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PD가 '청와대 사람들'을 만들었다면?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3.02 14:28 / 조회 : 5404
  • 글자크기조절
image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어땠더라면?'이라고 상상하는 건 즐거움과 아쉬움을 준다.


김병욱PD는 '하이킥' 시리즈로 시트콤계의 장인으로 꼽히는 명연출자. '순풍산부인과'를 시작으로 수많은 명 시트콤을 탄생시켜왔다. 김병욱PD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사람들의 자잘한 일상을 비틀어 명품 시트콤을 만들어 추종자들이 상당하다.

그런 그가 과거 '청와대 사람들'이란 시트콤을 만들려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병욱PD는 SBS에서 'LA아리랑'과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시트콤들은 높은 시청률과 기발한 이야기, 독특한 캐릭터로 늘 화제를 모았다. 그렇지만 SBS에선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2005년 내놨던 '귀엽거나 미치거나'는 제작비 대비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병욱PD는 야심차게 준비했던 '청와대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엎어진 뒤 '귀엽거나 미치거나'를 내놨기에 상심이 컸다. '청와대 사람들'은 청와대라는 권력의 공간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을 것이란 전제로 준비했던 시트콤이었다.


지금까지 금역이라 불렸던 청와대를 웃음과 소통의 공간으로 끌어내겠다는 의도였다. 캐스팅도 다됐다. 잘 됐으면 한국판 '웨스트윙'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병욱PD의 야심찬 의도는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에 결국 무산됐다. 당시 SBS는 방송위원회로부터 재허가 여부를 앞둔 때였다. 조건부 재허가를 받기까지 6개월 가량이 걸렸기에 SBS는 극히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제목부터 '청와대 사람들'인 이 시트콤이 순조롭게 만들어지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기자와 통화했던 김병욱PD는 "허허, 나중에 이야기합시다"라며 말을 아꼈다.

마음고생을 겪었던 김병욱PD는 그로부터 2년 뒤 2006년 MBC로 자리를 옮겨 '거침없이 하이킥'을 내놨다. 야동순재를 시작으로 걸출한 캐릭터들이 쏟아졌고, 비단 주머니 속에 담겨있는 송곳처럼 부드럽지만 때론 날카롭게 시대와 사회를 풍자하기 시작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선 호화로운 집에서 살지만 마음끼리 벽이 있던 가족들이 가정부 자매에 의해 하나가 되는 모습을 긴 시간 동안 보여줬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선 각자 즐기고 살던 가족들이 아버지 부도로 마음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한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여전하다.

빚쟁이에 쫓기던 안내상과 취업을 못해 아는 언니집에서 눈치밥을 먹고 사는 진희는 등장인물 중 가장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동질감을 가질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은 '하이킥'에서 가장 앙숙이다. 마치 가난한 아이들이 해가 지면 더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듯. 운이 너무나 좋았던 지석은 박하선에게 고백을 계획하지만 그날따라 가장 운이 안좋았던 영욱에게 고백할 기회를 뺏겼다. 마치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처럼.

시간을 거슬러 김병욱PD가 '청와대 사람들'을 만들었다면 MBC로 옮겨와 '하이킥'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을까? '청와대 사람들'은 '하이킥'처럼 만들어졌을까? 아니면 조기종영됐을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김병욱PD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만든 뒤 한 인터뷰에서 "MBC가 (제작에)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MBC 파업이 한 달을 넘어가고 있다. 김재철 사장 퇴임을 놓고 사측과 노조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다. 최일구 앵커 등 보직간부들마저 파업에 동참하자 사측은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비파업자들에게 1주일에 20만원씩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극한 대립 중이다.

사측이 '해를 품은 달'이 성과를 내고 있는데 일부PD가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을 하고 있다고 신문광고를 내자, '해를 품은 달' 김도훈PD를 비롯해 드라마PD들이 드라마 제작여건상 어쩔 수 없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을 뿐이란 성명을 냈다. KBS와 YTN, 연합뉴스 등도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파업에 돌입 직전이다. 그야말로 파업전야다.

MBC에선 '무한도전' 정도만 파업 여파를 직접 받을 뿐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은 정상 방영중이다. 그러나 편집 인력들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편집이 엉망으로 나와 '놀러와' 등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파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일주일간 재방송됐다. 외주 프로그램인 만큼 파업의 여파가 아니라 제작진의 피로 누적 때문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을 보고 놀란 기분이었다.

김병욱PD가 바로 지금 MBC에 있었더라면 '하이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청와대 사람들'을 기획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짐작은 간다.

맹자는 군주가 어질면 어질지 않을 사람이 없고, 군주가 의로우면 의롭지 않을 사람이 없고, 군주가 올바르면 올바르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정녕 '해를 품은 달'이 중단됐어야 시청자들이 파업 해결에 진전 없는 현 사태에 분노한단 말인가? '무한도전' 노홍철과 하하의 나머지 대결을 빨리 보고 싶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