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2⑥'현-진-영-흐-린-기-억-속-의-그-대'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수록된 현진영 2집

1992년 다운타운차트에서 빠질 수 없는 가수와 노래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였다. 아니,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그저 '엉거주춤'을 유행시킨 히트곡 정도로 기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노래는 당시 대한민국 랩댄스 수준을 몇 차원 끌어올린 회심의 역작이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 버금갈 정도로 파급력이 셌던 1992년의 대표 '사회현상'이었다.

'..뽀얀 담배 연기 화려한 차림속에 거울로 비쳐오는/ 초라한 나의 모습 변화된 생활속에/ 나만의 너는 너는 너는 잊혀져가고/ 여인들의 열기속에 흔들리는 촛불마저/ 나를 처량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어/ 싸늘한 밤거리를 걷다가 무거워진 내 발걸음/ 흐린 기억 속에 그대 그대 그대 모습을 사랑하고 싶지만/ 돌아서 버린 너였기에 멀어져버린 너였기에/ 소중한 기억속으로 접어들고 싶어..'('흐린 기억속의 그대')


'흐린 기억속의 그대' 인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랩댄스' 붐과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게 옳다. 당시는 '힙합'이라는 표현조차 낯설 때였고, 댄스뮤직의 하위 장르로서 랩이 가미된 댄스곡(대표적인 게 1989년 발표된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을 통상 '랩댄스'로 불렀다.

그러던 1990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무려' 2년 전에 '슬픈 마네킹'(토끼춤!)이라는 전형적인 뉴잭스윙 스타일 곡을 자신의 데뷔앨범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주인공이 바로 현진영과 와와(故김성재 이현도)였다. 현진영은 이어 1992년 8월 내놓은 2집 'New Dance2'에서는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비롯해 '너는 왜?(현진영 Go 진영 Go)' '미인' '한동안 뜸했었지' 등 수록곡 대부분을 랩으로 채우는 극한 실험까지 시도했다.

어쨌든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한국DJ클럽 주간차트에 처음 진입(97위)한 것은 1992년 9월 마지막주였다. 김종서의 '대답없는 너'가 8주째 1위를 달리고 있고, 이덕진의 '내가 아는 한가지'(2위), 넥스트의 '도시인'(3위),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4위), 조정현의 '비애'(5위), 이현우의 '꿈'(RE-MIX)(6위) 등이 상위권에 포진하고,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51위),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89위) 등이 이제 막 인기몰이에 진입했던 때였다.


차트 진입 4주만에 23위까지 치고 올라간 10월 셋째주, 5주만에 6위까지 랭크된 10월 넷째주, DJ차트는 이렇게 흥분조로 '현진영 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금주의 지역별 다운타운' 코너다.

"강남지역의 가장 높은 표수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 이덕진의 '내가 아는 한가지',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순이다."(강남구) "댄스음악 중 가장 강세를 보이는 곡은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로 엉거주춤이라는 이색율동과 더불어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관악동작구) "오랜 공백을 깨고 발표한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새로운 신세대 문화 창출과 함께 조금 주춤했던 랩댄스 음악이 다시 한 번 상위권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성동구) "엉거주춤으로 찬바람을 강타하고 있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연일 폭주하고 있다."(강남구)

이러한 '흐린 기억속의 그대' 신드롬은 급기야 이 해 11월9~12일 서울 성동고 3학년생 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에서, 좋아하는 가수 톱10에 현진영이 넥스트(3위), 신승훈(4위), 서태지와 아이들(6위) 등을 제치고 2위를 차지(1위는 015B)하는 결과로까지 나타났다. '즐겨듣는 가요 베스트10'에서도 '흐린 기억속의 그대'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흐린 기억속의 그대'는 이 해 말까지 DJ종합차트에서 내리 2위를 달렸을 정도로 1992년 하반기 가요신을 지배하는 대표곡 중의 대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