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최한빛은 어떻게 슈퍼모델이 됐나

문완식 기자 / 입력 : 2009.07.29 11:31 / 조회 : 77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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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빛이 장기 자랑 심사에서 손담비의 '미쳤어'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송희진 기자


"나는 대한민국 여성입니다."


지난 1992년 시작해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슈퍼모델선발대회'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8일 서울 등촌동 SBS공개홀에서 열린 최종예선에서 트랜스젠더가 사상 처음으로 슈퍼모델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이날 최종예선을 통과한 32명의 본선 진출자 중에 트랜스젠더 최한빛이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본선 진출자에게는 입상 여부와 무관하게 슈퍼모델 칭호가 붙음에 따라 최한빛이 이날 최초의 트랜스젠더 출신 슈퍼모델이 된 것이다.

슈퍼모델 선발기준, 체형-얼굴-표현력

최한빛은 어떻게 슈퍼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


슈퍼모델 대회의 심사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체형, 표현력,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 40점, 30점, 30점의 배점이 따른다.

체형에 가장 큰 점수가 부여되는 것은 모델이기 때문. 체형의 경우 건강미 여부를 가장 주안점으로 삼는다고 '슈퍼모델대회' 주관사인 SBS미디어넷 이상수 팀장은 밝혔다.

모델로서 가장 좋은 키는 175센티미터 이상으로 175센티미터와 180센티미터 사이가 가장 이상적으로 꼽힌다.

실제 이날 대회에서는 50명의 최종예심 참가자에게 키순으로 번호를 부여했다. 1번 김희영의 경우는 184.1센티미터였고 50번 송명은은 166.9센티미터였다. 키 상위 10위인 1번부터 10번 사이에서는 단 1명만이 탈락했다. 반면 41번부터 50번 사이에서는 절반인 5명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키가 작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상수 팀장은 "키가 175센티미터 이하라고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아니"라며 "굳이 패션모델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키가 작은 모델의 경우 CF 및 잡지모델로 활동 가능한지 얼굴과 체형의 조화를 이루는지 부가적으로 심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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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 중인 후보자들 ⓒ송희진 기자


표현력의 경우는 교양미를 주로 평가한다. 이 팀장은 "전체적으로 교양미가 느껴져야 하고 학벌이 낮거나 연령이 많은 지원자의 경우 자기 표현력을 갖고 있나를 중점적으로 본다"며 "참가자의 열의나 능력이 눈빛으로 표현되는지를 주로 살핀다"고 했다.

키는 175cm이상, 얼굴은 피부 상태 중요시, 교양미도 중요

실제 이날 최종적으로 본선에 오른 32명 중 박지수(신명여고), 김혜진(경북여고), 정수지(동덕여고), 한경화(잠신고), 임진아(청주 오창고)등 5명이 고교 재학 중이었고 1명이 고졸자였다. 개포고를 졸업한 김지민의 경우 질문 심사에서 고졸 학력에 대해 '공부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고 심사위원이 묻자 "재수를 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연기자를 꿈꾸는 데 재수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솔직히 말해 호응을 얻었다.

23세 이상의 경우, 오아름(24), 김진영(24), 장지은(23), 송다은(24)이 진출했는데 10번 오아름(178.3)부터 47번 송다은(168.6)까지 다양한 신장을 보였다.

미모도 아니고 얼굴은 무엇일까.

'슈퍼모델대회'에서 얼굴 평가는 미모보다는 피부상태를 따진다.

이 팀장은 "얼굴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고 첫 인상이 좋아야 한다"며 "흉터가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고 밝혔다.

또 피부색이 좋아야 하고 전체적으로 고른 조화를 이뤄야 한다. 몸에 문신이 있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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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6시 30분 최종 본선 진출자 명단이 나붙자 참가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송희진 기자


최한빛 키 180.9cm, 한예종서 무용 전공, "남성 체형 엿볼 수 없어"

그러면 최한빛은 어떻게 슈퍼모델이 됐을까.

최한빛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심사위원 내부에서는 "당당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힌 심사위원이 많았다고 이 팀장은 밝혔다. 신체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고 법적으로도 여성인만큼 최한빛의 경우도 앞서 언급한 심사 규정에 따라 심사가 이뤄졌다.

이 팀장은 "개개인의 심사조건을 말할 수는 없지만 최한빛의 모델로서의 발전가능성을 높이 산 것 같다"며 "모델로서 최한빛 개인을 보고 성적이 매겨졌다"고 전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최한빛의 경우 키도 크고(180.9) 무용(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전공해 전체적으로 몸이 유연했다"며 "몸 어디를 봐도 남성의 체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여자로서 보고 평가를 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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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빛이 장기 자랑 중 가면을 벗고 있다 ⓒ송희진 기자


이날 최한빛은 시종일관 당당한 자세로 심사에 임했으며 심사위원의 예민한 질문에도 "저는 대한민국 여성"이라며 "편견없이 심사해줄 것을 바란다"고 심사위원들에 부탁하기도 했다. 장기 자랑에서도 자신의 전공을 십분 활용,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춤사위를 벌였다. 중간에 가면을 벗는 퍼포먼스도 벌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제2의 트랜스젠더 슈퍼모델?.."법적으로 여성이어야"

앞으로 또 다른 트랜스젠더 슈퍼모델이 탄생할 수 있을까. 아직 슈퍼모델대회 조직위 내부에서는 입장 정리가 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장은 "최한빛 양은 중간에 트랜스젠더임이 알려진 것이라 미묘한 문제가 있다"며 "그렇다고 원서접수 시부터 트랜스젠더 여부를 밝히게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했다.

그는 "조직위 등을 통해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단, 법적으로 여성이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그간 '슈퍼모델대회'는 기혼자에 대한 차별과 신장 165센티미터 이상이라는 조건을 철폐한 바 있다"며 "좀 더 고민이 필요하지만 모델이 패션모델에 국한되지 않는 만큼 중성적인 모델이 어필할 수 있는 분야에서 트랜스젠더들에게 또 하나의 직업군을 만들어 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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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모델이 된 직후 눈물을 글썽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최한빛 ⓒ송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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