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 감독 "이 배우들로 못만들면 죽겠다 생각"(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2.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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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 ⓒ이동훈 기자


윤종빈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떠오르는 샛별이다. 2005년 27살의 나이에 '용서받지 못한 자'로 이름을 알렸을 때, 윤종빈 감독의 문제적인 시선은 영화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2008년 내놓은 '비스티 보이즈'는 흥행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사회 어두운 구석을 조명하는 결기는 인정받았다. 윤종빈 감독은 공수부대를 전역하고 군대의 부조리한 부분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조명했고, 부산에서 올라와 살게 된 강남 바닥의 그늘을 '비스티 보이즈'로 탐구했다.

34살. 결혼까지 한 지금 윤종빈 감독이 새로 선보인 영화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다. '범죄와의 전쟁'은 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해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 공무원과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가 손을 잡고 맹렬한 시기를 살아가다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기까지 이야기를 그렸다.

윤종빈 감독은 경찰 간부였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개봉 2주만에 3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둘 만큼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최민식 하정우 조진웅 등 화려한 배우들의 면면만 바라보면 윤종빈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놓칠 수 있다. 그는 왜 아버지 세계를 조명했을까. 긴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다.


-300만 돌파를 눈앞에 뒀는데.

▶매일 스코어를 체크하긴 하는데 솔직히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윤 감독 영화를 보면 어느 순간 하정우 이야기가 더 커지면서 방향을 잃곤 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최민식(최익현 역) 이야기로 중심을 잘 잡은 것 같은데. 시나리오 보단 최익현 이야기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구보다 최익현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당연히 최익현의 이야기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좀 더 범죄영화 장르적으로 끌어갔다면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자제한 이유는.

▶장르적으로 과장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영화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장르의 쾌감을 주고 싶진 않았다. 인물을 그렇게 풀어낸다면 장르의 도구일 뿐이다.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라 그렇게 인물을 도구로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물이나 카메라 워킹도 왜 그렇게 돼야 하는지 논리적인 정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아버지 시대인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정권이 바뀔 즈음 시대가 역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내겐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싫어하면서도 어느 순간 내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 시대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집에서 말 없던 아버지의 바깥 세계가 궁금했다.

-비리 세관원이었다가 조폭 세계에 들어가는 최익현이란 인물은 어떻게 구상했나.

▶처음에는 주인공이 경찰이었다. 그런데 경찰이 나오면 관객이 원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잖나. 내가 쓴 시나리오도 그렇게 돼버리더라. 그런 건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쓴 시나리오를 접었다. 그리고 다시 취재를 했다. 그러면서 당시 범죄와의 전쟁에 참여했던 검사를 만났다. 그 분이 깡패는 직업이 아니고 속성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꼭 깡패를 이용하는 놈들이 있는데 그런 놈들을 반달 또는 가리지날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 거기서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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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 ⓒ이동훈 기자


-영화를 만든 지금 아버지 시대가 이해가 되나.

▶이해는 되지만 공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 시대를 그렸지만 연민의 시선은 없다. 보통 깡패 이야기를 하면 유사가족을 만들기 마련인데 하정우가 최민식을 백부님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결코 가족이 아닌데.

▶이 영화의 핵심은 아버지의 바깥 생활이다. 가족을 위해 그렇게 산다고 그릴 수도 없고 그려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인데. 자식을 위해 그렇게 산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살기 위해 가족 핑계를 되는 건 아닐까? 아버지는 아버지의 욕망이 있고 또 자식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지 않나. 나도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검사가 되라고 하셨다.

-영화에서 수많은 인맥과 청탁이 아버지 세대가 살아가는 동력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어릴 적 집에 있으면 청탁전화를 많이 받았다. 사촌의 몇 촌의 누구인데 아버지 계시나,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았다. 아버지랑 음식점에 가면 가게 주인에게 용돈을 받기도 했다. 그런 시대, 지금과 많이 다르나?

-배우 캐스팅이 화려하다. 배우 보는 맛도 상당한데.

▶처음 캐스팅이 됐을 때 흥분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이 배우들을 갖고 영화를 못 만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많은 디렉션은 하지 않고 장만 열어준다던데.

▶배우들과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내 의도를 배우들이 알도록 한다. 나 역시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시나리오를 고치기도 하다. 예컨대 최민식 선배가 경찰에 잡혔을 때 '내가 니네 서장하고 엉' 이런 대사를 하는 건 최 선배 원래 말투에서 영향을 받아 수정했다.

-그런 방식은 좋은 배우들과 작업을 했기에 가능할텐데.

▶좋은 배우들하고만 한다는 게 원칙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선배인 하정우와 세 작품을 같이 했는데.

▶좋은 배우이자 좋은 지인이다. 내가 뭘 요구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장 잘 알고 그 이상을 해준다. 집도 근처라 술도 자주 먹는다.

-최근 공지영 작가가 종편 자본이 투자됐다고 비호감이라고 트위터에 올려 논란이 일었는데.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어떤 돈을 가져왔는지 알 수도 없고 관여하지도 않지 않나. 공 작가께서 그런 부분을 언급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진 않는다. 자신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소모적으로 흐르는 것 같긴 하다.

-사실 영화가 친절하진 않다. 이야깃거리를 던지지 결말을 주진 않는다. 전작들도 마찬가지였고.

▶결론이 있는 우화를 싫어한다.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지 않나. 그래서 이번에 관객들에 감동했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구나, 소통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스코어가 아니라 이런 불친절한 이야기에 소통해주는 관객들에 무척 감동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어' 등 음악도 영화흥행에 일조했는데.

▶원래 음악을 많이 넣는 걸 싫어한다. 음악이 들어가면 늬앙스가 사라지고 한 가지 감정만 남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관객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하기 위해 넣었다.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타협을 시도했다는 것인지.

▶내 색을 포기하고 소통하려 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니깐 이게 맞나란 생각도 든다. 타협했다는 건 그래도 가슴에 많이 남는다.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다음 영화도 타협하게 될런지, 아니면 자기 색을 이어가게 될런지.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이번 영화처럼 변종장르는 안할 생각이다. 원래대로 하면 투자도 안됐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든지, 아니면 아예 오락영화를 하든지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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