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소송 낙관..세상은 이미 변하고있다"(인터뷰)

김조광수 감독,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3.12.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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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왼쪽) 김조광수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지난 9월 7일,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결혼식 현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20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한 결혼식은 마치 축제와 같았다. 물론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의 행패로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결혼식을 올린 지 세달 만인 10일,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는 드디어 법적 부부가 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 남들에게는 서류만 제출하면 끝나는 간단한 절차지만 두 사람에게는 기자회견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권리보장을 촉구해야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1호 법적 동성부부가 탄생하나 기대했지만 역시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서대문구청은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참이나 이를 준비한 당사자로서는 힘 빠지는 일일 수 있는데도 이날 만난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는 여느 때처럼 유쾌하고 당찼다.

일단 혼인신고 서류를 우편으로 접수하기로 한 이유부터 물었다. 당초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는 서대문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직접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우편 접수로 계획을 변경하고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일단 너무 추웠고요(웃음). 외부에서 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세세한 부분을 알려드리기는 어렵겠다는 것도 이유였고, 불필요한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구청에 가지 않을 것이라면 우편으로 보내자, 그런 생각이었죠. 변호인단이 오늘 중 우편을 발송한다고 했으니 내일 쯤 도착하겠죠?"(김조광수 감독)


"직접 가지 않는다고 하니 구청에서는 좋아하셨을 거예요. 아마 오늘 저희가 갔으면 업무가 마비됐을 거예요."(김승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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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감독(왼쪽) 김승환 대표/사진=최부석 기자


당초 서대문구청은 서류를 받고 해석을 법원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기자회견 후 서대문구청 측은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제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인정받는 수밖에 없어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서대문구청에서는 접수는 받되, 해석은 법원에 맡기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아예 구청에서 자르겠다는 건 혐오를 기반으로 한 게 아닌 가 싶어요. 기존 혼인 제도에서 혈족, 몇 세 이하의 미성년과 같이 정해놓은 결격사유에 해당하지도 않는 것으로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건 말이 안되죠. 물론 변호사들은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법적 준비를 다 해놓았어요. 그래도 저희는 '아니야. 세상이 변했다니까?'라고 생각했어요."(김조광수 감독)

누군가는 법적으로 부부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온 세상에 부부임을 알린 김조광수 부부는 가족으로서 누려야할 권리에 대해 상당한 불이익을 체감하고 있다.

"단지 법적으로 등록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더라고요. 건강보험도 이중부과되고, 주민세도, 심지어 여행갈 때 항공마일리지까지 가족으로 묶을 수 없고요. 저희 뿐 아니라 이른바 비혼커플들도 똑같이 보호장치 바깥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김조광수 감독)

"사소한 것들인데 굉장히 당황스러워요. 담당하시는 분들도 당황하시고요. 얼마전에 전세자금대출을 신청하려는데 담당자분은 두 분은 부부니까 된다고 하셨는데 안되는 거예요. 공식적으로는 부부인데 단지 법적 등록이 안됐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많은 불편함과 불이익이 있는 거죠."(김승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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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감독(왼쪽) 김승환 대표/사진=최부석 기자


소송이 생각보다 길어질지도 모른다. 헌법소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지만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는 낙관적이다. 김조광수 감독은 "세상이 이미 변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가 굉장히 많아요. 일부는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형태도 있고요. 이 흐름에 대한민국이 역행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 싸움인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인정되겠지만 얼마나 시간이 걸려 허용이 되느냐의 문제겠죠. 안타까운 건 시대가 다 변한 후에야 법원이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책임 방기라고 생각해요. 법원이 사회적 인식보다 반보 앞선 판단을 해줬으면 좋겠어요."(김조광수 감독)

참 많은 걸 짊어지고 있다. 동성애 인권 운동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김조광수 부부. 무게와 부담이 상당할 것 같다고 걱정하자 오히려 영광이라고 웃는다. 당차고 긍정적인 면은 두 사람이 참 닮았다.

"부담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영광이죠. 인권의 큰 흐름에 앞장서서 있다는 게 기대도 되고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두렵지는 않아요."(김승환 대표)

저희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청소년들이 감독님 덕분에 결혼과 평등에 대한 꿈을 꾸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결혼은 게이들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질적으로 다르죠."(김조광수 감독)

법적인 이야기를 하느라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이렇게 전국민적인 커플인데 이혼하면 큰일 나겠다고 농을 던졌다. 그러자 김조광수 감독은 "우리는 법적 동성 부부 1호 커플이자 1호 이혼 커플이 될 수도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응수했다.

"저희는 선택을 할 때 언제나 행복이 1번이예요. 쇼윈도 부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언제나 서로의 행복이 최우선이고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불행해진다면 이혼 하는 게 맞겠죠. 이별을 하더라도 건강한 이별을 하는 것이 맞지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김승환 대표)

영화감독으로, 제작사 대표로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두 사람. 결혼과 혼인신고 등 올해 겪은 일들이 그들의 영화에도 영향을 줬다.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기본으로 재미있는 아이템을 찾기도 했다.

"얼마 전에 영화하는 지인들에게 결혼 후 저희 가족이 겪은 변화에 대해 말했더니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은 '남자 며느리로'요(웃음). 남자 며느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가족 중 하나가 주인공이고 가족들이 바뀌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는 거예요. 일단 제가 할 때까지 다들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어요."(김조광수 감독)

동성애자들의 혼인권을 위해 한걸음 씩 나아가고 있는 부부. 만약 승소해서 대한민국 1호 법적 동성 부부가 된다면 그들의 다음 스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어쩌면 시민결합이라는 형태의 절충안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나 혈연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라 친구 관계의 가정과 같은 다른 형태의 가정도 인정되어야 하죠. 가족 구성권이라는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김승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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