영웅-인간 이순신 사이의 줄타기"(인터뷰)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07.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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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김한민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거북선도 없이 고작 12척의 배로 기세등등한 왜군 함선 330척에 맞서야 한다는 두려움이 전장을 휘감는 전반부, 그리고 이순신의 맹활약 속에 조선 수군이 기적과도 같은 전투를 벌이는 후반부. 역사가 스포일러인지라, 그 전투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회오리치는 바다를 뚝심있게 헤쳐 가는 이순신의 대장선처럼 '명량'은 우직하고도 힘 있게 전진 또 전진한다.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익히 확인했던 감독의 묵직한 연출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러나 이론 없는 민족의 영웅, 성자에게나 붙일 법한 '성웅'(聖雄)이란 수식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인물 이순신을 영화화하는 것은 그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러나 김한민 감독에게는 최민식이란 든든한 명배우가 있었고, 동시에 확실한 승부수가 있었던 것 같다. 감독은 명량이라는 전장을 내내 지배했던 두려움을 화두 삼아 이순신의 영웅적 풍모, 인간적 면모를 조명했다. '명량'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었던, 그 아슬아슬하고도 절묘한 줄타기의 결과물이다.


-해상 전투신이 영화의 절반을 차지한다. 모험이었을 텐데.

▶전투신이 영화의 절반이 될 줄은 몰랐다. 관객이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영화의 타격이 된다고 봤다. 그래서 전투의 구성이 더 중요했다.

-해전이 길다고는 하지만 챕터별로 나눠진 느낌이 든다.


▶명량해전이 벌어진 음력 9월 15일 '난중일기'를 기준으로 했다.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12척 대 330척이 아니라 1척 때 330척의 싸움이었고, 포격전에서 시작해 백병전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에서 장군의 모습이 극적으로 표현되면서 장졸과 백성이 힘을 얻고, 또 마지막은 바뀐 물살을 이용해서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죽 이어져 전투 구성에 어려움은 없었다. 어떻게 묘사하고 드러낼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됐다. 논리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해 배치했는데 그러다보니 61분이 됐다.

-이순신 한 명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야기가 집중돼 있다.

▶거기에 실패하면 이 영화는 실패한다고 봤다. 해전이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개인 내면의 싸움을 보여줘야 했다. 압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로 임무를 수행해가는 모습을 표현해야 해전 역시 힘을 받는다고 봤다. 그런 지점에서 가장 내공있는,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그 역할을 맡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후보는 없었나.

▶거의 없었다. 유일무이한 강력한 후보였달까. 시나리오도 없는 단계에서 먼저 만났다.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일단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서로의 관심이 있었고, 연락한 다음 날 당장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그게 서로 이순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까. 그렇게 지금에 왔고 최민식표 이순신 캐릭터가 탄생한 거다.

-실제로 최민식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화 끝나면 '장군' 이렇게 부르고 싶어진다.

▶그 분의 연기적 특징이 인물에 빙의되는 것 같다. 철두철미하게 몰입해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현장에서는 서로가 바빠 흔히 생각하는 신경전은 없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도 그리운 작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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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김한민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작품의 태도나 만드는 사람들이나 모두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이 있었던 것 같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영화에 임했던 것 같다. 그래야만 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들어가기 전에 충무공 장군과 당시 희생자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냈다. 고사를 3번 지냈는데, 진도 무형문화제가 오셔서 씻김굿도 했다. 고흥에서 거북선 앞에서 또 제시를 지내기도 했고. 그래서 큰 사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날씨 도움도 많이 받았다.

-사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담는다는 데 대해 우려도 했다.

▶선을 지키는 게 힘들다. 흠결 없는 사람인데 인간적인 면모를 그린다는 게. 성웅이라고 너무 계몽적으로 그리면 너무 지루할 것 같고,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파헤치면 답답할 수 있고. 그 밸런스를 잘 잡아야 했다. 거기서 나와 배우 최민식의 좋은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다. 초반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잡아갔다. 최민식이란 배우가 감독의 결정이나 생각을 굉장히 경청하고 존중한다. 젊은 배우들보다 오히려 더.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위인으로 그리면 재미가 없을 테고, 망가뜨리면 사람들이 싫어할 텐데 그 균형을 어떻게 잡았나.

▶영웅으로만 그리면 뻔하고, 벗어나면 욕을 먹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이순신 정신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거였다. 그것이 두려움의 극복이었고,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화두였다. 실제로 명량해전은 그 자체가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해전 자체가 수행되기 어려울 만큼 두려움이 지배적이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근간에 이순신의 생사관이 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는 생사관이 중요한 전제다. 그걸 화두로 잡고 해상 전투까지 어어진다. 해상전투를 전투를 위한 전투가 아닌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녹아있도록 표현하고자 했다.

-원래 제목은 '명량:회오리바다'였는데 그냥 '명량'으로 줄였다. 소용돌이치는 바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명량이라는 해전이 결국 중심이니까, 부제를 줄여서 타이틀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바다는 실제 울둘목(진도와 육지 사이 해협)에서 촬영한 소스가 바탕이다. 3D 이펙트를 합성해서 더 실감나게 보이게는 했지만 실제 바다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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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김한민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배경이 된 장소 때문에 지난 4월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 때문에 위축됐을 법도 하다.

▶세월호 이야기가 나올 줄 예상했다. 안타깝고 불편하지만 그 이야기를 굳이 피해가고 싶지는 않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마음고생을 하긴 했다. 자칫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고, 주위에서도 우려가 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우리 영화가 패닉에 빠지는 대한민국에 힘과 용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힘과 용기가 되고 싶다. 감히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다시 재조명되어야 할 시기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이 심한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통합의 아이콘이 등장해야 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긍심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인물을 통해 대외적으로도 보다 떳떳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순신 붐이 불었으면 좋겠다.

-극중 이순신 장군이 '불통'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소통을 할 때는 화끈하게 하지만 끌고 나갈 때는 또한 확실히 끌고 나가는 게 리더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중재자나 협상자는 아니니까. 더욱이 명량의 시점에서는 강력하게 끌고가는 리더가 필요했다. 한 작품과 한 상황에서 다양한 리더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 않겠나. 다음 한산도 대첩에서는 골칫덩이 원균과 함께하는 등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통합의 리더십이 보인다.

-지난 '최종병기 활' 당시 3부작 역사물을 하고 싶다며 2번째 작품으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김한민 3부작'보다도 명량, 한산도,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3부작'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맞다. '김한민 3부작'이 아니라 '이순신 3부작'으로 가길 희망한다. 실제로 계획도 있다. 인연이 되면 지금 배우, 스태프와 같이 갈 수도 있고. '명량'에서 적잖이 쌓인 노하우가 있는데 그것이 사장되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업그레이드된 해전의 모습이 연이어 나오는 게 수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산도 해전의 학익진이야 유명하고, 노량 해전은 밤 해전이고 명나라 함대가 대거 참여하는 등 매 해전이 다 특징이 있다.

-1주 차이로 '군도:민란의 시대', '해적:바다로 간 산적' 등 쟁쟁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앞뒤로 맞붙었다. 부담은 없나.

▶내 영화 완성도 높이는 데 급급해 별 생각이 없었다. 다 쟁쟁한 감독들이고 멋진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관심과 기대가 더 고조되지 않나 싶다.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이지 않나. 부담은 없다.

이번 '명량'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하늘의 뜻을 기다릴 밖에. 특히나 이번 영화는 이미 의미와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명량이 관심을 얻고, 광화문 앞에서 딱딱하게 화석화된 인물에 대한 붐이 일 징조가 보인다. 벌써 그 의미를 많이 달성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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