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속았던 영화속 '눈가리고 아웅' 몇가지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9.06.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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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 주연의 '맨인블랙'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우주 생명체들이 지구에서 오순도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어떤 놈들은 인간으로 위장하거나 기계 안에 숨어있었고, 또 어떤 놈들은 MIB 대형센터에서 통제를 받으며 활보하고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 중요한 건 이들의 존재를 윌 스미스나 관객이나 전혀 몰랐다는 것. 우주에 생명체들이 있을까, 이런 질문 따윈 '맨인블랙'에선 애초에 시시껄렁한 궁시렁일 따름이다.

이처럼 영화에는 '이 세상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혹은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식의 꽤나 '멀더스러운' 법칙이 많다. 사람이 진짜 사람이 아니고('아일랜드'), 기억이 진짜 기억이 아닌('토탈 리콜'), 그리고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었으며('식스 센스'), 길거리 사람들이 하나같이 짜고 자신만을 속인('트루먼쇼') 그런. 흔히 남을 속이려는 얄팍한 수를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한다지만, 영화속 이런 '아웅'은 하도 정교하고 감쪽같아 굳이 눈을 가릴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그대로 넘어가니까.


24일 개봉하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은 눈이 즐거운 CG로 말미암아 이러한 '아웅'을 한두 차원 높인 역작이다. 1편을 떠올려 보시라. 세상에, 외계 로봇이 트럭과 자동차로 변신해 인간들 옆에 숨어있었다니. 2편에서는 이를 더욱 확장해 소소한 주방기구들까지 우주 에너지를 흡수하자 원래의 모습인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꽤 오랫동안 인간들 앞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해왔던 그 재주가 참으로 용하다.

상영중인 스톱모션 3D 애니메이션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판타지 어드벤처의 힘을 빌렸지만 마찬가지로 어린 여주인공, 특히나 영화 보기 전 엄마한테 야단 맞은 어린 관객에게 끊임없이 세뇌를 시도한다. '네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야!' 여주인공 코렐라인에게 부모님이란 그저 '눈 가리고 부모'였다는 것. 영화는 여기에 '네 답답한 세상에서 빠져나오면 진짜 행복한 이 세상이 있다'는 식의 이중플레이로 코렐라인과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아일랜드'도 이러한 세상 도처에 숨겨진 '눈 가리고 아웅'을 폭로, 한국에서 유난히 성공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또 다른 역작. 영화가 시작한 지 한참 지났을 때에도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는 평범한 남녀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복제인간이라는 것,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그들을 탄생시킨 진짜 인간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영화는 복잡해진다. 과연 누가 진짜이고 실체인가. 링컨이 각성하기 전 복제인간 때 느꼈던 그 세상은 정녕 가짜이고 허구란 말인가.


'눈 가리고 아웅'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면 바로 휴고 위빙 주연의 '브이 포 벤데타'가 된다. 2040년 근미래 영국, 사람들은 평범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세상이란 독재자가 장악한 미디어를 통해 철저히 은폐, 왜곡된 가짜다. 반대론자들은 숙청당했고 개인의 사생활은 도청당하는 다분히 음모론적인 현실. 이 추악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우리의 가면 쓴 브이(휴고 위빙)가 처연히 떨쳐 일어났다는 것.

이러한 조직화된 가짜 세계에 SF적으로 집착한 또 다른 역작을 강추하자면 역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시리즈 아닐까. 한마디로 당신이 보고 만지는 이 세상은 '매트릭스'라는 가짜이고, 진짜 세상은 인공지능이 자신의 에너지원을 위해 인큐베이터에서 인간을 재배하는 세상이라는 것. 매트릭스에서 활개치고 다닌 당신이란 결국 질퍽한 인큐베이터에 누워있을 뿐이라는 것. 이 엄청난 '눈 가리고 아웅'의 세계를 창조해낸 인공지능과 오라클과 아킥테트에게 경배를!

<사진설명=왼쪽부터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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