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산신령 컨셉트 김유신, 웃기기까지"(인터뷰)

임창수 기자 / 입력 : 2011.01.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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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양성'은 2003년 '황산벌'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8년만의 후속작이다. 악에 받힌 관창의 희생을 앞세운 신라군은 마침내 숙적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문 앞에 당도했다. 실제 역사와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정진영은 '황산벌'에 이어 '평양성'에서도 신라군 총사령관 김유신 역을 맡았다. 후속작이 갖는 부담은 분명 있었다. 게다가 8년만 아닌가. 그럼에도 기획 단계부터 참여를 결정하게 된 것은 이준익 감독에 믿음 때문이었다.


"'황산벌' 이후 '이다음에는 어떻게 될까'하는 차원에서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정확히 언제 후속작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사실 '황산벌'의 후속작이니 만큼 당시 신라 쪽 인물들은 그대로 나와요. 처음부터 비켜갈 수가 없는 캐스팅이었던 거죠.(웃음)

시나리오도 없는 기획 단계부터 함께 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우려도 있었어요. '황산벌'이 당시 사극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기도 했고 세태를 풍자하는 메시지로 사랑받은 작품이니까요. 8년 만에 선보이는 후속작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거였죠. 처음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나 촬영할 때 기탄없이 제 의견을 감독님께 말씀드렸었고 즐겁게 촬영을 하면서 '이건 새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정진영은 '평양성'에 대해 8년이라는 세월만큼 진화한 작품이라고 했다. '황산벌'이 이준익 감독이 '키드캅'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실질적 데뷔작이었다면 '평양성'은 산전수전 다 겪은 뒤에 요리해낸 '메인 디시'라는 설명이다.


"'황산벌' 때에는 애초에 지역감정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변화하더니 나중엔 반전의 메시지에 무게가 실리게 됐어요. 특히 이라크 전쟁 시기와 맞물리면서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커졌죠.

'평양성'에서 또 그런 반전의 메시지를 반복한다면 의미가 없겠죠. 그때와는 다른 미덕을 지닌 영화가 되어야 했고, 신라와 고구려에서 연상이 되듯이 남북의 대치국면이 어느 정도 투영됐죠. 공교롭게도 지난해 연평도 사건이 갑자기 벌어졌는데 영화의 내용을 즉각적으로 현실을 대입하는 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되고 여유를 가지고 봐주셨으면 해요. 감독님께서는 참혹한 전쟁의 현실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그리고 싶으셨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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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 김유신으로 분한 정진영은 맞수 고구려를 끊임없이 두드리는 한편, 강대국 당나라와 미묘한 파워게임을 벌인다. 주로 묵직한 역할을 맡아왔던 그의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는 코미디 요소가 많은 역할이라고.

"기존의 역할들이랑은 많이 다를 거에요. 그동안 코미디 영화를 몇 편하면서도 제가 코미디를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도 코미디를 해요. 뭐 영화 마케팅 차원에서 치매, 노망 등으로 표현된 거 같은데 강대국 당나라의 대장군과 거래를 하려니 헛소리도 하고 꾀를 부리는 거죠. 사실 지략가적인 면모인데 영화 속에서는 코미디로 작용하죠. 아무래도 '황산벌'보다는 김유신이 하는 코미디가 많아졌어요."

'평양성'에서의 김유신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유신은 장군으로서의 위엄이나 카리스마를 벗어던지고 영화의 해설자 역할까지 도맡는다. '황산벌' 때의 김유신과도 여러모로 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황산벌'에서는 계백과 유신의 대립구조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거시기와 갑순의 멜로부터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들의 갈등, 당과 신라의 지략 싸움까지…. 그러다보니 '황산벌' 때처럼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약간 산신령 같은 모양새로 옛 이야기를 풀어주는 할아버지 같은 컨셉을 잡은 거죠. 사실 살벌하고 끔찍한 전쟁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주고 해설자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건 결국 김유신이거든요. 그런 김유신이기 때문에 '황산벌' 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벌써 5번째 영화 출연.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이준익 감독과의 두터운 신뢰를 과시하는 한편, 그런 믿음 때문에 때로는 외롭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준익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해서 안 좋은 점은 현장에서 많이 외롭다는 거에요. 저한테 맡겨놓고 내팽개쳐놓으시거든요.(웃음) 사실 오랜 신뢰에서 비롯된 거죠. 저희는 대본 나올 때마다 설전을 벌이면서도 서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잘 알더보니 상처받거나 하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감독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다른 배우보단 빨리 캐치하시게 되는 것 같고 그런 효율성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죠."

이준익 감독이 상업영화 감독 은퇴를 걸고 절치부심했다는 영화 '평양성'. 정진영은 마지막으로 영화의 흥행에 대해 담담한 생각을 밝혔다. 이미 손을 떠난 영화는 관객들이 판단할 따름이지만 영화적 동반자인 이준익 감독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고.

"원칙적으로 얘기하자면 배우는 촬영할 때까지만 그 영화가 자기 영화지 일단 손을 떠난 다음에는 관객들의 영화거든요. 영화라는 매체는 일회성이고 애프터서비스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옳은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이준익 감독님을 생각하면 내심 안타까워요. 상업영화 은퇴 운운하시는 게 장난만은 아니시거든요. 감독님 좀 도와드리려고 잘 못하는 예능프로그램도 출연하고 하는데 '해피투게더' 사전인터뷰 질문이 너무 어렵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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