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빅뱅' 김홍탁 "대통령보다 월급 많았다"①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1.04.18 11:59 / 조회 : 9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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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씨 ⓒ류승희 인턴기자 grsh1@


키보이스, 히파이브, 히식스. 이들 전설의 록밴드를 아십니까?


그러면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초원의 빛' '초원의 사랑', 그리고 사이키델릭 연주곡 'In-A-Gadda-Da-Vida'는 아십니까?

이들을 관통하는 주인공이 바로 김홍탁(67)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이다. '가왕' 조용필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인정한 전설의 기타리스트인 김홍탁 원장은 1964년 윤항기의 키보이스에 합류한 이후, 히파이브를 거쳐 1972년까지 히식스를 이끌어온 한국 록밴드 초기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키보이스, 히파이브는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김세환 등 포크계열 가수들보다 먼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을 개척한 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히식스는 최호 감독의 2008년작 '고고70'의 실제모델 데블스가 구성상(3등)을 받은 1970년 제2회 전국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역사적 그룹(69년 1회 대회는 키보이스가 우승)이다.

1996년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설립, 후학 양성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김홍탁 원장을 만나 치열했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50년 동안 피던 담배를 최근 끊었어요. 6개월전 폐기흉으로 큰 수술을 받았거든요. 음반 작업 하다가 쓰러졌죠. 제 별명이 '워크홀릭'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즐기면서 살자'

-키보이스 시절은 어땠나요? 세시봉 초기 멤버라고 하던데요.

▶사실 세시봉은 우리가 먼저 개척한 것인데 요즘 포크쪽(송창식 윤형주 등등)만 부각되니까 윤항기가 많이 화를 내더라구요(웃음). 사실 음악감상실 세시봉과 록밴드와는 분위기가 전혀 안맞았죠. 무대고 없고 해서, 사과궤짝을 하나씩 놓고 멤버마다 그 위에 올라가서 연주하고 그랬어요. 키보이스는 당시 미8군 쇼를 많이 했는데, 외화획득이라는 자부심이 컸었어요. 일반무대는 '록음악 보급차원'에서 종로의 디쉬네, 무교동의 세시봉을 찾았죠. 손님들이 록음악을 모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키보이스나 히파이브가 등장하자마자 열띤 환영을 받았으니까요.

-미8군 무대 얘기 좀 더 해주세요.

▶우리 그룹(키보이스, 히파이브)이 전국 미군부대를 안 간 데가 없었어요. 오디션이 6개월마다 있었는데 이 경쟁이 아주 치열했어요. AA, A, B, C 등급까지만 미8군 무대에 설 수 있었고, 각 등급마다 출연료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키보이스는 단 한 번도 AA를 놓친 적이 없었어요. 이러한 경제적 안정이 있었으니까 음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거죠. 히식스는 일반무대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히식스도 대단한 그룹이었습니다.

▶주수입원이 명동의 오비스캐빈이었죠. 2층에는 송창식 윤형주 등 포크계열 가수들이 나오고, 3층에는 우리 같은 록밴드들이 나오고. 당시 포크음악은 '메시지가 있는 음악'이라 해서 인기가 있었고, 록음악은 '젊은이들 음악'이라 해서 더 인기가 있었어요. 하여간 히식스는 방송에도 나가고 극장쇼에도 서고, 리사이틀도 하고 아주 바빴죠. 당시 TBC '원투쓰리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호스트가 바로 히식스였습니다.

-출연료 수입도 굉장했겠네요?

▶최고 인기그룹이었으니까 굉장했죠. 우리들끼리는 '대통령 월급보다 많다'고 말하곤 했어요. 각 멤버마다 매니저 1명씩을 두고 월급을 주고 지시하고 그랬으니까. 외제차를 렌트해서 이동할 정도였으니까. 당시 '아이돌'이라는 표현은 없었지만 '신세대'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어요. 팬들 공세도 대단했고. 지금과는 달리 그 때 팬들은 주로 여대생들이었어요. 요즘의 빅뱅이나 걸그룹 같은 인기를 누렸죠.

-그러고 보면 1960년대 말~1970년대 초는 음악적으로 아주 뜨거웠던 시기 같아요.

▶당시는 한마디로 대중음악의 르네상스였습니다. 팝가수로는 패티김 최희준, 트로는 이미자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호, 민요에는 조미미, 포크계열은 송창식이나 윤형주, 록밴드는 신중현 히파이브 히식스가 저마다 큰 인기를 끌었던 때였죠. 이런 시기는 우리 음악사에서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그러다 '10월 유신' 지나면서 다 무너졌죠. 처음 무너진 게 우리 록밴드였고.(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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