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 전락한 2008 한국 드라마

전예진 기자 / 입력 : 2008.11.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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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온에어''태양의 여자''신의 저울'(시계방향)


'시작이 반'이지만 결국 끝이 좋아야 다 좋은 법.

2008년 참신한 소재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 떨어지는 스토리 전개와 엉성한 마무리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해도 "뭔가 부족하다""찝찝하다"는 의견이 많다.


늦어지는 쪽대본, 시청률 경쟁으로 인한 방송시간 연장, 갑작스러운 횟수 연장 결정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요소들이 지속되며 '용두사미'로 전락한 꼴이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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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지난 12일 종영한 MBC '베토벤 바이러스'. '음악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주목받았던 이 드라마는 자체 최고 시청률 19.5% 전체 평균 시청률 16.7%를 기록하며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드라마 초반 독설가 지휘자 강마에(김명민 분)의 카리스마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강마에와 오케스트라 단원 간의 미묘한 심리전과 갈등을 그려내며 '강마에' 신드롬까지 생겼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8회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중반부로 치달을수록 캐릭터의 개성은 파묻혔고 개연성 없는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드라마의 주제였던 음악의 비중은 줄었고, 내용 전개는 늘어졌다. 프로 지휘자인 강마에가 6개월 경력 제자 강건우의 지휘에 열등감을 느끼고 스승과 제자의 갈등관계를 드러내는 등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했다.

이때문인지 이 드라마는 수목드라마 중 1위를 고수했음에도 시청률 20% 치고 올라가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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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신의 저울'


지난 10월 종영한 SBS '신의 저울'도 마찬가지다. 법률드라마로 얽히고설킨 주인공의 운명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던 이 드라마는 16부작 안에 모든 내용을 담아내느라 점차 개연성을 잃어갔다.

12회부터는 억지 설정과 끼워맞춘 상황 때문에 현실성이 결여됐다. 결말 부분에서는 재판 전 상황과 그 재판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반전돼 연결고리가 끊기고 급하게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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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온에어'


자체 최고시청률 25%를 넘으며 지난 5월 종영했던 SBS '온에어'도 허술한 결말로 입방아에 올랐다. 배우와 소속사 사장 PD 방송작가 등 전문직을 등장시켜 팽팽한 신경전을 그려냈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 20, 21회에서 러브라인을 정리하는 느슨한 멜로드라마로 '변신'했다.

이외에도 KBS 2TV '태양의 여자' MBC '이산' SBS '일지매''내 남자의 여자' 등 올해 호평받았던 드라마들조차 초반 발휘했던 추진력을 잃고 갈팡질팡 헤매다 애매모호한 결말을 내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현재 방송중인 SBS '바람의 화원'과 MBC '에덴의 동쪽'도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주인공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명품 드라마'로 자리를 굳혔던 '바람의 화원'은 종영을 앞두고 흡입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과도하게 배경음악과 감정신을 넣어 절제미를 떨어뜨리는가하면, 김홍도(박신양 분)가 제자 신윤복(문근영)을 위해 불 속에 손을 넣는 등 과장된 에피소드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신윤복이 기생 정향에게 성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급격히 이야기가 진행되는 감도 없지 않다. 20부작으로 만든 이 드라마는 현재 4회분을 남기고 있지만,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는 진전된 바가 없어 어떻게 마무리될지 걱정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MBC '에덴의 동쪽'은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는 시대극이라는 장르에 톱스타 대거 출연으로 평균 25%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50부작의 호흡이 긴 드라마인데다 극적인 장치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반복된 과장 연기가 이어져 느슨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한국 드라마는 사랑과 시청률에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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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바람의 화원'(왼쪽)과 MBC '에덴의 동쪽'


시청자들은 초반에는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영상미에도 신경을 쓰지만 갈수록 박진감과 질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국내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데 치중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문직 드라마였던 SBS '온에어'와 음악 드라마를 지향했던 MBC '베토벤 바이러스'도 후반부로 갈수록 애정관계에 비중을 높이면서 극의 균형을 깨뜨렸다는 지적이다.

한 시청자는 "극의 초반에는 시청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전문직종의 이야기를 넣거나, 색다른 소재로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뒤 결국 사랑타령으로 끌고 간다"며 "이로 인해 드라마의 질적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또 시청률을 위해 초반 여러 요소를 첨가하면서 장황하게 벌여놓게 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야기를 정리하기에 급급하다보니 미완성 드라마인 채로 끝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시시각각 나오는 '쪽대본(즉석대본)'도 문제 요소다. 광고수입이 결정되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시청자의 입맛에 따라 이야기를 수정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KBS 드라마국의 한 PD는 "촉박한 시간 내에 드라마를 만들어 이야기를 구성하다보면 깊이 있는 드라마가 나오기 힘들다. 쪽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미리 제작된 시나리오에 따라 제작한다면 깊고 탄탄하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 드라마 '이산'의 제작진도 "대본이 출고된 후 일주일 내내 쉴 새 없이 촬영해야 간신히 방송일정을 맞출 수 있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제작진은 "시청률 경쟁이 벌어지면서 드라마들의 회당 방송 시간이 70분까지 늘어났고, '쪽대본''초치기 촬영' 등이 등장했다"며 "방송분량을 늘이기보다 질을 높이는데 힘써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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