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22)

이광수 / 입력 : 2014.04.0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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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덴차-1 /사진제공=메타뮤직사운드
처음 앰프를 만들 때 나무판 위에다 러그와 소켓을 얹혀 배선을 하고, 부속을 달아 얼기설기하게 앰프를 만들었었다. 투박한 송판위에 아무것도 덮거나 씌우지 않은 채 다 보이는 상태로 만들어서 소리를 내어서 들었는데, 우선 소리를 내는 재미에 만들어 들었지만 우습기가 짝이 없었다. 5672를 거쳐 3s4도 그렇게 만들었는데, 여기에 스피커와 배터리까지 달려 있어 매우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나무 상자를 만들어 이것을 다 넣기로 생각하고 상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피커 소리가 잘 나오게 구멍을 내어 천으로 붙여 스피커를 달고, 광석 검파 수신기와 배터리도 넣고, 앞면에는 똑딱이 스위치와 바리콘 그리고 볼륨이 나온 목재 케이스의 라디오를 완성시켰다.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든 라디오였다. 그리고 소리를 들었는데 스피커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무리 들여다보고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철 섀시를 쓰지 않고 부도체인 나무를 사용해 실드가 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인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인클로저의 영향으로 안에 들어간 스피커가 저역을 더 부스트된 현상이 겹쳐서 웅 하는 소리가 발생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증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공들여 만든 나무 상자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저러나 앰프를 다시 만드는 일이 큰 문제가 되었다. 섀시를 만들어 본 적이 한번도 없어 어디 가서 새시를 만들어야 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정말 좋은 섀시감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도 먼 데가 아닌 집에서 말이다. 동생이 가방에 넣으려고 하는 필통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아 저것을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걱정이 일거에 해결이 되었다. 그때도 모양이 예쁜 플라스틱 필통이 있기도 했지만 깡통을 잘라서 접어 만든 필통을 아직까지 쓰고 있던 시절이었다. 금형으로 찍어낸 것이 아니라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필통이다.

나는 즉시 필통을 사 가지고 앰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필통은 크기도 적당해서 볼륨과 1u5와 3s4 그리고 출력 트랜스를 다 장치하고도 여유가 있어 앰프 섀시로 정말 제격이었다. 그리고 위 뚜껑과 밑 뚜껑을 꽉 닫아 맞추면 이보다 더 좋은 섀시가 세상에 없었다. 필통 위 뚜껑에 구멍을 내서 볼륨과 소켓을 달고 출력 트랜스를 얹혀 고정시켰다. 그리고 배선을 하고 부품을 달아 2일 만에 다 완성시켰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것은 이 앰프를 만든 시기가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고데를 달궈 가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앰프를 만들었던 생각이 난다. 또 생각이 나는 것은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모두 깡통으로 만든 필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로 책을 싸 가지고 다녔다. 학교를 오갈 때면 책을 싼 책보자기를 뒤 허리에 두르고 보자기 끝을 배에 매고 뛰며 장난하며 다녔는데, 필통 속에 있는 연필이 마구 뒹굴고 부딪쳐 연필심이 곪아 힘없이 부러져 글씨를 쓰기가 힘들었었다. 또 HB 라고 적혀있는 무궁화 연필도 흐리게 써져서 진하게 쓰려고 연필심을 매번 혀에 갖다 대곤 했었다.

어쨌든 나는 이 필통을 이용해서 잡음이 하나도 없고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훌륭한 앰프를 만들었다. 마그네틱 스피커에서 났던 텁텁하고 맹맹한 소리는 사라지고, 무척 아름다운 음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좋은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좋은 소린지 모르고 그냥 들었던 것 같다.

앰프를 다 만들어 놓고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 신이 나서 들었는데, 며칠만 틀어 놓으면 소리가 점점 작아져 10일도 안 되어 전지가 다 달아버린다. 몇 번은 배터리를 바꿔 가면서 들었지만 그 후에는 그것을 사는 것도 부담스럽고 멀리 가서 사오는 일도 수월치가 않아 다시 광석 라디오를 꺼내어 수화기를 연결하여 듣곤 했다.

내가 이것을 만들 때는 이 기술을 배우기 전이었다. 읍내 큰 도로 옆에 있는 라디오 방을 드나들면서 만들었는데 그 라디오 방에 6V6으로 울리는 은색의 12“ Rola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렇게 좋았었다. 내가 교복을 입고 까만 학생 모자를 쓰고 자주 가서 부속을 사고 하니깐, 전파사 주인이 실체도를 그려주고 조그만 부속 같은 것들은 그냥 주기도 하고 그랬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이 짓만 하다 결국 이 길로 들어서...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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