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이전의 나는 33살에 죽었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9.10.05 08:41 / 조회 : 10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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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호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배우 김영호(42)가 나쁜 남자로 돌아왔다. 영화 '미인도'의 김홍도가, '밤과 낮'의 김성남이 썩 좋은 남자는 아니었지만 영화 '부산'(父.山, 감독 박지원)의 조태석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태석은 부산 일대를 주름잡는, '독사'라는 별명의 보도방 사장. 18년만에 알게 된 자식에게조차 별다른 정을 느끼지 못한다.

김영호는 "미처 인간으로 교육받기 전,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놈"이라고 조태석을 설명했다. 그는 "태생이 불안한 인생"이라며 "가족애조차 없는 동물적 본능이 가득한 남자를 그렸다"고 말했다. 그런 김영호, 오랜만이다.

김영호에게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남자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를 '타고난 남자'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가 해온 모든 작품을 돌이켜보면 그는 액션보다 멜로를 훨씬 많이 했고, 소심한 찌질남으로 웃음도 안기기도 했다. 김영호는 "인터뷰 하는 기자들조차도 저를 보는 색깔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할 때면 나도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떤 이미지로 보는지 궁금해요. 그런데 비슷한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어떤 사람은 '김영호 하면 멜로 남자'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리바리 캐릭터'라고 하고…. 여성분들은 남자다운데 자상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남성분들은 거칠고 겁난다 식?(웃음). 한 이미지로 국한되지는 않았나봐요.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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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호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실제 김영호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배우라는 테두리만으로 가두기엔 너무 다양한 색을 가졌다. 그는 록커로 무대에 선 적도 있는 가수이기도 하고, 짧은 시를 휴대전화로 적어 지인들에게 보내는 시인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위해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막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혼자일 때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하나도 쓸모 있는 일이었음을 세월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그런 저런 모습으로 많이 봐요. 덩치도 좋고 하니 싸움 좀 하겠네, 권투선수 같네 그렇게. 시를 쓴다거나,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거나, 미술관이나 역사박물관에 자주 가는 남자로는 생각을 못 하는 거죠.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도 오히려 충격이었나 봐요.

버라이어티에 나갔더니 여행이라도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충격이래요. 제 글이 마음에 와 닿는데도 저랑은 너무 안 맞는다고, 누구 협박해서 자기 글로 쓴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든대요. 그러면 저도 '글 쓸 땐 다른 사람 영혼이 들어와서 쓰나 봐요' 그래요."

다른 사람 영혼이 들어온다는 게 괜한 농담만은 아니다. 김영호에게 연기란 흡사 접신과도 같은 과정이다.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면 그 영혼에 조금씩 다가가 몸에 들어오게 한다는 게 그의 설명. '미인도'의 김홍도 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너무 힘들 정도였다.

"저는 33살에 제가 죽었던 것 같아요. 죽도록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김영호라는 영혼은 어디로 가 버렸고, 김산이라는 또 다른 영혼이 들어와서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뒤로 저는 영혼보다 몸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됐어요. 텅텅 빈 육체를 만들어 놓고 다른 육체를 유혹하는 거죠. 그 뒤부터 연기자로 올인하는 시기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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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호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김영호는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야인시대' 출연하기 전, 33살 이전의 자신이 '부산'의 태석에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그 땐 바람 부는 대로 다니고, 생각하는 대로 하면서 살았다. 표정마저 달라서였을까. 검문 한 번도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검문하시는 분들이 잡범이라고도 생각 안하고, 두목이나 거물로 생각하시더라구요." 김영호는 그 때를 떠올리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도 그 이후 달라졌다고, 요즘엔 '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세요. 제가 봐도 그 이후로 좋은 남자가 된 것 같아요. 어쩌면 '부산'에서도 내 안의 이야기를 한 거예요."

김영호에게 배우로서가 아닌 다른 계획이 있다면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것이다. 그는 '미인도'를 준비하며 배우기 시작한 동양화를 현재까지 배우고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그가 지금까지 지인들에게 보냈던 짧은 글들을 담아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 수익은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데 쓰고 싶다고, 그는 이제껏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라며 조심조심 털어놨다. "그런데 지금까지 쓴 글이 하나도 없어요. 줬던 사람들한테 다시 받아서 써야죠.(웃음)"

전시회장에 걸린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한 이 남자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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