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 '악마' 논란에 대해 말하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0.08.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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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김지운 감독이 '악마를 보았다'를 둘러싼 논란에 입을 열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잔혹한 장면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영등위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국내 상업영화로는 초유의 사태다. 김지운 감독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가슴 속에 묻어둔 말을 평생 간직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12일 영화가 개봉한 뒤 '악마를 보았다' 논란은 한층 뜨거워졌다. 평단과 관객들은 "김지운 최고작"이란 반응과 "역겹다. 이런 영화는 만들어져선 안된다"라는 의견으로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악마를 보았다'는 이틀 동안 25만 여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유지할 만큼 화제를 몰고 있다.


김지운 감독은 블랙코미디와 공포, 스릴러에 서부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재능을 뽐내 왔다. 그런 김지운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어 스릴러 장르를 선보였다.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에 대한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는데.

▶'깡다구'와 맷집만 느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선 고어 스릴러라는 게 한국영화에서 처음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산업적인 시스템에서 전면돌파했으니깐. 최민식 연기를 스크린에서 보면 화상을, 이병헌 연기를 보면 소스라치는 얼음장 같은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아열대의 밤' 시나리오를 갖고 연출을 한다고 했을 때 의외였다. 상업적인 장르 영화에 능한 감독이 가시밭길을 선택했다는 느낌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이런 에너지와 기운을 주는 영화가 최근에는 없었기 때문에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없고 안전하기만 한 영화가 나오는 요즘,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할리우드에서 준비 중인 '맥스' 리메이크가 뒤로 밀렸기도 했고.

이 기운을 갖고 해보자고 생각했다. 최민식 선배가 워낙 세니깐 이병헌을 통해 감성화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기운이 어떻게 그려질지 나도 궁금했다.

-표현 수위에 대해 호불호가 분명한데.

▶히치콕 대담에 이런 말이 있다. 호러와 스릴러에선 괴물을 포학하게 그리면 그릴수록 성공적이 될 수 있다고. 악마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왜가 중요하다기 보다 어떻게가 중요한 영화인데. 하지만 그러다보니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와 비교가 된다. 성찰은 없고 과정만 남았다는.

▶약혼녀가 참혹하게 살해됐다. 그래서 그대로 복수를 하고 싶다. 이런 모티프를 갖고 끝까지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복수의 성찰을 그렸다면 다른 방식으로 했을 것이다. 일단 나는 박찬욱이 아니고 이 영화는 복수3부작이 아니다. 알맞은 그릇에 맞게 내용을 담는 게 중요했다. 박찬욱 감독을 의식했다거나 복수 시리즈는 추호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직 어떻게 해야 강렬하고 본능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그동안 미쟝센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번에는 배우들에 자리를 양보한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과거 영화들과 달라진 부분이 느껴지고.

▶지금까진 장르적인 쾌감을 주는데 공을 들였다면 이번에는 캐릭터의 극단적인 표현에 주력했다. 그래서 과거 내 영화들과 다르지 않을까 싶다. 캐릭터에 몰두하면서 다른 풍경을 지워나갔으니깐.

-날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다보니 관객들이 불편해하는데.

▶이건 다 함께 용기있는 결정이었다. 배우도 그렇고 제작자, 스태프 모두. 날것을 담은 이 기운을 어떻게 끝까지 유지해야 할지를 늘 고민했다. 고어스릴러란 장르를 했다는 게 한국영화에 하나의 스펙트럼을 넓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치가 어디까지인지를 이 영화가 시범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흥행작 감독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문제작이 됐다. 이런 반응이 일줄 예상했을텐데.

▶흥행작이란 표현을 받으면 좋겠지만 이 영화가 세상에 이렇게 나왔다면 그런 운명이었던 것 같다. 문제작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우선 이병헌이 건제하다는 것, 최민식의 강렬한 복귀작이라는 것, 한국영화에 고어스릴러를 내놓는다는 것, 이렇게 세 가지만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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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강간을 당하는 여자가 오히려 나중에 좋아한다든지, 마초적인 시선이 가득하다보니 여성관객들이 불편해 하는데.

