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최민식, 이순신이란 '완벽'을 향하여(인터뷰)

영화 '명량'의 이순신, 배우 최민식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07.24 11:15
  • 글자크기조절
image
영화 '명량'의 배우 최민식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앗, 카스텔라다."

사진 촬영을 먼저 마치고 돌아와선 접시에 놓인 카스텔라를 본 최민식(52)이 반색했다. 그는 포크로 슥 슥 잘라 낸 카스텔라를 커피에 적시며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고 웃었다.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을 보고서 만난 최민식에게 '장군님' 소리가 절로 났던 차에, 그의 얼굴은 중년의 대배우와 어린아이를 순식간에 오갔다.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라던 영화 속 그의 대사가 떠올랐다.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삼청동 카페의 최민식과 모든 것을 던졌던 전투를 마무리한 영화 속 영웅 이순신이 묘하게 겹쳐졌다.


그는 신작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됐다. 그리고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무찌른 신화적 전투를 그렸다. '쉬리', '해피엔드', '파이란', '취화선',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와 '신세계'. 수많은 작품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해 온 그에게도 이순신은 벅찬 이름이었다. "이젠 농담도 한다"며 피식 웃던 최민식의 장난기는 그 이름 석 자를 입에 올리는 순간 증발했다. 스크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신뢰받는 배우는 인터뷰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되뇌곤 했다. 그 이유란 모두 이순신 그 자체 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 듯 했다. 극존칭을 거두지 않는 최민식의 말 하나하나에는 직접 연기한 인물에 대한 내 존경을 넘은 경건함, 그리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최민식이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서 조선의 천재 화가 장승업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예의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 때는 상상할 수가 있어서 좋았어요. 상상력은 연기하는 배우의 기본적인 자산이에요. 아무리 팩트를 근거로 하고 실존 인물을 다룬다 해도 그 시절을 우리가 안 살았는데 당연히 재해석이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건 재해석을 할 수가 없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나름 책도 읽고 이것 저것 뒤져봤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나, 후세가 영웅을 만들려고 약간 과장하지 않았나, 의구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에요."


image
영화 '명량'의 배우 최민식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그러던 최민식을 사로잡은 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일기 '난중일기'였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간결하고 솔직한 글 속에서 그는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는 충무공의 감정과 담담한 일상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찬양 일색인 어떤 기록들보다 '난중일기'에 묘사된 인간적 면모가 더 와 닿았다"고 최민식은 말했다.

"술 드셨다는 이야기도 엄청 나와요. 참 약주를 좋아하셨구나. 그것도 마음에도 들고.(웃음) DNA부터 슈퍼맨으로 태어나 해낸 게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그런 번민과 괴로움을 모두 느꼈으면서도 그걸 이겨냈다는 게 너무 대단한 거예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그 미칠 것 같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했을까. 대장선에 어머니를 가져다놓은 건 제 의견이었어요. 어머니 임종을 못 지켜 목 놓아 울었다는 대목이 있어요. 만약 그 분이 혼자 넋두리를 한다면 어머니에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죠. 만약 그런 걸 다 표현하려고 했으면 족히 3시간은 넘었을 거예요."

오원 장승업을 연기할 당시를 두고 최민식은 "좀 건방지지만, 나랑 좀 통하는 게 있네" 했다고 털어놨다. '어차피 그 시절 나도 안 살았고 보는 이들도 안 살았다' 싶었고, '술 좋아하고 자유로운 예술 하는 사람인데'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등을 향해 외치는 심정이었다. 답이 없었지만 그럴수록 집요하게 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내내 벽에 부딪혔다.

"그 분이 뒤돌아 앉아 있는데 문 밖에서 '진짜 죄송한데, 저한테 딱 10분만 이야기 좀 해 주세요'하고 애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저리 가라 이놈아' 이런 것도 없이 아예 '개무시'를 당하는 것 같은 막막함이 있었어요. 어차피 대중들도 이순신 장군을 못 봤고 어차피 내가 연기를 하는 건데, 내가 나를 못 믿겠는 거예요. 그 완벽함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그 완벽함을 진짜처럼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한계 있죠, 정말 하고 싶은데 안 되는 한계에 부딪쳤어요.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있을 한계일 텐데, 왜 그게 그렇게 답답하고 미치도록 괴로웠는지. 내가 왜 그렇게 허황된 욕심을, 강박을 품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대중의 평가도 무섭죠. '잘못 만들기만 해봐' 하는 시선도요. 그거 신경 안 썼다면 거짓말이지만, 알아갈수록 욕심이 생겼어요. 도저히 불가능한 표현에 대한 욕심, 강박, 집착. 이런 딜레마를 경험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런 집요함의 결과일까. '명량'은 곧 이순신의 영화요, 최민식의 영화로 태어났다. 최민식의 이순신은 영화 내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무게를 영화 내내 지고 극을 이끈다.

image
영화 '명량'의 배우 최민식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최민식은 '명량'을 마치고 프랑스 뤽 베송 감독, 미국 스타 스칼렛 요한슨 등과 호흡을 맞춰 할리우드 액션물 '루시'를 찍었다. '명량'과는 전혀 다른 비열한 폭력조직 두목 역할이지만, 공개된 짧은 영상에서도 그의 독보적인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야전 같던 현장을 마치고 건너 간 할리우드의 현장은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꿈나라" 같았다. 세트장 안 대기실은 스위트룸 같았고, 냉장고엔 먹을 것이 잔뜩 들어있었다.

"피곤하면 자라고 침대도 있는데 못 눕겠는 거예요.(웃음) 스칼렛 요한슨이 배가 고파서 음식을 주문하면 레스토랑에서 꽃병까지 세팅된 풀 식사가 나와요. 나도 한 번 시켜 먹어볼까 하다가도 습관이 그리 안 돼서.(웃음) '명량' 찍다가 그리로 가니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그 곳에는 없는 우리 영화 현장의 강점에 대해 물었다.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최민식이 내놓은 답은 "파이팅"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어김없이 다시 '명량'을, 이순신 장군을 향해 되돌아갔다.

"이런 희생, 헌신이 있을까요. 외국도 물론 프로페셔널한 사람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받은 만큼만 딱 해요. 식사시간 되면 찍던 것도 딱 내려놓고 가요. 우리는 안 그러잖아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아무리 외형적인 게 좋아도 우리 영화인 파이팅은 정말 '너희 미친 거 아니야' 할 정도예요…. 감독이 오케이를 해도 제가 찝찝하고 만족해하지 못하고 불안 불안해하며 갈수록 헷갈리는 상황에서, 그나마 위안을 받았던 건 모두 동료들 덕이었어요. 그 주위에서 활 쏘고 대포 쏘며 뛰고 싸우던 그 친구들. 다 돌아 있어요. 흰자가 막 보이고. 그 몰입감 있잖아요. 뛰어와서 대사를 하는 그 눈을 보면 막 찌릿찌릿해요. 후배들이지만 대견하고, 나는 나대로 쪽팔리게 티 안 내려고 꿋꿋한 척을 하고. 그 친구들이 많이 의지가 됐어요. 그 스태프와 배우, 이 사람들이 진짜 명량해전을 치렸어요. 부족하더라도 그 친구들의 투혼, 그건 통할 거라고 생각해요."
기자 프로필
김현록 | roky@mtstarnews.com 트위터

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