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홍상수 감독에게 '옥희의 영화'란?(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0.09.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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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이명근 기자


#홍상수. 그는 어떤 면에서 달인이다. 뜻하는 대로 영화를 찍고, 마음가는대로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가 바람이 분다, 라고 하면 어느새 바람을 느끼게 된다. 11번째 영화 '옥희의 영화'는 그런 홍상수식 영화의 한 절정이다.

지난 16일 개봉한 '옥희의 영화'는 30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제작됐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10분의 1수준이다. 홍상수 감독은 지난 겨울, 이선균과 정유미 그리고 문성근과 함께 이 영화를 올망졸망 찍었다. 바람 불면 정유미 촬영분이 더 있어야겠군, 이라며 촬영했고 눈이 오면 문성근 선배 이야기가 있어야겠어, 라고 찍었다.


이렇게 찍은 영화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동안 칸영화제에 6번 초청됐던 홍 감독은 베니스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베니스는 물이 많더라구요"라며 "여기서 술과 음식을 갖고 가서 예쁘게 먹었죠"라고 했다.

#'옥희의 영화'는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란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각 편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이 영화들은 각자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주문을 외울 날'은 아내에게 술 좀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를 듣는 영화감독이자 대학강사가 모교 교수들과 회식 자리를 가진 뒤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감독은 교수에 아첨 아닌 아첨을 하다가 된소리를 듣고, 관객과의 대화에선 자기 친구가 유부남인 당신과 사귀었다가 인생이 망가졌다는 질문을 받는다.


'키스왕'은 졸업작품 발표회를 앞둔 한 영화과 학생이 같은 과 동기 여학생에게 애정을 토로하는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여학생은 이미 같은 과 강사이자 유명 영화감독이자 유부남과 관계를 가진 뒤였다. 영화과 학생은 1등 당선이 확실할 것 같은 졸업작품 발표회에서 물을 먹고, 여학생의 마음을 얻는다.

'폭설 후'는 대학 강의를 맡은 유명 감독이 계절학기 수업에 폭설이 내려 한 명도 오지 않은 상황을 맞은 모습을 그렸다. 여학생 한명과 남학생 한명이 뒤늦게 수업에 들어오자 감독은 두 사람과 낙지에 소주를 한 잔한다. 감독의 전화에 '너무 혼란하다'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녹음되고, 감독은 낙지를 그대로 토한다.

'옥희의 영화'는 옥희란 영화과 학생이 사귀었던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아차산에 일년을 사이에 두고 각 남자와 찾아왔던 경험을 구성했다. 각각의 남자와 나눴던 대화, 행동들이 포개지듯 이어진다.

#'옥희의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홍상수 영화는 여자 이야기, 자기 자랑, 남 뒷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는 이선균의 입을 빌어 "유치하게 이런 이야기 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런 유치한 일상을 낚시 홍상수 감독은 삶의 단면으로 재구성한다.

일상의 인상을, 인상이 준 통찰을, 인상파가 그림으로 옮겼다면 홍상수는 영화로 그린다. 그렇기에 홍상수 영화에는 구성이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다른 모습이 소개되고, 엇갈린 기억이 풀어지며, 전체를 관조한다.

'폭설 후'에서 교수에는 소질이 없다던 영화감독은 '주문을 외울 날'에선 돈만 밝힌다는 소리를 듣는 정교수가 돼있다. '키스왕'에서 순수하게 사랑을 노래하던 영화과 학생은 친구가 당신과 사귀다 폐인이 됐다는 소리에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소리친다.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한 여자는 '옥희의 영화'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두 남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단편은 시간과 순서가 아귀가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삶의 한 단면을 조망한다.

흔히 홍상수 영화는 홍상수 이야기를 하는 것이란 오해를 받는다. '옥희의 영화'에선 아예 "감독님 이야기잖아요"라는 대사까지 나온다. 등장하는 영화감독이 외형과 버릇까지 홍상수 감독을 빼닮았기에 받는 오해다.

이는 홍상수 감독이 은유를 직유처럼 사용하기에 갖는 착각이다. 은유는 비교 대상과 거리가 멀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하늘과 바다를 비유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지나치게 닮은 누군가를 내세워 삶의 한 부분을 잘 보라고 한다. 홍상수 영화는 'A=B'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영화는 'A≠B=C'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옥희의 영화'는 그런 영화 만듦의 한 절정이다.

#홍상수 감독은 인터뷰하기 쉽지 않은 취재원 중 한 명이다. 질문을 하면 "음, 그냥 찍었어요"라고 답하기 일쑤고, 장면에 대한 해석을 물어볼라치면 "생각하신대로 쓰면 되요"라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는 "편향된 글이라도 깊이가 있으면 읽어 볼만 하다"면서 "고운 생각을 깊게 해서 끌어내시라"라는 말로 인터뷰를 갈무리한다.

그는 "파편화된 기억과 형식을 새롭게 조형해 발견의 정도까지 낳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런 홍 감독의 말은 '옥희의 영화'에 영화감독 이선균의 대사로 그대로 옮겨졌다.

홍상수 감독은 공간을 정하거나 영화 구성을 생각한 뒤 촬영에 들어가곤 했다. '옥희의 영화'에는 그런 구상도 없었다. 그는 "이선균이 나오는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었다"면서 "'옥희의 영화'를 찍다보니 '폭설 후'가 생각나 문성근 선배에 전화해서 찍자고 했다"는 식이다.

즉, 홍상수 감독은 마음가는대로 영화를 찍고 풀어내는 순간을 맞고 있단 뜻이다. 홍상수 감독은 "형식과 내용은 분리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소재에서 형식이 나오기도 하고, 형식이 내용을 유도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예쁘다" "귀엽다"란 말을 즐겨 쓰는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영화로 만든다. 홍상수 감독에 영화란 삶을 잘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또 그의 영화는 점점 더 시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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