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왕이 된 남자', 제2의 '왕의 남자' 될까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9.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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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기획부터 탄생까지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 CJ E&M이 기획, 개발한 '광해'는 당초 강우석 감독이 연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캐스팅 등 여러 사안을 놓고 우여곡절 끝에 강우석 감독이 고사하고, 공은 '미녀는 괴로워'를 만든 리얼라이즈픽쳐스와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에게 돌아갔다.


제작 시기와 개봉 시기를 놓고도 말이 많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자와 거지 컨셉트를 갖고 있는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20일 개봉을 염두에 뒀다가 갑작스레 일주일 앞당긴 것을 놓고도 대기업의 치졸한 행동이란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광해'는 영화 자체로 균열을 덮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미덕을 갖고 있다.

'광해'는 조선 광해군 시대를 배경으로 독살 위협을 받고 있는 왕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천민을 가짜왕으로 세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왕이 쓰러진 뒤 15일 동안 그 자리를 지킨 가짜왕은 점차 왕 노릇이란 게 어떤 일인지 눈을 뜬다.


닮은 꼴 왕을 세운다는 설정은 새로운 게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많은 영화들이 이런 설정을 따랐다. '광해'는 오히려 케빈 클라인 주연의 '데이브'와 더 닮았다. '데이브'는 미국 대통령이 여자와 놀아나면서 닮은꼴을 대역으로 삼는 이야기다.

이런 소재를 한 영화는 대개 가짜가 궁궐 또는 대통령실에 들어가 문화충격에 혼란을 겪다가 서민의 고난에 눈을 뜨면서 점차 진짜 리더 자질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정치에 불만을 갖고 있는 관객의 대리만족을 충족시키는 구조다.

'광해'는 이런 이야기를 실제 역사에 접목해 기가 막히게 풀었다. 단역까지 살아 숨 쉬는 캐릭터와 창틈에 내리는 햇살까지 이용한 조명과 미술은 품격 높은 사극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해학과 풍자가 마지막까지 너울거린다.

'광해'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에 코미디를 싣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 이병헌(광해)과 류승룡(허균)이 중원을 장악하다가 장광(조내관)이 코너로 찔러주고, 다시 김인권(도부장)이 올려주면 이병헌이 슛을 넣은 방식이다. 각각의 코미디가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며 발을 구르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광해'의 자랑이다. 이병헌은 얼굴에 점 하나 찍지 않고 1인2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사극과 코미디를 처음 하는 배우라고 하기엔 발성부터 호흡의 완급까지 적절했다. 똥 싸고 앉아있는 이병헌이란. 사슴처럼 깊은 눈망울은 의심에 찌든 왕과 적당히 때 묻은 천민, 양쪽에 다 들어맞는다.

이병헌의 능청스런 연기는 영화후반부 주제를 직접적으로 대사로 설파해도 간지럽지 않게 하는 힘을 가졌다.

이병헌이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주변 인물들의 꽉 짜여있는 연기가 없었다면 빛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허균 역의 류승룡은 진지한 얼굴에서 상황코미디를 적절하게 구사하며, 조내관 역의 장광은 이 배우의 넓은 쓰임새를 깨닫게 한다. 도부장 역의 김인권은 감초 역할이 흔히 갖는 '오바'를 배제하고도 충분한 웃음을 준다.

특히 중전 역의 한효주는 단아한 매력으로 영화에 또 다른 중심을 잡는다.

추창민 감독은 노골적일 수 있는 영화 주제를 배우들의 균형적인 연기와 적절한 리듬의 코미디, 그리고 악역의 균형 잡힌 배치로 잘 갈무리했다. 코미디와 풍자는 노골적이면 낯간지러운 법이지만 균형을 잘 잡았다.

'광해'의 미술과 촘촘한 편집, 그리고 음악은 또 다른 미덕이다. 얼굴과 좁은 방을 클로즈업하기 마련인 TV사극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광해'는 영화 사극이 주는 새로운 미덕을 전하기 충분하다. '광해' 여운을 즐기고 싶은 관객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음악을 마지막까지 감상하는 것도 팁이다.

사극은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의 바람을 담는다. '광해'는 대선을 앞둔 요즘, 어떤 왕이 필요한지에 대한 반문이기도 하다. '광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읽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광해'는 이미경 부회장이 제작에 이름을 올릴 만큼 CJ E&M이 전력을 다하는 영화다. 제2의 '왕의 남자'를 꿈꾼다.

CJ E&M은 최근 100억대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과연 '광해'가 CJ E&M의 구원투수가 될지, 이 흥미로운 사극은 13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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