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에반스 "다른 배우는 봉준호 모르길 바랐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3.07.3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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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에반스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어벤져스', '퍼스트 어벤져'의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32). 이번 여름이 지나면 적어도 한국의 관객들은 그를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커티스로 기억하지 않을까.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 역을 맡은 그는 끄트머리에서 시작된 반란을 이끌며 극의 중심을 지킨다.

오는 31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크리스 에반스를 봉준호 감독과 함께 만났다. 입국 이후 폭풍같은 일정을 마치고 유쾌하게 모닝 커피를 마시며 인터뷰에 응한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는 세계 최고 감독"이라며 "다른 배우들은 봉준호 감독을 모르길 솔직히 바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독점하고 싶을 만치 신뢰하는 감독에 대한 깊은 애정, '설국열차'에 대한 기대가 듬뿍 담긴 고백이었다.


다음은 크리스 에반스, 봉준호 감독과의 일문일답.

-크리스 에반스는 연기를 하기 전 전 기차 안에서 4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무슨 생각을 했나.

▶(크리스 에반스, 이하 '크') 정확히 몇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있었다. 17년 동안 기차에서 생활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촬영 땐 100명 정도 되는 스태프가 있다. 카메라, 의상, 조명, 온갖 것이 들어가 있는 상태기 때문에 그 전에 기차 공간 속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고립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더러운 곳이기도 하고. 단순히 세트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있었다.


-크리스 에반스는 비행기 타고 '설국열차' 오디션을 보러 왔다던데. 혹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크) 약간 그랬다. 모든 배우가 늘 하는 걱정이다. 제가 아는 모든 배우들은 언제나 훌륭한 감독과 일하고 싶어한다. 저 역시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 최고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을 만난 다음에 '다른 배우는 감독님 영화를 못 봤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다. 나만 감독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봉준호 감독, 이하 '봉') 실제로는 크리스를 설득하기 위해서 우리가 많이 노력했다. 시나리오의 좋은 점을 설명하고, 시나리오의 장점, 커티스 캐릭터의 장점을 최대한 어필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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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인물 중 서로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는?

▶(크) 봉준호 감독은 길리엄이 아닐까. 고요하면서도 침착하다. 많은 걸 이해하고 있고 현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답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봉) 영화를 찍어 그런지 크리스 에반스는 천상 커티스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 같다. 다른 역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에드가(제이미 벨 분)일 수는 없지 않나.(웃음)

-틸다 스윈튼과 처음 영화를 함께했는데, 곁에서 지켜보니 어떘나.

▶(크) 장면 장면마다 잘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틸다 정도로 입지가 확고한 배우들 중에는 간혹가다 감독의 의향을 듣지 않는 분이 있다. 틸다는 수많은 작품을 해왔는데도마치 첫번째 영화를 하듯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모든 의견을 들으려 했다. 오픈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더라. 위험을 감수하고 연기할 준비가 다 돼 있었다.

▶(봉) 덧붙이자면 두 사람의 화학작용이 가장 세게 불타올랐던 게 취조실 장면이다. 전투가 끝나고 크리스가 틸다의 멱살을 잡고 칼을 들이대고 취조를 하는데, 옆에서 보는 제게도 볼만했다. 두 사람이 붙어서 연기를 하는데, 그 때 크리스의 표정연기를 보며 틸다도 감탄했다. 크리스도 마찬가지였고. 두 얼굴이 가까이 붙어 있는 장면이 즐거웠다. 제가 디렉팅할 건 없었다.

-말끔하고 단정한 캐릭터를 선보여 왔던 크리스 에반스에게 덕지덕지 검댕을 칠한 모습이 이채로웠다.

▶(봉) 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꼬리칸 사람이니까 깨끗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오히려 어떻게 해야 리얼한 더러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깨끗한 피부에 뭔가 덮어 씌운 느낌이 아니라 저 밑에서부터 썪어오는 듯한 더러움. 크리스와도 상의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에 나오는 수염은 크리스 에반스 본인의 실제 수염이다. 수염 자라는 속도가 괴게 빠르다. 며칠만 안 잘라도 장비처럼 된다. 본인이 '걱정 말라. 시간을 조금만 주면 된다'고 하더라. '설국열차'를 찍다가 '어벤져스' 보충 촬영을 했는데 엔드 크레디트에 나오고 등장하는 햄버거 가게 장면을 보면 크리스 에반스가 손으로 턱을 가리고 있다. 찍고나서 바로 '설국열차'를 찍어야 하니까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다. 확인하면 재미있으실 거다.

▶(크) ('어벤져스', '퍼스트 어벤져'의) 캡틴 아메리카 역은 계약이 돼 있어, 말하자면 2년에 한번씩은 아주 깨끗하게 면도를 한 말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미리 알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연기자로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해고 싶어 계속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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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에반스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는 일반적인 미국 SF영화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다르다. 미국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설국열차'를 어떻게 보나.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지.

▶(크) 미국의 경우는 주마다 반응이 다르다. 어떤 주에는 좀 더 지적인 관객이 있다. 그런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설국열차'는 관객의 지적 수준을 존중하고 보는 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전장을 던지는 영화다. 단순히 폭발시키고 싸우게 하는 게 아니라 깊이가 있는 이야기이며, 독특한 진정한 예술 작품이다. 제 주변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에게 반했던 관객들에게 '설국열차'가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까.

▶(봉) 크리스는 이미 미국에서 스타지만 이 영화를 통해 미국 관객들을 만난다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될 거라고 본다. 단순히 캐릭터나 외양이 아니라 표현하는 연기의 깊이가 다르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긴 독백신은 크리스가 맡은 커티스 연기의 정점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승부처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그런 부분까지 미국에서 잘 보여진다면 미국 관객들도 크리스의 연기 폭과 깊이에 대해 새로움을 마주하는 순간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크리스 에반스는 진지한 드라마를 이미 많이 하기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도 크리스의 새로운 지점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크리스 에반스는 마지막 열차 독백 신에 어떤 마음으로 접근했나.

▶(크) 말로 깔끔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춤 출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추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런 장면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정신상태로 임해야겠다'고 미리 준비한다. 여러번 촬영할 수도 있으니까. 그 장면 경우는 그 캐릭터가 느낀 감정을 개인적으로 느끼려고 애쓰면서 내가 수치심을 느꼈던 순간을을 떠올렸다. 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떠올러야 했다. 워낙 정신적으로 많은 것이 요구되는 장면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 함으로써 치유를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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