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제국', 주사위는 던져졌다..6면 모두 '惡'이라 쓰여진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07.16 11:11 / 조회 : 1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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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스틸


누구를 응원해야 하나? 모두가 거기서 거기, 나쁜 놈들처럼 보이니..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이 지난 15일 제5화를 내보냈다. 지난해 '추적자'로 가슴 먹먹한 감동과 분노, 좌절을 안긴 박경수 작가-조남국 PD 콤비가 다시 만나 진작 기대를 높였던 작품이다. 더욱이 손현주 류승수 장신영 여기에 "욕보래이"의 박근형까지 다시 출연하니 배우들 연기력 사서 걱정은 안해도 될 그런 드라마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 드라마, 다른 드라마와 묘하게 다르다. 대개 드라마라는 게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상식과 비상식,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대립과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이분법이 없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 한 통속이다. 당연히 올곧은 삶을 살 것이라 의심치 않았던 주인공 고수(장태수 역), 심지어 천상 집안 살림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박근형(최동성 역)도 믿었고 시청자도 믿었던 김미숙(한정희 역)마저 섬뜩한 발톱을 드러내니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먼저 고수다. 출발은 산뜻하고 해맑은 법대생 그것도 사시 1차까지 붙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재개발을 둘러싸고 집안의 풍비박산을 경험하며 서서히 돈의 제국, 황금의 제국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급기야 5회에서는 아버지를 죽게 한 성진그룹의 손현주(최민재 역)와도 손을 잡았다. 고수는, 머리도 좋고 배짱은 더 좋은 우리의 고수는, 고작 이러기 위해 학교도 때려치우고 이 외로운 길을 걸었던 거였나? 극중 1994년의 장태주는, 고작 자신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깡패 류승수마저 재개발조합장 선거에 뛰어들게 한 그런 '없는 집안'의 '야심만 많은' 인간일 뿐이었나?

이런 '시청자 배신의 아이콘' 고수에 비해 손현주는 출발부터 선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 정한용(최동진 역)의 무능에 대한 한스러움, 이런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삼촌' 성진그룹 왕회장 박근형에 대한 분노, 어느새 죽기 아니면 살기식 경쟁자가 된 사촌동생 이요원(최서윤 역)에 대한 자격지심이 맞물린 최민재. 툭하면 용역깡패와 툭하면 돈질과 갑질을 해대는 전형적인 드라마 악인캐릭터다. 병에 걸린 아내 결국엔 5회에서 '그깟 폐렴' 따위로 죽고만 아내를 향한 순애보, 망하기 직전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정략결혼을 선택한 희생정신? 추후 더 독해지고 악랄해질 손현주 캐릭터를 위한 선량한 밑밥질이라는 것, 다 아시지않는가.

5회에서 '깜짝' 악역으로 등극한 이가 있으니 바로 김미숙이다. 김미숙의 아들 이현진(최성재 역)과 박근형이 듬직해마지않는 딸 이요원과는 배다른 남매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었던 조용한 여자 한정희. 그런데 눈깜짝할 새 스스로 폭로한 과거사를 통해 김미숙은 '황금의 제국'을 뒤흔들 강력한 악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박근형 때문에 남편을 잃은 원한과 아들(이요원과는 씨마저 다른!) 성재를 성진그룹이라는 황금의 제국 정점에 세우려는 야심으로 인고한 지난 세월. 아무 것도 모르는 이요원이 "엄마, 나 좀 도와줘요"라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시청자들은 보았다. 이요원 모르게 치켜 뜬 김미숙의 싸늘한 눈빛을. 그리고 시청자들은 전율했다. "아들, 네가 성진그룹 회장이 되면 저 (박근형) 초상화부터 바꿀거야"라는 김미숙의 독한 눈빛을.

이밖에도 '황금의 제국'에는 수시로 죄를 남발하는 악인들이 득시글댄다. 청와대 비서관이었다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이원재(김광세 역. 권력남용의 죄, 남의 여자를 범한 죄, 모리배와 협잡한 죄), 창졸간에 수하들에 배신 당한 깡패 류승수(조필두 역. 폭행치사상의 죄, 안하무인 및 인면수심의 죄), 가진 건 비굴함밖에 없는 박근형의 장남 엄효섭(최원재 역. 없는 자 업신여긴 죄, 무능한데 욕심만 많은 죄, 숱한 여자 건드린 죄) 등등. 잠깐 등장한 인물이긴 하지만 1988년 철거민 농성당시 그 돈 3000만원이 없어 동향 어르신인 건물주를 찾아간 고수. 애원하는 고수에게 건물주가 이랬다. "새벽에 기도해줄게."(손 내민 이웃 모른 척 한 죄)

그러면 자주 성당을 찾는 여주인공 이요원은 그나마 선량한 캐릭터가 아니냐고? 치매까지 온 아버지 박근형을 위해, "29세 치마 입은 여자가 공구리를 알아? 뭘 알아?"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며 제국의 싸움에 발을 디딘 그녀가 이 '황금의 제국'에 있지 않냐고? 잘못 짚으셨다. 선해보이는 최서윤마저 자신과 성진그룹을 위해서는 언제든 권력과 깡패와 돈에 자신의 심장마저 내줄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주특기는 몇십억원 알기를 껌처럼 아는 '매수'. 귀하고 곱게 자란 재벌2세가 휘두른 이 얌전한 칼 끝에 이미 사촌오빠 손현주도, 피 한 방울 안섞인 고수도, 천하의 깡패 류승수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선량한 시청자들은 과연 누구를 응원해야 하나? 예전 주사위는 요행이나 실력에 의해 선(善)도, 의(義)도, 신(信)도 나올 수 있었다지만, '황금의 제국' 주사위는 6면 모두가 온통 '악(惡)'이라 쓰여져 있을 뿐이다. 몇 번을 굴려도, 주인공이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회개하더라도 결국은 '악'으로 치닫을 그 과정을 이제 고통스럽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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