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양우석 감독 "분노는 쉽다..공감이 어렵지"①(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1.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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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성균 기자


800만명을 넘어 천만고지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화 '변호인'. 영화를 둘러싼 많은 말들의 중심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양우석 감독이 있다. 하지만 양우석 감독은 데뷔 감독인데도 지금까지 무대인사는 할지언정 언론사 인터뷰는 고사해왔다. 말이 말을 낳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양우석 감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양우석 감독에게 이런 것도 물어봐야 할지 싶은 것들부터, 이런 것은 꼭 물어봐야 할 것까지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다. 그는 신중하고 진중하고 차분하게 답했다. 길고 긴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한다.


-포털사이트에도 생년월일이 없던데 간단한 프로필과 가족관계를 소개해 줄 수 있나.

▶1969년 10월 24일 서울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 인큐베이터를 거쳤다. 부모님과 남동생이 있다. 결혼은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다. 고대 철학 영문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교육방송에서 '흑인 오르페우스'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가졌다. 주위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철학과를 갔다. 호기심이 생기면 충족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라 문사철(인문학,역사,철학)을 꿰뚫어 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있었다.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나.


▶아니다. 이미 민주화는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선거만이 혁명이라는 말에 동의했고. 과외를 하다가 가르치는 게 재미있구란 생각도 들고, 더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아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학원 강사 생활을 했다. 영어를 가르쳤다.

-이런 게 왜 궁금한지 잘 모르겠지만, 고향이 전라도인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경북의 피가 흐르고 있다. 부모님이 그쪽 분이시다. 어린 시절에는 천안에서 자랐다.

-학원 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영화쪽으로 들어왔나.

▶영화에 대한 꿈을 잊을 수가 없어서 방송사에 들어갔다. '영화음악실'이란 걸 했었고, 나와서 '쉬리' 직후 강제규 필름에도 있었다. 그러다가 MBC 영화기획실에서 프로듀서 생활을 했다. 당시 영화의 미래는 기술이 아닐까란 생각에 기술에 대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한국 첫 HD영화 '욕망'에 참여했고, 애니메이션 '에그콜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후 주식회사 로보트태권브이에 들어가서 실사판으로 준비하고 있는 'V' 시나리오를 썼었다. 웹툰은 취미였는데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스틸레인'을 하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가 된 계기인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과 남북 핵 위기를 담은 웹툰인 '스틸레인'을 90년대 초반에 기획했다던데.

▶'스틸레인'은 당시 북핵 1차 위기였을 때 착안해서 기획했었다.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5공 청문회 스타였을 때 호기심이 들더라. '춘향전'의 이몽룡을 본 것 같았다. 상고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도 어렵다는 사시에 합격해 5공 당시 위세가 쩌렁쩌렁하던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에서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 같았다. 그러다가 민자당 합당 당시 자기를 정치인으로 끌어준 김영삼 대통령과 결별하는 걸 보고 궁금증이 커졌다. 저 결기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가 된 계기였던 부림사건에 관심이 생겼다. '변호인'을 만들다보니 분노는 쉽더라. 하지만 그 분노를 성찰로 바꾸고 신념으로 변화시켜서 공감을 얻는 건 쉽지 않더라. 그는 그런 삶을 살았다. 대통령으로 정책적인 실패도 많았지만. 영화도 그런 공감을 얻고 싶었다.

-다른 감독들과 달리 데뷔작인데도 왜 인터뷰를 피했나.

▶이 영화는 만들어지기 전부터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문학을 했던 사람으로 인문학을 죽이는 건 문맥을 사라지게 하고 문장만 섞어서 프레임을 만들어 규정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다룬 것도 아닌데 혹시라도 그런 식으로 프레임으로 규정지어지면 오해와 편견을 깨뜨리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말인즉 언론에 신뢰가 적다는 뜻인가.

▶그렇다기보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가르는데 익숙해진 분위기가 있지 않나.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감독보다 관객들은 배우를 만나고 싶어서 극장에 간다고 생각했다.

-원래 시나리오는 썼지만 감독은 다른 사람이 하기로 했었는데.

▶처음 제작사 최재원 대표님이 영화로 만들자고 해서 이걸 영화로 만든다고요?라고 반문했었다. 원래 '변호인'을 웹툰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영화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은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래서 좋은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했다. 그런데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제작이 쉽지 않자 제작자가 차라리 저예산 독립영화라도 만들자면서 직접 연출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약간의 오기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지 못하는 건 항복이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송강호가 출연을 결정하면서 제작에 탄력이 붙었다.

-'변호인' 주인공 이름을 송강호에서 송을, 양우석에게서 우석을 따서 송우석이라고 지었는데.

▶원래는 이름을 우현이라고 지을 생각이었다. 어리석을 우자에 현명한 현자를 써서. 그러다가 그렇지 않아도 오해와 편견이 기다리는데 이름 한자만 바꿔서 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송강호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 영화는 그렇다면 당신은 그 시대에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이니 우리 이름을 넣어서 책임을 지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영화 초반에 송우석 변호사가 천장에 쥐가 떠들자 생선을 집어던지는데.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의도한 것인가.

▶의도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이사를 해야 하니깐 천장에 쥐도 있고 물도 잘 안 나와야 하는 이유를 넣어야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많이 그랬으니깐 당연하게 넣었다.

-'변호인'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 초반 허구라고 시작하는데. 실화와 허구의 경계를 어떻게 갈랐나.

▶미국이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면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허구가 1%만 있어도 이야기가 허구가 되어야 한다. '변호인'을 만들면서 그분의 실존적인 고민은 왜곡하지 말자고 했다. 사실보다 진실에 가깝게 담으려 했고. 대신 주인공과 대립하는 쪽은 다 허구다.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 변호사와 곽도원이 연기한 공안경찰 차동영은 둘 다 신념이 확실한 사람들인데.

▶그렇다. 신념과 신념의 충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쪽은 너무 가난해서 돈 벌려고 변호사가 됐다가 부조리를 보고 분노한 다음 현실을 의심하고 성찰해서 바뀌는 인물이다. 반면 다른 쪽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둘 중 누가 공감을 얻게 되느냐를 보여주고 싶었다.

-송강호와 곽도원이 처음 붙는 장면을 부감으로 찍고, 그 뒤에 곽도원이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장면들은 의도가 하나씩이었다면 그 장면은 의도가 여러 개가 쌓여있는데. 곽도원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편집 압박도 많았다고 하던데.

▶부감 장면은 촬영감독님 아이디어다. 곽도원 과거 이야기 장면은 끝까지 지켰다. 이 사람의 신념을 보여줘야 했고, 단지 이 사람의 과거 뿐 아니라 우리 현대사였으니깐.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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