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고양이 낳으랴..3대 이은 예술명문가

김태은 기자 / 입력 : 2009.06.30 15:42 / 조회 : 1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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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재키, 정수영, 봉준호 감독(왼쪽부터)


피천득, 박태원, 정한모…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교과서에 작품을 올린 국민 작가들이다. 교과서에 실린 이들이다보니 그들의 작품을 접하지 못하고, 이름 석자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다. 문학사 속 인물들의 후손들이 이제 국내 예술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일본인 소녀와의 세 번에 걸친 만남을 그린 ‘인연’ 등 주옥 같은 수필로 남은 금아 피천득(1910~2007). 외손자 스테판 재키(24)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피천득이 장녀 피서영(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을 소재로한 수필 ‘서영이’에서 희망했던 그 손자다.

피 교수와 남편 로먼 재키 MIT 물리학 교수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계 젊은 인기 연주자들이 주축이된 앙상블 ‘디토’의 멤버이기도 하다.

영문학자로 서울대 교수였던 피천득의 문학과 음악에 대한 소양은 그가 음악가가 되는 자양분이 됐다. 재키는 한 인터뷰에서 “4살무렵부터 10대가 될 때까지 여름방학마다 한국을 찾아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음악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할아버지의 작품을 통해 문학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연주자이기 때문인지, 피천득의 글 중에선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가 가장 인상깊었다고도 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도약중인 봉준호(40)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7)의 외손자다.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천변풍경’ 등 세태소설로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한 묘사력의 그의 장기다.

이 같은 외조부의 재능을 이어받은 까닭인지 봉준호 역시 묘사력이 뛰어나다. ‘봉테일’로 불릴만큼 그의 작품에는 세세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그의 문학적 능력도 집안 내력일까.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등에 담긴 세태풍자적 시각 또한 물려받은 천재성을 가늠케한다.

이런 집안 내력은 지난 2006년 6월 금강산에서 있었던 제14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다시 화제가 됐다. 월북한 박태원의 장녀 설영씨와 봉 감독의 어머니 소영씨 자매가 이 자리에서 재회했다. 소영씨는 봉 감독이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외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게 아니냐는 말을 자주한다고 전했다.

정작 봉 감독은 시각예술을 전공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봉상균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이사장은 국내 그래픽디자이너 1세대로 영남대, 서울산업대 교수를 역임했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문학과 미술적 자질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하겠다.

뮤지컬배우와 탤런트로 다양한 예술적 역량을 뽐내고 있는 정수영(27)은 시인 일모 정한모(1923~1991)의 친손녀다. 서울대 교수와 제11대 문화공보부 장관을 역임한 정한모는 ‘어머니’, ‘가을에’, ‘나비의 여행’ 등의 시를 교과서에 실었다.

정수영의 아버지 또한 유명 도예가인 정진원 동덕여대 교수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수석입학한 사실까지 알려지며 ‘엄친딸’로 주목받았다.

그밖에도 교과서에 실린 유명 문인의 자녀, 자손들이 보통 문학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경우는 많다. 3대를 이은 예술명문가의 탄생이다.

단편 ‘소나기’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 받고 있는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아들은 서울대 교수를 지낸 시인 황동규(71). ‘즐거운편지’ 등으로 등단, 세련된 지성과 감수성을 보여온 황동규에 이어 손녀 황시내(40)는 2007년 산문집 ‘황금물고기’를 냈다.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1926~2008)을 외할머니로, 저항시인 김지하(68)를 아버지로 둔 김원보(29)는 2006년 소설 ‘마왕의 기원’으로 등단했다. 판타지소설도 온라인에 연재하는 신세대 작가다.

한국최초 장편서사시 ‘국경의 밤’을 쓴 파인 김동환(1901~?)은 납북된 후 생사가 묘연하지만 그의 문학적 DNA는 딸들을 통해 남았다. 소설가 최정희(1912~1990) 사이에서 태어난 지원(67), 채원(63) 자매가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자매 모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뛰어난 작가다.

소설가 김채원의 아들 백수장(29)도 배우로 활동하며 예술명문가의 맥을 잇고 있다.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으로 다수의 연극과 뮤지컬에서 기본기를 닦았다. 2007년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오프로드'에 선우선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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