▶강간으로 보이는 것은 영등위 결정으로 편집과 삭제장면이 있다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여자를 그렇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원래 두 사람은 과거에 사귀던 사람이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긴장이 유지된다. 거기엔 폭력 수위가 직접적이기 보단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영등위 결정으로 삭제된 장면은 보다 직접적인 묘사였을텐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더 고어스럽게 뭔가를 터뜨렸으면 중간중간 이완이 됐을 것이다. 공포영화를 볼 때 깜짝 놀라는 것으로 긴장이 이완되지 않나. 영등위 결정으로 그런 부분을 삭제하다보니 역효과가 난 것 같다.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 차단되니 결과적으로 더 세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게 결국 이 영화의 아이러니고, 운명이다.

영등위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지 않나. 감독의 연출 의도를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연출수위를 차단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좀 더 오락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연출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을 투자사와 배급사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모니터를 하면서 수위에 대한 고민을 했다. 솔직히 내부검열한 부분도 많다.

-원래 다른 결말, 에필로그가 있었는데.

▶국정원 고위층이 이병헌에 위조 신분증을 주고 중국으로 피하라고 한다. 그래서 여객터미널에서 멍하니 기다리는데 한 떼의 여고생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뒤를 웬 남자가 쫓아간다. 그걸 본 이병헌이 그 남자를 쫓아가는 게 에필로그였다. 안전한 장치이기도 하고, 이병헌에겐 구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모호하게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날 것으로 끝까지 간만큼 그대로 느껴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이병헌과 세 작품을 같이 하는데. 페르소나라는 소리도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과 정서를 둘 다 가져갈 수 있는 배우가 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같이 했을 뿐이다. 필요하니깐 한 것이지.

-비주얼에 공을 많이 들이는데 이번에도 여전하다. 첫 장면에 천사 같기도 하고 악마 같기도 한 백미러 장식이라든지. 최민식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소 입구는 악마가 태동하는 자궁으로 들어가는 질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백미러 장식은 미술팀의 아이디어였다. 천사 같기도 하고 악마의 뿔 같기도 한. 그런 부분이 재미있어서 사용했다. 장소 입구는 그런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아니다. 뭔가 뾰족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려 하다보니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이병헌이 연쇄살인범 집에서 뛰어내리고 올라가는 장면은 횡적으로 진행되는 영화에 종적인 활력을 주는데. '본 얼티메이텀'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그 장면을 준비하는데만 12시간이 걸렸다. 느닷없이 나오는 활극의 재미를 주고 싶었고. 또 그런 장면은 이미 '놈놈놈'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김지운 감독이 남의 시나리오로 하다보니 더 좋은 영화가 나온 것 같다는 우스개 소리도 하는데.

▶물론 다르긴 하다. 불편하더라. 무엇인가 청탁을 받고 해결사 역할을 한 것 같고.

-모방 범죄 운운한다던지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해서 논하는 평들도 많은데.

▶새롭게 시도하는 것에 대해 지금은 사회가 돌연변이를 보듯 불편해하는 것 같다. 익숙한 것만 찾는 것 같고. 피하고 싶지만 피할수 없는 상황을 정면승부로 보여준다는 것. 현실의 어두운 반영이긴 하지만 결국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건강한 형태로 활발한 담론이 이뤄지는 것은 얼마든지 납득하지만 그 외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 준비하는 '맥스' 리메이크 준비는 어떻게 되나. 다른 할리우드 영화도 연출 제의를 받았다던데.

▶조만간 미국에서 가서 논의를 한다. 그걸 봐야 어떻게 진행될지 알 것 같다. 국내작품도 그렇고 미국쪽도 그렇고 아직은 결정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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