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과 '원칙'이 뭐기에? 씁쓸한 MBC 예능 재개

[기자수첩]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04.2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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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9일이 지난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올림픽기념관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족들의 피해와 고통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음악과 코미디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은 당분간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방송을 통해 꾸준하게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갈 것."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맞는 2번째 주말, 일부 예능의 방송 재개 소식을 알린 MBC의 공식 입장이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시작했으니 예능도 언젠가 방송을 재개하는 게 수순이었다. 그러나 지금이라야 했을까.


방송사들은 국가적 재난이나 다름없는 대형 사고를 맞아 지난 16일 사고 이후 가요, 코미디 등 예능 프로그램의 정규 방송을 전면 중단하다시피 했다.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의 아픔에 함께한다는 의미에서다. 방송을 두고 처음 여론의 '간을 본' 건 KBS였다. 3사 주말 예능이 모두 결방한 지난 주말, KBS는 일요일 간판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나홀로 방송을 계획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부랴부랴 결방을 결정했다. 몸을 잔뜩 움츠린 방송사들은 이후 내내 눈치싸움을 벌였다.

침몰 사고 이후 2번째 주말까지는 예능 프로그램이 재개하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MBC가 나섰다. "주말 예능 결방"이란 표현에 유독 "결정된 것 없다"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MBC는 아니나 다를까, 금요일인 25일 오후 3시가 다 돼서야 당일 예능프로그램을 방송키로 했다고 공지했다.

당장 이날 밤부터 "가족 예능 프로그램"인 위주 일부 예능을 재개한다며 '사남일녀', '나 혼자 산다'가 방송하고, '세바퀴', '일밤-아빠 어디가 스페셜'을 방송키로 했다. 가수 섭외도 이뤄지지 않아 일찌감치 결방이 예상됐던 가요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길의 하차로 사실상 정상 방송이 불가능했던 '무한도전', 가운데 낀 '우리 결혼 했어요'의 결방 소식도 이날에야 함께 알렸다. 대신 프로야구 중계가 전파를 탄다.


KBS 2TV가 '불후의 명곡',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와 '1박2일' 등 주요 주말 예능을 모두 결방하고 SBS 역시 '붕어빵', '스타킹',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등을 모두 내보내지 않기로 한 것과 대조적이다. 연예오락채널을 표방하는 케이블 채널 tvN조차 여타 프로그램을 모두 결방하고 MBC의 발표가 나온 뒤에야 '꽃보다 할배'의 방송 방침을 밝힌 상태다.

물론 방송국마다 사정은 있다. 사고 이후 열흘 가까이가 지났으니 조금씩 예능을 재개해도 되지 않겠냐는 게 나름의 판단이고, 방송사 주요 밥줄이나 다름없는 광고가 장기간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는 게 속내다.

또 다른 속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선 PD들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MBC가 내세운 '기본'과 '원칙'은 그게 무엇인지 몇 번을 곱씹어도 아리송하다. 한 예능국 관계자는 "윗선에서 '웃음기를 좀 뺀 쪽으로 편집하고 방송하면 안되겠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토로했다. 같은 예능이라도 더 웃긴 예능은 안 되고, 덜 웃긴 예능은 된다는 것인가. 다른 예능은 안 돼도 '가족' 예능 프로그램은 괜찮다는 것인가. 가상 부부가 등장하는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족 예능이 아니고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등장하는 '나 혼자 산다'는 가족 예능인 것인가. 대체 '기본'과 '원칙'은 무엇인가.

꽃 같은 청춘들이 수백씩 수장된 기막힌 참사는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 미안해질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사망자가 하나 늘어나면 실종자가 하나 줄어드는 처연함 속에서도 잠수사들의 목숨 건 실종자 구조는 계속되고 있고,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 합동 분향소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슬픔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전 국민이 손을 놓고 슬퍼하다 분노하길 반복할 수도 없는 일이다. 2010년 천안함의 비극 당시 4~5주간 예능을 전면 결방한 일을 굳이 적용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국은 책임과 위상에 걸맞게 시청자 여론과 정서를 살폈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세월호 침몰은 희생자 개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TV 예능을 보며 터지는 웃음이 이 기막힌 비극에 대한 진정한 위로가 될 리 없다. 대체 MBC는 무엇이 그리 다급했을까. 아직 열흘도 지나지 않았다. 이 잔혹한 4월이라도, 아니 임시 합동분향소가 운영되는 28일까지 만이라도 조금만 더 참아줄 순 없었던 것일까.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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